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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talie Sep 24. 2024

|양양 민박집 엄마 죄송해요!|

  -뚱클럽 #2, 30년 만에 드리는 감사 카드-


내가 대학교 2학년일 때, 우리 뚱클럽도 난생처음으로 교회 수양원이 아닌 푸르른 동해바다로,

본격 여름 피서 계획에  돌입했다.  (뚱클럽은 절친 4명으로 이루어졌고, 뚱은 우리들끼리의 애칭이다)


불행히도 내 친구 서뚱은 집안에 일이 있어서 못 가게 되어서, 홍뚱, 김뚱 그리고 나 이렇게 3 뚱만 강원도 양양에 있는 동해 바닷가로 여행을 떠나기로 하였다.


다들 대학생이어서 가진 돈은 충분하지 않았었고, 당시엔 아직 경제활동도 시작하지 않은 때여서,

실제 물정에도 어두웠었던 우리 셋은 한 명당 만원이면 3박 4일은 충분할 것이라고 믿고 무작정

푸른 바다를 향해 떠났었다.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신나고 들뜨는 마음으로, 휴가기분을 만끽하며

다섯여 시간을 달려서,  저녁이 다 되어서야  우리는 드디어 속초 양양 터미널에 도착하였다.






우리의 첫 번째 챌린지는 최대한 싼 민박집을 찾는 것이었다.


 한 아주머니께서 8000원을 제한하셨지만, 우리에겐 살짝 예산이 초과되어,  우리 셋은 배낭을 한 개씩 메고, 난 또 거기에 기타까지 앞에 둘러메고는 왔다 갔다 하며,  두리번 대고 있을 때쯤, 우리 엄마를 꼭 닮으신 아담하시고, 돋나물처럼  봉긋하고 예쁘게 잘 나온 파마를 하신 지 며칠 안 돼 보이시는 인상 좋으신 아주머니께서 우리에게 물으셨다.


“이제 벌써 어둑어둑한 밤인데, 도대체 얼마 짜리 방을 찾길래, 여자 애들이 아직까지 밖에서 이러고 있어?”


나는 뚱클럽 맞언니로서 (실제 나이차이는 5개월에서 1년 정도) 대표로 말씀드렸다.


“저희 방값이 5000 원밖에 없어서요 …“


“에구 5000원으로 어떻게 방을 구한대.  요즘은 다들 8000원에서 만원도 불러.

일단 늦었으니까 다 같이 우리 집으로 가 5000원에 해줄 테니 “


정말 우리에겐 구세주 같으셨던 정말 마음씨 좋으셨던 민박집 아주머니!


말투는 투박하셨어도, 밤에 묵을 곳도 없고 위험할까 봐, 낯선 곳에 도착한 어리숙한 아직 어린 세 여자애들을 걱정해 주시는 따뜻하신 마음씨와  인정이 많으신 실로 우리에겐 천사 같으신 분이셨었다.


“아 진짜 다행이에요! 정말 감사합니다. 얘들아!  이제  우리 살았다!”


함박웃음 삼뚱, 우리는 앞장서서 뒷짐을 지시고 걸어가시는 민박집 아주머니를 따라서,  양양터미널에서 도보로 채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 고즈넉하고 정겨워 보이는 파란 대문 시골집에 도착하였다.







아주머니네 집은 방 세 개와 따로 떨어져 있는 화장실 그리고 옛날식 부엌 그리고 대문 왼쪽 편에는 당시 어느 집에나 있다는 꼬리에 프로펠러 달린, 성격 좋은 누렁이 한 마리, 그리고 그 옆으로는  크고 작은 장독이 여러 개가 놓인, 마치 고모네 시골집에 온듯한 정감 넘치는 가정집에 50대 후반정도 되시는 아주머니와 아저씨 두 분만 사시고 계셨기에, 남는 방 두 개를 민박집으로 종종 세를 놓으시는듯했다.


이미 다른 방에는 예쁘고 고급진 금목걸이와 귀걸이를 한 세련되고 화려해 보이는,

2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두 언니가 우리보다 이틀 전부터 민박하고 있었고,

우린 아주머니의 안방 건너편에 있는 방에서 지내기로 하였다.





우리의 총 회비 3만 원 중에 고속버스 왕복표 3장, 민박집 5천 원 그리고 고속터미널에서 기다리다가

간식을 사 먹은 우리에게 앞으로 3일 동안 버텨야 할 돈은 만원 정도였었고, 우린 그 정도의 경비로도

 아껴 쓴다면 끄덕 없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었다.


일단 배가 고파서, 민박집 근처의 구멍가게에 가서 라면과 과자류 그리고 콜라 등을 통 크게 6천 원어치나 사서, 교회 중창단인 우리 삼뚱은 화음을 맞춰가며 기분 좋게 노래를 하면서 민박집으로 경쾌하게 걸어서 돌아왔다.


저녁으로 라면을 끓인다고 부엌에서 부산스럽고 난리 법석인 우리를 보신 아주머니,


“에고 밤늦게 무슨 라면을 먹는다고 이리 소란들이여”


하시면서도, 밥을 양푼 한가득, 그리고 넉넉한 양의 김치를 방에 가져다주시고 가시며,


“울 아저씨, 낼 아침 일찍 일어나셔서 일가셔야 항께, 빨리 묵고 조용히들 자라 잉 “


 진짜 엄마 같으셨던 양양 민박집 아주머니, 우리 삼뚱은 순간 너무 감동해서 울컼했었지만,

우리는 심한 공복 중에는 머리도 작동을 멈춰버리고,  감정표현도 아주 서툴러져 버려서는 고작 한다는 말이,


“네네 일찍 잘게요, 안녕히 주무세요~~”


후회된다. 와락 안아드리며 얼마나 감사한지라도 그때 바로 말씀드렸을 것을….




 셋이 라면 5개, 산더미처럼 쌓인 밥 한 양푼, 김치 한양푼 그리고 콜라 1.5리터를 밤 9시에 순삭 한  우리 셋은 난생처음 우리끼리의 여름휴가, 그것도 동해바닷가에서의 첫날밤,  두근두근 설레고 흥분된 가슴으로 전혀 잠을 잘 준비가 되지 않았었다.


마당 수돗가에서 양치 그리고 얼굴 손발을 말끔히 씻은 우리는 방으로 돌아와서, 즐겁게 깔깔거리면서,

늘 하듯이 수다와  몸개그로 즐거워하고 있는데, 건너편 안방 민박집 아줌마 아니 민박집 엄마,


“그만들 자라 인제, 불 꺼라~~ 잉?!”


“네 지금 끌게요~안녕히 주무세요~”



우린 일단 불을 끄고, 만복의 무거운 몸을 셋이 나란히 눕히고는, 홍뚱과 김뚱사이에  누운 나는

기타를 치며 우린 다시  삼 중창을 속삭이듯 작게 불렀다.


소리 날까 봐 한여름에 얇은 천 이불을 둘러 쓰고는...


지금 생각해 보니, 정말 어리고 철딱서니도 엄청나게 없는,  세명의 말괄량이이자 말썽장이었던

우리 삼뚱을 들이신 민박집 아주머니께서는 그때는

그게 그 모든 난리법석의 시작일줄은 상상도 못 하셨을 테지…





그래도 난생처음의 우리끼리 먼 곳에 고속버스를 장시간 타고 오느라, 또 민박집 찾느라 긴장도  되고 지쳤었는지, 그렇게나 많은 양의 밥과 라면을 저녁으로 먹어 치운, 우리는 한 시간도 채 안된  시간부터 아침 8시가 넘도록 푹 자서,  다음날은 무슨 출산이나 한 산모들인 것 마냥,  퉁퉁 부운 서로의 몰골을 보고는 아침에 눈뜨자마자 또 깔깔거리고 있는데,  방문 앞에서 민박집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 시내 볼일 있어서 다녀올 테니, 드라이기 쓸려면 안방에서 쓰고 나갈 때 문 잘 닫고 놀다가 오니라"


우린 삼중창단의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안녕히 다녀오세요~~”




셋이 방에서 씻으러 나오니, 어제 대충 눈인사만 했었던, 옆방의 그 세련되고 화려한 언니들이  부엌에서

당시 우리에게는 온갖 고급 재료 (참치캔, 호박, 야채, 두부 등)로 찌개와 아침밥을  짓고 있는지 맛있는 냄새가 온 민박집 전체에 진동을 하고 있었다.


“언니들 안녕히 주무셨어요?.  와 고추장 참치찌개 만드셔요? 냄새가 너무 좋아요! 제가 뭐 좀 도와드릴까요? “


“아, 그냥 대충 있는 재료들로 만드는 거예요, 밥들은 먹었어요?”


“아뇨... 저희는 늦게 막 일어나서요. 언니들 괜찮으시면, 이따 관광 가실 때 저희도 같이  따라가도 될까요?

저희끼리는 여행도 처음이고, 이곳 지리도 전혀 몰라서.... “


내가 이런저런 대화를 처음 보는 언니들과 마치 오랜만에 만난  사촌언니들인 것처럼  살갑게  얘기를 나누고 있자, 막 세수를 마친 나보다는 살짝 수줍음이 있는 홍뚱과 김뚱이,


"언니 우리 콜라랑 과자 좀 드실래요?"


라고 부끄러운 듯이 이야기를 했고, 우리의 아주 얕은 게다가 훤히 보이는 뜻을 바로 눈치챈 언니들,


"같이 아침 먹어요, 우린 별로 아침을 많이 안 먹고 양도 충분히 했어요 “


사실 뱃소리가 아주 큰 우리 뚱클럽의 눈에는 아주 턱없이 적은 양의 음식이었었지만,

친절한 언니들 덕분에 제대로 된 우리에겐 진수성찬인 한식으로 아침을 해결한 우리는, 감사한 마음에

설거지와 부엌 뒷정리를 적극적으로 도와드렸었다.


언니들이 그날은 흔들바위 그리고 오후에는 앞에 바닷가로 해수욕을 간다 하길래, 같이 동행하기로 하였다.

동행이라기보다는 사실상 언니들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듯하다.


요즘처럼 스마트폰도 없고, 인터넷 검색도 없는 시절인 데다가, 여행지에 대한 정보도 거의 찾아보지도 않고 무작정 떠난 여행이었기에, 그 언니들은 우리에게는 너무도 반갑고 감사한 민박집 인연이었다.





난생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간 강원도 설악산 국립공원의 흔들바위, 우린 실로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올라갔었다.


흔들바위를 흔들어 보이는 많은 관광객들이 밀어서 바위가 진짜 움직이는 것처럼 보여서 정말 신기했었고, 울산바위까지 가는 곳의 중간에 위치해 있었지만, 우리는 흔들바위까지에서 이미 다 같이 기진맥진하여 돌아오기로 하였다.

 

높은 그곳은 정말 공기도 맑았고, 경치는 실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웅장하고 아름다왔었던 설악산의 풍경이 특히나 맑았던 그날, 멀리까지 다 내려 보이는 잊지 못할 산과 계곡, 그리고 숲이 잘 조화롭게 펼 지진 그림 같은 곳이었었다.

 

꼭 다시 곧 오리라 마음먹었었는데....

그것이 아직까지는 마지막 설악산 여행이 되어버렸다.




그날 오후 옆방 언니들을 따라서 우리는 다 같이 민박집으로부터 걸어서 속초 해수욕장으로 해수욕을 갔다.


한여름의 뜨거운 태양과 특이하게도 검은색이 돌았던 모래사장 그렇지만 바다는 정말 푸르고 광활하고

아름다왔었다.



언니들은 살이  탈까 봐 그랬었던 것인지, 해수욕을 해야 하는데도, 곱게 풀 메이크업을 하고, 예쁜 원피스를 입고, 자릿세를 내는 파라솔에 돗자리까지 대여하여서는 조신하게 앉아 있었다.


우린 어차피 가진 돈도 없었고 자릿세가 필요 없게,

민박집에서 미리 바로 물에 뛰어들 수 있게 티셔츠와

반바지 복장으로 튜브도 없이 가서는, 바로 바다로

첨벙 뛰어들어가 버렸다.


그리고는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엄지 손가락으로 당시에 코미디에서 유행하던 코를  쓰다듬으면서

 "아오우"를 연발하며 뛰는, 어린이들같이 유치하지만 정말  신나는 파도타기 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언니들이 노점상 아줌마로부터 찰옥수수를 구입하는 것을 본 홍뚱이 나를 보며 가여운 눈빛과 목소리로 물었다.


"언니 저 언니들 찰 옥수수 사 먹는데, 우리도 저거 사 먹을 돈 있어?"


"우리 옥수수까지 살 돈은 없어, 라면도 더 사야 하고, 내일모레까지 버티려면...."



다들 심한 물놀이에 지치고, 탈수에  허기도 심하게 져서는,  하는 수 없이 언니네 돗자리신세를 지러,  

우리가 옆에 앉자, 입이 짧고 물놀이는 별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 보였던 언니들이 건네준 두 개의 찰옥수수를  또 낯두껍게 얻어먹었었는데, 살면서 그렇게나 맛난 옥수수는 처음이지  않았나 싶다.


지금 어디에 사시는지 모르는, 강릉의 민박집 두 언니들 너무너무 죄송했었고 또 감사했었어요!




그날 저녁 물놀이 후 다 같이 돌아와서, 모래도  씻고 샤워를 하려는데, 민박집 아주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오늘 방값 아직 안 줬는데?


우리는 정말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진심으로 너무나도 화들짝 놀랬다. 세명 다 동시에 삼중창하듯이,


"어? 우리 어젯밤에 드렸잖아요 방값, 5000원"

이라고 말씀드렸다.


"그건 어제 꺼고 오늘도 또 내야지.

하룻밤에 5000원인데"


우리는 실로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듯 또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듯한 충격을 받았었다.


왜 그 당연한 그 원리를 생각도 못했을까. 요즘의 대학생들이라면 그때의 우리처럼  그렇게나 물정에 어둡고또 심하게 어리숙하지는 않았을 텐데...


"네? 하루에 5000원이요? 저희가 가진돈이 그게 다라서요….저희는 5000원 내고 며칠 묵는 줄 알고..."


당연히 너무 황당해하셨고, 실로 어이없어하셨던 민박집 아주머니.... 지금 생각해 보면 그저 당연한 상식인 것을.... 너무 부끄럽다….


"아니 세상에 누가 5000원에 며칠을 묵어, 다른 데는 하루에도 8000원 이상씩 부르는데"


"아 정말요? 아 어쩌죠.... 진짜 저희 몰라서… 돈을 그거밖에 안 가지고 왔어요"


"에휴 철딱서니들이 그리도 없니, 며칠 묵으려고 왔는데?"


"원래는 3박 4일 여행하려 했었는데, 저희 그냥 내일 아침에 바로 갈게요. 너무 죄송해요.... 정말......."


"됐어 세 밤 자고, 밤에 떠들지나 말고 잘들 있다가 가, 내 원참 몰라도 어찌 그리들 모르니"


지금 이 글을 써 내려가면서도, 너무도 죄송하고, 또 어린 시절 짧았던 생각과 무지함으로

그렇게도 착하셨던 민박집 아줌마와 인심 좋았던 옆방 언니들에게 얼마나 큰 민폐를 끼쳤었는지

미안한 마음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심은 심정이다.




그날 저녁에  갑자기 크고 날카로운 여자의 비명소리가 부엌 쪽에서 들려왔다.


우리 셋은 서둘러 방밖으로 나갔고, 건넛방 언니들 중의 한 명이 저녁을 요리하다가 손가락을 너무

심하게 비어서 피가 멈추지 않고 나오고 있었다.


언니들은 급히 택시를 타고 근처 약국에서 산 약과 붕대들로 응급처치를 하였지만,

서울 큰 병원으로 가서 꿰매기로 했다 하고는,

막차를 타고 가야 한다며 짐을 챙겼다.


언니들은 남은 음식이랑 간식들을 우리와 민박집 아주머니에게 주고는, 급히 떠나버렸다.


그래서 민박집에는 이제 민박집 아주머니와 아저씨 그리고 우리 삼뚱만이 적막하게 남게 되었다.




매일 방값을 내야 돼야 된다는 사실을 안 이후로 우리 세명은 갑자기 대역 죄인이 되어버려서,

샤워를 하거나,  드라이기를 사용할 때, 부엌에 갈 때에도 죄송한 마음에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떠나기로 한 마지막날 아침, 아직까지도 늦잠을 자고 있는 우리에게 아주머니께서 밖에서 말씀하셨다.


"나 시내에 일 보러 갈 테니, 혹시 못 보면 잘들 가고 문단속 잘해놓고 가니라"


우리는  빨리 방밖으로 뛰쳐나와서, 인사와 사과를 드렸다.


"아줌마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너무 죄송합니다,

저희가 아무것도 모르고 철도 없어서 신세만 지게 돼서요"


"알았어 할 수 없지, 괜찮아. 조심해서들 가니라"


그리고 아주머니께서 나가신 후로, 우린 남은 모든

재료를 몽땅 다 털어 넣고 찌개도 끓이고

아침을 서둘러 먹으면서도, 불안해하는 김뚱과 홍뚱과 함께 서둘러 떠날 채비를 하였다.


그런데도 느려터진 우리 셋은 예상보다 너무 늦게 준비를 하게 되었고, 다 같이 배낭을 메고는,


"얘들아 빨리 가자, 아줌마 오시기 전에, 오셨을 때 아직도 우리가 여기 있으면 너무 죄송하잖아"


하며 막 대문을 나서려는 순간, 아주머니께서 대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그 순간 너무 놀랜 우리 뚱클럽의 막내인 김뚱이 아주머니께서 햇빛에 말리려고, 큰 대나무 채반에 넣어서, 장독대에 올려놓으신 콩 바구니를 마당에 쏟아버렸다.


누렁이는 신이 나서 굴러가는 콩을 보며 껑충 뛰고,

우리는 너무 놀래고 죄송스러워서, 허둥지둥 굴러가는 콩을 한알씩 주워 담고 있었는데….


민박집 아주머니께서 큰 한숨을 내쉬시면서 말씀하셨다.

"괜찮아..... 괜찮아..... 빨리!... 그냥..., 가아..... 잘들 가아~~!!




우리는 고개를 연신 숙이며 다시 한번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며  민박집을 서둘러 나오면서,  우리끼리 다짐했었다.


"얘들아 이건 정말.... 어떻게.... 휴.... 우리 나중에  꼭 다시 돌아와서, 민박집 아주머니께 감사도 드리고,

좋고 따뜻한 내복  선물이라도 꼭 해드리자. 그게 도리야"


그런데, 그러고는 30여 년이 훌쩍 넘어버린 지금 나는 머나먼 뉴질랜드 땅에서 너무 착하시고 정 많으셨었던, 정말 꼭 울 엄마 같으셨던 민박집 아주머니를 생각하며 글쓰기만으로는 결코 충분치 않은

감사와 깊은 사과의 말씀을 써 내려가고 있다.


"정말 그때 그토록 아무것도 모르고 철없이 폐를 너무 많이 끼쳐드리고 또 큰 신세를 지고, 제대로  감사드린다는 말씀도 못 드려서 너무 죄송합니다.


그렇게도 정 많으시고 너무 착하셨던  꼭 우리 엄마 같으셨던, 민박집 아주머니, 아니 민박집  엄마 정말 죄송하고 너무 감사드려요"


우리 셋의 가슴속 깊은 곳에 오래도록 간직만 한채,

전해드리지도 못했던 감사 카드를

30년이나 지난 이제서야 꺼내서는 보내드릴 길이 없어 독백하듯 글로라도 써본다.


지금쯤은 선하신 인상의 고운 할머니가 되셨을 인정 많고 너무 착하셨던 민박집 아주머니와,

그분의 온 자녀분들 그리고 가족분들께서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두 손 모아 이제 중년이 돼버린,

철딱서니 없었고 천방지축 말괄량이 었었던 삼뚱이 기도 드립니다.







삭막해지고 각퍅해진 요즘이라고들 해도 어딘가엔

양양 민박집 아주머니 같으신 착하시고,

선하시고 정 많은 분들은 늘 계시기에 그래도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아직 살만 하지 않나 싶다.


민박집 아주머니께로부터  받은 선하신 호의, 보살핌, 인정 그리고 돌봐주심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는 어른이 되어보리라 다시 한번 마음먹어 보며 이 부족한 글을 착하신 민박집 엄마를 그리며 씁니다.



***이미지: Pexel, Pixa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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