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햇살이 따뜻하게 내려앉은 어느 날 아침,
그림자는 조용히 일어났어요.
어제와 같은 자리, 어제와 같은 모습으로요.
사람들은 누구 하나 그림자를 눈여겨보지 않았어요.
"어? 내 신발에 뭐가 묻었나?" 하며
발을 툭툭 털고는 그냥 지나쳤지요.
그림자는 말이 없었어요.
그저 누군가의 발끝을 따라 걷고,
손끝을 따라 흔들리며,
주방 바닥, 베란다 창가, 아이 방의 장난감 사이를
조용히 따라다녔어요.
**
그림자는 할머니가 좋아요.
할머니는 매일같이 아기와 놀고, 밥을 만들고, 빨래를 널어요.
팔이 아파도, 허리가 쑤셔도 웃으며 하루를 보내요.
아무도 할머니에게 "수고했어요"라고 말하지 않지만,
그림자는 알아요.
할머니가 얼마나 열심히 사는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그래서 그림자는 오늘도 할머니 곁을 따라다녀요.
설거지를 할 때, 그림자는 그릇 뒤에 조용히 서 있고,
아기를 안을 때, 그림자는 아기의 등 뒤로 길게 늘어나요.
“괜찮아, 나 여기 있어.”
말은 없지만, 그림자의 마음은 늘 거기 있었어요.
**
어느 날 아침이었어요.
아기가 말했어요.
“할머니, 안아줘!”
작은 손이 할머니의 얼굴을 쓰다듬었어요.
그 순간, 그림자의 마음 깊은 곳이 따뜻하게 물들었어요.
할머니도 눈을 감고 말했어요.
“그래, 안아줄게. 우리 아기.”
그림자는 두 팔을 벌렸어요.
마치 자신이 할머니인 것처럼,
마치 자신이 아기를 안는 것처럼요.
**
그날 그림자는 처음으로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겼어요.
눈에 보이지 않아도, 이름이 없어도,
누군가를 따뜻하게 만들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느꼈어요.
“그래, 나도 필요한 존재야.”
햇살은 점점 길어졌고, 그림자도 함께 길어졌어요.
그림자는 조용히 웃었어요.
그 누구도 몰랐지만,
그림자도 그 자리에서 하루를 살아냈거든요.
**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누군가를 위해 조용히 따라다니는 그림자가 있어요.
말없이 도와주고,
뒤에서 지켜봐 주는
그림자 같은 사람들.
혹시 당신 곁에도 그런 그림자가 있지 않나요?
작고, 조용하고, 보이지 않아도—
참 고마운 존재.
그림자야, 고마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