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기억은 눈앞에 그려지는 것만으로도 고개를 돌리게 만든다.
그림이라기보단 얼룩에 가까운, 나조차도 외면하고 싶은 장면들이다.
학창시절 나는 엉망이었다. 수업보다는 복도에 더 익숙했고, 교실보다는 학생부실에 자주 들락거렸다.
친구들을 괴롭히는 걸 당연하게 여겼고, 그걸로 우쭐해졌다. 지금 생각하면 참 우습고도 서글픈 일이다. 누군가를 밀어야만 내가 서 있을 수 있다고 믿었던 그 시절의 나는, 얼마나 불안정하고도 외로웠던가.
중학교 1학년 불과 만 13세. 나는 학생부실 앞에 책상을 놓고 등교했다. 하루 이틀이 아닌, 꽤 긴 시간 동안. 피해 학생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징계였다. 매일같이 그 자리에 앉아 있었고, 하루는 상의를 벗고 운동장을 돌기도 했다.
“친구들아, 미안해!”
외쳐보았지만, 그 말은 운동장을 울리기보단, 친구들의 비웃음 속에 파묻혀 사라졌다.
이따금 그 장면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마치 오래된 캔버스 위에 지워지지 않는 잉크처럼. 붓자국은 거칠고, 색은 탁하며, 화면은 울퉁불퉁하다.
그 시절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건 여전히 어렵다. 나는 그때의 나를 끝내 용서하지 못한 채 살아왔다. 지금의 내가 그 그림 앞에 서면, 고개를 숙인 채 얼른 지나쳐버리고 만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문제아라는 딱지는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성적표를 아버지께 건네면 돌아오는 건 한숨이 아니라 주먹이었고, 어머니는 그 옆에서 묵묵히 식탁을 닦았다. “아버지께 사과해.” 직접적인 말보다 더 아픈 건 아무도 내 아픔을 알아주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나는 점점 더 조용해졌고, 점점 더 무너져갔다. 아무도 나를 이해해주지 않는다는 생각에 갇혔고, 그 안에서 점점 더 깊이 숨어들었다.
‘이 집에는 내 자리가 없다’는 생각은 언제부턴가 진실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내 마음 속에는 커다란 얼룩이 생겼다. 친구들과의 문제보다도, 나 자신보다도 더 짙고 무거운 색으로 칠해진 얼룩. 바로 부모님과의 관계였다.
시간이 흘러 우울증과 공황장애가 찾아왔다. 처음엔 단순한 피곤함 또는 무기력함 정도로 여겼지만, 나중엔 숨 쉬는 것조차 고통이 되었다. 결국 상담센터를 찾았고, 그곳에서 상담관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너무 힘이 들면, 성인이 되어 부모님을 안 보는 것도 괜찮아요.”
그 말은 내게 큰 충격이었다. 가족은 무조건 지켜야 한다고, 그래야 한다고 배웠으니까.
하지만 동시에, 그 말은 내 안에 오랫동안 눌러 두었던 어떤 감정을 건드렸다.
‘그래도 되는 걸까?’ ‘나를 위해서라면 그 선택도 가능한 걸까?’
하지만 결국 부모라는 그늘아래 있기로 마음먹었다. 난 힘이 없는 다 풀어진 붓 같았으니까.
지금도 나는 그 시절의 나를 바라보는 데에 익숙하지 않다. 그림 속 내가 나를 바라보면, 나는 눈을 돌리고 만다. 마치 벌거벗은 채 운동장을 돌던 그 순간처럼, 지금도 그 장면은 부끄럽고 고통스럽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눈 돌리고 싶은 그림들조차, 결국 나라는 사람의 일부라는 것을.
그 장면들을 지워내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 덧칠하고, 다시 그려나가는 것.
나는 이제야 배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