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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뭇별 Jul 16. 2024

밤편지

안녕, 오랜만에 당신에게 안부를 물으러 왔어요. 축축한 날씨를 핑계 삼아 그리운 마음을 꼬깃꼬깃 접어왔어요. 반가운 편지일지, 혹은 바쁜 일상 속 성가신 편지일지 모르겠지만 우선은 건네볼게요.


그땐 하루의 마지막을 함께 다듬고 어쭙잖은 위로를 건네는 게 나름 우리만의 루틴이었는데 지금은 털어놓을 곳이 없어 망가진 하루를 침대맡까지 끌고 가요.


갈 곳 잃은 두 손을 곱게 포개어 베개 밑에 넣어두곤 매일밤 당신을 위해 기도해요. 행복하게 해 달라고, 내 몫까지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좋았던 추억만 기억하게 해 달라고, 그리고 당신 또한 나를 위해 이렇게 기도하게 해 달라고.


봄은 졌지만 아직도 내 마음은 이리도 흐드러졌어요. 어쩌자고, 도대체 어쩌자고 흐트러진 흔적을 찾겠다고 미련하게 구는지. 당신은 어떤가요?


우리가 헤어졌던 여름을 찾아가면 당신의 뒷모습을 다시 붙잡을 수 있을까요. 당신이 유난히 좋아하던 가을을 찾아가면 여전히 날 좋아하는 당신을 만날 수 있을까요. 함께 하던 겨울을 찾아가면 꽁꽁 얼어붙은 우리를 녹일 수 있을까요.


헛소리를 늘어놓는 걸 보니 긴 밤이 찾아오긴 했나 봐요. 구구절절 미련한 소리는 다 잊고, 당신을 꼭 닮은 예쁜 밤 보내요.


다음에 또 안부 물을게요. 그때까지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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