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블루스

격리자들의 인생 낙서

by 김주영

결국은 나에게도 이런 일이 생기게 되었다. 크리스마스 선물과도 같은 것이었다.


2021년 12월 25일 오전 8시 50분경에 나의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다. 토요일 아침이었기 때문에 아직 잠을 자고 있던 나는 관할 보건소의 직원으로부터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

"OOO씨 맞으신가요?"

"네. 맞습니다."

보건소라는 말을 들으니, 갑자기 나의 신경이 곤두서게 되었다. 어제 오후에 보건소를 방문하여 코로나 검사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왠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어제 코로나 검사받으신 결과가 나왔는데, 양성이 나오셨어요."

"네? 뭐라고요? 양성이 나왔다고요?"

나는 잠이 확 달아나며 몸을 침대에서 일으켰다. 옆에 같이 누워 있던 아내는 나의 통화를 듣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움칫하는 몸짓을 하였다.

젊은 여자의 음성이 계속되었다. 나 같이 양성 판정을 받은 사람들에게 전화를 많이 걸었던 것처럼 차분하였지만 또한 상대방을 안심시키려는 듯이 부드러운 토운의 여성적인 면을 유지하고 있었다.

"네. 많이 놀라셨을 텐데, 양성이 나왔습니다. 질병 전파를 막기 위해서 지금부터 자가격리를 하셔야 됩니다. 가족들과 같이 사시는가요?"

"네. 부인과 자식들 두 명과 같이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 혹시 방과 화장실을 혼자 사용하실 수 있으세요?"

"네. 저 혼자 사용 가능합니다."

"다행입니다. 지금부터 집 안에서 가족분들과 격리를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중으로 여러 곳에서 전화를 많이 받으실 거예요. 증상은 언제부터 있으셨어요?"

"증상이라고 하면은... 음... 이틀 전부터 감기 초기 증상처럼 목이 약간 간지럽고 잠기는 증세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일하시는 직장이 어디세요?"

"회사에 다니고 있어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겠어요?"

"OOOO라는 회사에 다니고 있어요. 위치는 XXXX에 있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말씀드렸던 데로 오늘은 하루 종일 연락이 많이 올 거예요. 전화 오면 꼭 받아 주세요. 수고하세요!"

"네. 수고하세요!"

나는 힘없이 핸드폰을 얼굴에서 떼어 몇 초간 멍하니 손에 쥐고 있었다. 부인의 고함소리로 다시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아. 큰일 났네! 그러게 내가 자기에게 조심해서 다니고 밖에 돌아다니다 오지 말라고 안 했어?"

나는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코로나 시대가 시작된 이후로 확진자는 죄인처럼 취급받고 낙인이 찍히는 분위기였었다. 나 또한 그들을 조심했고, 자신들의 부주의한 행동의 결과로 코로나에 감염이 되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었다. 확진자와 동선이 겹친 사람들도 확진자만큼은 아니더라도 그에 준하는 격리를 받고 있었다.

내가 악기를 배우고 있는 실용음악학원의 강사분이 어제 카톡을 보냈다. 그래서 나는 어제 오후에 보건소의 선별 검사소에 가게 되었다. 문자에는 자기가 확진자와 동선이 겹쳤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나 보고도 한번 검사를 받아 보시라고 적혀 있었다. 이틀 전 저녁에 실용음악학원의 레슨 방 안에서 두 시간가량을 혼자 연습을 하였다. 강사님이 카톡이 와서 본인이 약간 늦을 수도 있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양해를 구했다. 그러나, 그는 좀처럼 도착하지 않고 있었다. 다시 폰을 확인해 보니, 그의 문자가 다시 와 있었다. 차가 막혀서 더 늦을 것 같은데, 얼굴만 보고 가시라는 거였다. 나는 연습만 하고 가도 괜찮으니, 일부러 수업 때문에 학원에 올 필요가 없다고 답장을 했다. 그라나, 그는 한사코 나를 봐야겠다고 하며, 본인도 레슨실에서 할 일이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이미 감염된 숙주가 바이러스를 옮길 다른 대상을 찾으려고 하는 필사적인 몸부림과 같았다고 느껴졌다. 하지만, 예술가로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현실 속에서 그가 처절한 경제적인 몸부림을 한 것일 수도 있었다. 몸이 안 좋았지만, 코로나에 걸렸다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고 학원에 수업을 하러 나왔을 것이다. 잠시 후, 그가 레슨실에 들어왔었다. 키도 크고 체구도 건장한 편이며 나이도 삼십 대 중반이어서 평소 건강한 이미지였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아픔을 참고 있는 듯이 힘들어 보였다. 그리고, 너무 늦게 도착했기 때문에 수업은 하지 못하고 내가 한 연습들을 한 번 점검해 주기만 하고 짧게 대화를 나누었다. 길어 봐야 십 오분 정도의 시간이었고 우리는 모두 마스크를 끼고 있었고, 서로의 거리는 1.5미터 이상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는 몸이 아프고 콧물이 나는 등 증상이 있었고, 전파력도 제일 강한 시기였을 뿐만 아니라, 나는 피곤한 날들이 계속되어 면역력이 약화되어 있었던 시기가 겹치면서 감염이 된 게 아니었을까 추측을 해 보았다.

점심시간에 도착한 검사소는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앱을 설치하여 미리 문진표를 작성하여 달라는 안내가 붙어 있었다. 목이 약간 까끌하고, 가래가 나오는 증상이 있었지만 최근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서 단순히 감기 증상이라고 생각을 하였다. 검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다음날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집에서도 마스크를 끼고 있는 등 조심했어야 하는데 내가 너무 방심했던 것 같았다. 다행히, 그 이후 가족들이 받은 검사에서 모두 음성이 나왔지만 나의 부주의 때문에 가족이 모두 감염되었을 상황을 상상하면 많은 반성이 들었다.

집의 안 방에 별도의 화장실이 있었기 때문에 안방에 갇혀서 생활을 시작하였다. 우선 가족들이 모두 코로나 검사를 받으러 갔다 왔다. 나는 회사의 관리자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회사의 연락망을 통하여 같은 사무실 내 모든 직원들이 주말을 이용하여 코로나 검사를 받도록 지시가 내려졌다. 다음 날 나온 결과에서 다행히 모두 음성이 나왔다. 몇 시간 지나자, 역학조사 관계자가 연락이 왔다. 검사 결과를 맨 먼저 알려 주었던 담당자와는 다르게 사건의 전말을 파헤치려는 형사와 같은 분위기였다.

"증상이 나타나기 이틀 전부터 동선을 말해 주셔야 해요."

나는 동선을 말하기 시작했으며, 식당의 이름, 위치, 같이 식사를 한 사람, 사무실 내에서 가까이 앉아 근무하고 있는 직원, 그들의 연락처를 그녀의 지시대로 알려 주었다. CCTV를 확인하기 위해서 나의 사진이 필요하다고 하여, 사진을 찍어 보내 주었다. 나 이외에 다른 확진자들에 대한 역학조사를 하기 위해 또 전화를 걸어야 되는 듯이, 그 직원은 나의 대답이 지연되거나 하면 몹시 초조한 듯 한 반응을 보였다. 십분 가량 통화를 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최대한 얻으려는 듯이 나의 대답을 재촉하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치료를 담당하는 직원이 전화가 왔다. 그 직원은 격리생활 시 필요한 사항을 전달해 주었고, 얼마 동안 격리를 해야 되는지를 설명해 주었다. 또한 격리를 시설에서 할지 아니면 집에서 할 것인지 물어보았다. 시설에 대한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집에 있기를 원했지만, 내가 가능한 한 빨리 집에서 떠나야지 가족 및 이웃들에게 추가 전염시킬 가능성을 줄일 수가 있어서 시설 격리를 하겠다고 했다. 아들이 2차 접종을 받은 후 2주가 지나지 않은 상태여서 내가 집에 있으면 격리 기간이 더 연장될 수가 있었던 점이 그 결정을 더 확고하게 만들었다. 시설에 빈자리가 생겨서 시에서 관할 보건소로 알려 주면, 나에게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그다음 날인 일요일 오후에 시설에 격리될 예정이라는 문자를 받았고, 월요일 오후 두 시경에 나는 집 근처 어디서 기다리다가 내 앞에 선 응급차에 올라타게 되었다. 확진되었다고 연락을 받고 나서 이틀 만에 처음으로 집을 나올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일부러 계단을 이용하여 격리기간 필요한 것들이 든 가방을 들고 건물 밖으로 조용히 나왔다. 모두들 마스크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밖에 있는 사람들은 내가 코로나 확진자인지 몰랐다. 하긴, 확진자라고 이름이 써진 것도 아니니까 알 턱이 없었다. 운전수 이외에는 다른 의료인력이 타지 않은 구급차였으므로 응급환자들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이 앞으로 이 응급차에 탈 것으로 예상되었다. 추운 날씨였기 때문에, 운전수는 나를 먼저 태워 주었다. 원래는 윗동네에 가서 먼저 다른 사람을 태워서 다시 내려오는 길에 나를 태우기로 했지만, 내가 먼저 나와 있는 것을 보고 윗동네로 올라가는 길에 태워 주었다. 차를 타고 나는 문을 닫았다. 운전석과 응급환자 구역은 두꺼운 유리로 차단이 되어 있었고, 유리를 사이로 하여 건네는 말들은 너무 작게 들렸다. 문 입구에 비치된 편지봉투 중에서 나의 이름이 적힌 것을 가지고 맨 안쪽 자리에 앉았다. 격리 통지서를 비롯하여 격리기간 동안 정부에서 주는 지원금을 신청할 경우, 필요한 서류들이 들어 있었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로 이사 와서 지리가 궁금해서 이 윗동네까지 걸어서 와 본 적이 있었다. 오래된 집들과 건물들이 있는 동네로 넉넉한 사람들이 살고 있지는 않아 보였다. 잠시 후, 응급차는 어느 곳에 멈추었고, 오십 대 후반 정도 보이는 여자 한 명이 가방 두 개를 들고 탔다. 확진자가 된 이후로 처음 접하게 된 다른 확진자였다. 내 옆 좌석에 앉아 있다가 조금 더 떨어진 자리로 옮겨 앉았다. 차는 다시 내가 살고 있는 동네로 내려왔고, 평소처럼 학원을 다녀오는 학생들, 마트를 다녀온 어른들, 약속이 있는 듯이 깔끔하게 차려 입고 걸어가는 젊은이들을 차 안에서 바로 보면서 동네를 관통하여 큰 도로로 진입하였다. 내가 타고 있는 응급차를 눈여겨보는 사람은 없는 듯하였다. 적어도 이 차를 타 본 사람들은 이 차가 무엇인지 알 것이다. 오분 정도 차가 달린 후에 큰 도로변에서 세명을 더 태웠다. 사십 대 중반의 남자와 서른 안팎의 여자 그리고 삼십 대 중반의 남자가 탔다. 차에 타기 전에 같이 서 있었기 때문에 세명이 한 가족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중에 삼십 대 초반의 남자만이 차량 안으로 들어오자 무심히 따로 앉는 것을 보니 다른 두 명과 아는 사이가 아닌 듯했다. 다른 두 명은 같이 왔는지 내 옆에 나란히 앉았다. 다섯 명이 응급 칸에 앉아 있으니, 구급 침대처럼 보이는 공간만 남았고, 모두들 말없이 비어 있는 침대를 바라다보고 있었다. 차는 어느덧 행정구역 상 다른 구로 넘어가고 있어서, 이제 더 태우지는 않고 바로 시설로 직행할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내 옆에 앉은 사십 대 중반의 남자는 핸드폰으로 누군가와 계속 연락을 주고받았다. 인테리어 같은 건설업을 하고 있는 사람인 듯하였다. 설계도면, 견적서 같은 얘기를 하였다. 본인이 코로나 양성이라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다. '하긴 굳이 그 정보를 상대방에게 줄 필요가 있을까?'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 남자는 전화가 끝나고 나서, 옆에 앉은 젊은 여자와 가깝게 하여 자신의 폰으로 같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고 응급차를 타고 가는 이 모든 역사적 순간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싶은 듯 보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저렇게 기념사진을 찍는 것을 보니 대단히 철이 없다고 생각이 들었지만, 그들은 행복해 보였다. 그 사진을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과 같은 곳에 혹시 올리지나 않을지 걱정스럽게 예상을 해 보았다. 십분 정도를 차는 계속 달렸다. 어느 도로의 코너를 돌면서 차는 멈추었다. 바로 앞에 응급차가 서 있었고, 우리가 탄 차 뒤로도 응급차들이 일렬로 정지를 하였다. 차들은 순서대로 한 대씩 건물의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차에서 내려서 우리는 어느 곳에 모였고, 그곳에서 전염이 안되도록 머리부터 발끝까지 보호장구를 착용한 직원의 설명을 들으며, 생활치료센터 전용 앱을 설치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내린 층에서 흉부 엑스레이를 촬영하였고 각자의 방으로 안내를 받아 가기 전까지 잠깐 대기를 하였는데, 그 짧은 시간에 다른 확진자들을 더 볼 수 있었다. 생후 6개월 안팎의 아기를 안고 있는 젊은 여자, 한 가족인 듯이 4~5명 정도가 같이 서 있는 사람들, 나처럼 혼자 입소한 듯 한 사람들이 보였다. 안내직원들이 각자 4명 정도의 사람들을 데리고 앞으로 격리될 방으로 데리고 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 직원이 안내를 마치고 자기 차례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내 차례가 되자, 나는 1915호로 안내를 받았다. 다인실을 사용할 수도 있다는 정보를 미리 받았는데, 다행히 1인실이었다. 호텔의 객실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마 시에서 중저가 호텔을 빌려서 격리시설로 사용하고 있는 것 같았다. 방 안으로 들어와서 안내직원은 도시락을 가져 들어가는 시간과 쓰레기통을 내어 놓는 시간 이외에는 방문을 절대 열지 말고, 자동으로 잠기는 문이므로 조심하라고 안내를 주었다. 증상이 있거나 기타 사항이 있으면 객실 내 전화를 사용해서 해 달라고 안내를 하고 나갔다. 방안 책상 의자에 앉아서 나는 한 숨을 쉬었다. 여기에서 팔일 정도를 격리된 채 지내야 했다. 어느 순간 자리에서 일어나서 방안에 놓인 비닐봉지를 열어 보았다. 침대 시트, 베개, 담요를 비롯하여 샴푸, 칫솔, 치약, 수건 등의 생필품이 담겨 있었다. 방안 곳곳의 놓여야 할 자리에 그 물건들을 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가져온 물건들인 핸드폰, 태블릿, 옷들(퇴소 시 입고 나갈 것)이 든 종이 가방도 적절한 곳에 놓아두었다. 신규 입소자들을 위하여 필요한 방송이 몇 차례 나왔고, 나는 그 지시를 따라서, 체온을 측정하여 앱에 기록하였고, 정신건강상태에 관한 진단과 관련한 응답도 앱에 입력을 해 주었다.

배정된 방으로 이동하여 혼자서 격리되고 두 시간 정도가 지나자 배가 고파 왔다. 벽에 걸려 있는 시계를 보며 식사 예정 시간인 저녁 6시가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을 하였다. 30분 전에 방송이 나오며 도시락을 이제부터 배달을 시작하겠으니, 객실 문 앞에 모든 도시락이 배달될 때까지는 절대 문을 열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도시락이 모두 배달되는 시점을 다시 한번 알려 주겠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해석이 되었다. 그러나, 20분 후에 안내방송이 다시 나왔지만, 21층의 복도에 나와서 걸어 다니시는 분은 그 자리에 그대로 계시라는 다급한 목소리의 방송이었다. 1분 뒤 다시 방송이 나왔고, 자신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것에 대한 화가 섞인 목소리였다.

"지금 21층 복도에서 움직이시는 분은 즉시, 자신의 방앞으로 가서 서 계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자신의 객실 문이 자동적으로 잠겨서 방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당황하여 복도를 서성대고 있는 것으로 짐작되었다.

"21층 복도에 계신 분은 빨리 자기 방앞으로 이동해 주세요."

마이크에서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방송 안내를 하고 있는 사람 옆에서 설명을 해 주는 듯 보였다.

"저 어르신이 청각장애가 있으십니다. 오후에 안내드릴 때도 잘 못 알아들으셨어요."

이런 혼란은 5분 정도가 지나고 나서야 진정이 되었다. 아마, 보호복을 입고 직원이 올라가서 그 사람을 방안에 넣어 주었을 것 같았다. 덕분에, 도시락 배달은 지연되어, 저녁식사는 예정시간보다 훨씬 지난 6시 40분경에 배달이 완료되었다. 방송에서 도시락 배달이 완료되었으니, 맛있게 드리시라고 안내를 하였다. 도시락은 생각했던 것보다는 내용이 괜찮았다. 국은 많이 식어 있었지만, 밥과 같이 먹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도시락을 책상 위에 펼쳐 놓고 기념으로 사진을 찍어 가족 카톡방에 올렸다. 집밥보다 더 낫다고 부인이 답글을 올렸다. 나는 안부도 전할 겸 밥맛도 좋다고 하면서 기분 좋게 답장했다. 그러자, 지금 밥맛이 좋다고 할 때냐면서 부인이 핀찬을 주었다. 나는 분위기를 파악하고 바로 꼬리를 내렸다.

객실 환기를 위해 비스듬히 열어 두었던 창문을 닫고 난방을 다시 켰다. 그리고는 침대에 누워 여러 생각에 잠겨 보았다. 갑작스럽게 코로나에 확진된 사실이 떠오르며, 나를 전염시킨 것으로 강하게 믿어지는 학원 선생에게 분노가 치밀었다. 내가 오지 말라고도 했는데, 왜 기어이 와서 이렇게 코로나에 걸리게 만들었는지 이해가 안 되었고, 격리까지 된 현실 속에서 그가 전혀 용서 안되었다. 책상에 앉으니 마주한 벽에 달린 거울 속에 비취진 나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초라한 오십 대 안팎의 중년 남자가 저 안에 있었다. '어느새 이렇게 나이를 먹어버렸을까'라는 회의감이 내 마음을 감쌌다. 가정에서는 애들이 이제 대학교와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나이에 접어들게 되었다. 어릴 때는 아빠가 마치 세상의 전부인양 강아지가 주인을 따라다니듯이 내가 놀아 주고 데려 다녔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시절은 오지 않고 자신들의 자아의식이 강해지며 부모로부터 더 멀어져 갈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오히려 더 이상할 것이다. 성장하고 어른이 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니까. 부인은 나와는 다르게 자신이 다니는 직장에서 나이에 맞게 승진을 정상적으로 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회생활하고 돈 버는 게 쉬운 게 아니듯 직장에서 힘들게 일을 하고 있었다. 내색을 잘하지 않는 편이지만, 가끔씩은 정년 전에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하였다. 나 혼자서 돈을 벌면, 살림이 빠듯할 터인데, 부인이 그동안 같이 벌어 주고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그녀에게 깊은 감사를 해야만 한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까, 지금까지 이십 년 넘게 다닌 회사에서 고생했던 기억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니, 다시 분노가 치밀었다. 그러는 사이에, 카톡 문자가 들어왔다. 실용음악학원 강사가 보낸 문자였다. 본의 아니게 폐를 끼쳐 정말 죄송하고, 별 탈 없이 쾌유되시길 기원한다는 내용이었다. 진심이 담긴 글을 읽으니, 방금까지 나를 휘감고 있었던 분노가 서서히 가라앉았다. 조카뻘 되는 나이의 강사인데, 내가 너무 속 좁게 그랬던 거 같다고 느껴졌다. 괜찮다고 대답하고 선생님도 완쾌하시라고 답장을 추가로 보냈다. 살아간다는 것이 서로 얽혀서 피해도 주고, 피해도 받고 지내는 것이 아니었던가?

집을 나올 때 가지고 온 태블릿으로 넷플리스의 드라마, 영화들을 보면서 저녁시간을 보냈다. 드라마에 빠져서 연속으로 시리즈를 따라가다 보니, 어느덧 시간은 자정을 훌쩍 넘어가 버렸다. 태블릿과 방의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쉽게 잠이 들지 않았다. 커튼 사이로 보이는 저 멀리 건물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이 희미하게 나의 시야에 어른거렸다. 눈을 아프게 할 정도로 강하지 않았고, 이 생각 저 생각에 잠기게 할 만큼 아려한 느낌을 주었다. 오늘 낮에 응급차를 같이 타고 왔던 사람들과 지금 있는 건물에서 잠깐 마주치며 봤던 사람들에 대해서 궁금증도 생겼다. 이런저런 추측이 생기다 어느새 잠이 들어 버렸다.


1520호 남자는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도시락을 개봉하지도 않은채 삼십 분 넘게 계속 전화를 하고 있었다. 업무차 몇 달 넘게 객지 생활을 하다가 코로나에 확진된 남편을 걱정하는 부인의 전화를 받고 있는 중이었다.

"걱정하지 마! 당신이 여기에 병문안을 올 수도 없잖아? 다행히 몸이 아프지는 않으니까, 여기서 십일 정도 격리되어 있다가 나갈 수 있어."

"필요한 것 있으면 말해. 내가 택배로 보내 줄게. 도시락만 먹으면 배고플 수도 있으니까, 주소 말하면 배달시켜 줄게."

"그런 건 나도 여기서 앱으로 배달시키면 돼. 너무 신경 쓰지 마! 근데, 이제 끊어야겠다. 저녁 도시락 아직 열어 보지도 못했어."

겨우 통화를 마친 남자는 잠시 후 다시 핸드폰을 들었다. 그리고는 누군가에게 부지런히 문자를 보냈다.

> 저녁 먹었어?

> 응. 거기 방은 어때? 여기 내방과 똑같겠다.

> 비즈니스 호텔을 임대했으니까, 방구조가 같지 않겠어?

> 근데, 왜 바로 답장 안 했어?

> 집에서 전화가 왔었어. 조금 전에 통화 끝났어.

> 부인이 많이 놀랐겠다.

> 그랬을 거야. 지금 전화해서 알려 줬으니까.

> 부인한테 잘해 줘. 서방님 걱정하는 분인데.

> 뭐 내가 못 한 것 있어? 돈 잘 벌어 주면 되지.

> ㅎㅎ 이러는 거 알면...

> 글쎄. 객지 생활 많이 하면 남자들은 이렇게 돼.

> ㅋㅋ 자기 합리화

> 근데, 여기는 생지옥이네.

> 무슨 소리?

> 호텔로 차 타고 같이 들어오긴 했는데, 각방 쓰고 있는 이 현실..

> ㅎㅎ 조만간 사리 생기겠네.

> 나중에 밤에 몰래 자기 방에 가 볼까?

> CCTV 달려 있어서 그러면 걸려. 방송 나오고 단단히 창피당할걸. 아니다. 잡혀 가겠다. 여자 방으로 남자가 오니까..

> 이 넘치는 힘을... 일단 밥이나 먹어야겠다.

> ㅎ 아직 도시락 못 먹었어?

> 응. 전화 때문에

> 그럼. 밥 먹어. 생각보다 맛있어.

> 통화하면서 밥 먹지..

> 아니야.. 나 좀 씻어야겠다..

> 흠..

남자는 대화를 멈췄다. 그리고는 온기가 남아 있지 않은 도시락을 열었다. 새우튀김과 소스가 제일 먼저 그의 눈을 사로잡았다. 작은 사각형의 공간마다 반찬들과 밥이 차분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는 배가 고픈 나머지 손으로 새우튀김을 집어서 소스에 적셔서 입안으로 넣었다. 국이 담긴 플라스틱 통을 열어서 입에 대고 마셨다. 젓가락을 이리저리 움직여서 음식을 점차 비워 나가자 금세 플라스틱 용기는 바닥을 드러냈다. 비닐에 넣어서 쓰레게 통 속으로 집어넣었다. 갑작스럽게 식곤증이 느껴졌고, 조금 지나자 담배가 피고 싶어졌다. 금연이라는 글자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창문을 비스듬히 열고 담배 한 개비를 물어보았지만, 이내 단념하고 다시 담뱃갑 속에 집어넣어 버렸다. 창 너머 멀리 보이는 빌딩에서 비쳐 나오는 희미한 불빛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자 피곤이 몰려왔다. 침대로 몸을 쓰러트리자 어느덧 잠들어 버렸다.

달빛이 휘영청 밝은 밤하늘 아래에 드넓게 펼쳐져 있는 목화밭을 거닐고 있었다. 목화를 눈으로 직접 본 적이 없었지만 하얀 솜 같은 것이 목화라고 그냥 판단이 되었다. 하야디 하얗게 드리운 목화의 물결을 다시 손으로 느끼며 앞으로 계속 나아갔다.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은 그의 살결을 미끄러지며 스쳐 갔다. 조그만 언덕이 보여 그 위를 올라가니까 큰 나무가 보였다. 나무의 반대편에 등을 기대고 어느 여인이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가까이 가서 그녀의 얼굴을 보니 젊은 여자였는데, 왠지 무척 낯이 익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십 대 중반 무렵의 앳된 모습으로 짐작되는 아내였다. 손에는 오래전부터 뜨기 시작했던 것처럼 보이는 스웨터가 보였고, 거의 완성이 다 되어 가는 단계였다. 아내는 그를 보자 부드럽지만 슬프게 미소를 지으며 일어났다. 그리고는 그의 몸에 방금 뜨개질을 완성한 옷을 대어 보았다. 마치 맞춤복을 입은 것처럼 그의 몸에 꼭 맞다고 생각이 들었다. 치수가 정확하게 맞게 완성됐다는 것에 아내도 만족했는지, 그의 가슴과 어깨 부위를 응시하며 만족의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 순간, 그녀의 얼굴은 조금씩 변화기 사작하였다. 생기발랄한 이십 대 초반의 얼굴, 세련되었지만 사회생활에 지쳐가기 시작하는 삼십 대 초반의 얼굴, 결혼 후에 육아에 분주해지며 자기도 어쩔 수 없게 살이 불기 시작한 삼십 대 중, 후반의 얼굴, 그리고는 지금의 너무 평범한 그 얼굴... 하지만 아내의 얼굴에는 시간이 더 흘러가고 있었다. 사십 대 후반, 오십 대 중반, 육십 대를 거쳐 칠십 대의 할머니로 변해 버렸다. 순식간에 아내는 사라지고 그는 잠에서 깨어 버렸다.


꿈이 너무 생생하여 아내가 그의 몸에 대어줄 때 느낄 수 있었던 섬유의 부드러움이 어떠했는지 잠을 깬 이후에도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었다. 몽환적인 기운에서 겨우 정신을 차렸고, 창문을 가리고 있던 커튼을 제쳤다. 칠흑 같은 밤의 어두운 장막을 배경으로 그의 얼굴이 유리창에 투영되고 있었다. 자신은 너무나도 평범한 사람처럼 생겼다고 평소 생각했지만, 창에 비치는 지금의 모습은 마치 죄인과 같은 얼굴이었다. 현재 있는 방안은 어쩌면 감옥이 아닐까 문득 생각이 들었다. 무슨 죄냐고 묻는다면, 잘 알지 않느냐고 스스로 대답을 해 보았다.

코로나로 인해 격리생활이 하루, 이틀 계속 흘러갔다. 위층에 있는 그녀는 문자로 그에게 계속 비싼 물건들을 사달라고 은근히 졸라대고 있었다. 격리시설에서 나가면 격리 해제 기념으로 명품백을 사달라고 했다. 그동안 성형비, 선물비 등으로 적지 않은 돈을 써왔던 그로서는 이제 서서히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녀가 과연 자기를 사랑하고 있는지도 의심이 들었다. 사랑이라는 표현이 맞을까 갑자기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나의 돈을 원하지만 나는 그녀의 젊은 육체를 탐한 것은 아닐까 스스로 되내어 보았다. 내가 돈이 없다면 나의 곁에 머물러 줄 수 있으리라 믿어지지 않았다. 그녀를 처음 만난 이후 한참 시간과 공을 들였던 시기가 지나고 어느 순간부터 서로가 원하던 것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주고받을 수 있었다. 그녀의 오피스텔에 머물던 시간이 잦아지면서 그들은 어느 날 갑자기 같이 확진이 되었고,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9일 밤의 격리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같은 방을 사용할 수도 있다는 기대감으로 왔지만, 가족관계가 확실치 않는 그들에게는 그런 특혜가 허용되지 않았다. 원치 않고 예상치 못한 둘의 격리는 그에게 생각할 시간을 줄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여기를 떠나 집으로 가고 싶어졌다. 그녀의 매끄러운 피부와 시원스럽게 빠진 보디라인에 비교하여 허리의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살이 찌고 얼굴도 이제는 평범해져 버린 아내의 얼굴이 보고 싶어졌다. 앞으로는 객지에서 생기는 공사현장은 가능한 계약을 하지 않아서 집 밖에서 밤을 보내는 시간을 줄여야겠다고 다짐도 들었다. 조금만 덜 욕심을 내면 그것도 가능하고 그렇게 한다고 살림이 어려워지지는 않을 거라 계산이 되었다. 십 일째 되는 날, 이 격리시설을 나가면, 지금 하는 현장 건을 마무리 짓고, 여기에서의 자신의 모든 개인사들을 정리하고 떠나리라... 갑자기 그녀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발신자를 확인하고 나서 그는 일부러 전화를 당장 받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 그의 마음이 얼마나 고요했고 안정되었는지 생각이 들었으며 이러한 평온함을 저 전화로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1411호의 방은 항상 어두웠다. 햇볕이 제일 잘 들어오지 않는 방향의 객실일 수도 있었지만, 낮에는 일부러 커튼을 이중으로 쳐서 창문을 닫아 막아 버렸고, 밤에는 최소한의 조명등만 켜 두든지 아니면 아예 불을 꺼둔 채, 의자에 앉아 있거나 침대에 누워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집에서 혼자 격리할 수도 있었지만, 그 공간을 며칠 간이라도 떠나 있고 싶어서 보건소에 연락하여 일부러 시설 격리를 신청하였다. 짧지만 강렬했던 추억이 쌓였던 장소인 원룸에서 이사를 나오기 위해 이미 관리실에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얘기를 해 둔 뒤였다. 그녀는 오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못 온다는 표현이 맞다고 생각이 들었다.

1411호 남자는 몇 년 전에 어느 학술세미나에서 그녀를 우연히 만났다. 한국의 대학원에 유학을 온 학생이었지만 한국어가 꽤나 능숙했다. 그녀의 몽골 이름은 너무 길어서 아무리 외워도 기억을 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자신을 침게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이름이 이상하게 들리긴 했지만, 그 두 글자가 부르기에도 듣기에도 편했다. 우리나라 사람이 몽골 계통이라고는 들었는데, 그녀도 너무나 한국인처럼 생겼었다. 일을 마치고 헤어질 무렵, 나한테 다가와 전화번호를 물어보았다. 당시의 분위기상 당연히 업무적인 것이라 여겨서 대수롭지 않게 번호를 가르쳐 주었다. 분주하게 늦가을을 보내고 12월로 접어들며 어느덧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졌다. 어느 날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카톡이 들어왔다.

>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어요?

> 네. 오랜만입니다. 혹시 누구신지 물어봐도 될까요? 번호에 저장이 안 되어 있네요,

> 아.. 네 ^^ 침게라고 해요. 기억나세요?

> 아. 예. 정말 오랜만이네요. 깜빡하고 번호를 저장하지 못했네요.. 미안합니다.

> 아닙니다. 그때 잠깐 본 사이인걸요,

그는 잠깐 망설였다. 뜻밖의 사람으로부터 연락을 받다 보니 어떻게 말을 이어나갈지가 망설여졌다. 어색한 적막을 그녀가 먼저 깨뜨렸다.

> ㅎㅎ 갑자기 연락해서 놀랐겠다. 그죠?

> 아니요. 연락 주셔서 고맙습니다. 잘 지내시는지 궁금했습니다.

마음에도 없는 글이 입력되어 버렸다. 사실 그녀를 처음 봤을 때 시원스러운 외모와 훤칠한 키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당시 행사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입장으로서 혹시나 누군가를 마음에 들어 했어도 이후에 어떻게 해 볼 여유가 생기지 않았다. 그 이후에 혼자 있을 시간에는 그녀의 이미지가 간간히 기억에 떠올랐던 게 사실이었지만 인연이 만들어질 사이는 아닌 것 같아서 이내 단념해 버렸다. 그런데, 이렇게 난데없이 먼저 그녀로부터 연락을 받다니 놀랐지만 믿어지지가 않았다.

> 혹시 크리스마스이브에 시간 있으세요?

뜻밖의 말에 순간 그는 멈칫하였다. 아쉽게도 그날은 선약이 있었다. 친구들과 강원도에 펜션을 예약하고 놀러 가기로 되어 있었다.

> 죄송한데, 그날은 제가 먼저 약속해 놓은 게 있거든요. 어떡하죠?

> ㅎㅎ 괜찮아요. 다음에 보면 되죠..

> 네. 다음에 봐요.

> 네.. 잘 지내세요.

연락은 이렇게 갑자기 끊어졌다. 그녀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았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다음 주에 친구들과 크리스마스 휴일을 이용하여 강원도 여행을 갔지만, 여행 동안 그녀에 대한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같이 술을 마시던 친구들이 그에게 대화에 집중 좀 하라고 핀잔을 줄 정도였다. 머리만 복잡해져 가서 그 생각의 고리를 지워버리기로 결심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같이 시간 보낼 사람이 없어서 나한테까지 연락했겠지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한 번밖에 보지 않은 사람한테 그것도 몇 달 후에 갑자기 연락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크리스마스이브를 같이 보내자고 제안을 하다니.. 모든 것을 판단하면, 자신이 아주 매력적이지 않다면, 그녀가 매우 개방적인 성격으로 짐작이 되었다. 여자들이 그에게 먼저 호감을 갖고 적극적으로 접근하였던 적이 없었다는 것을 회상해 보면, 후자의 추측이 맞을 가능성이 높았다. 하여튼,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괜한 설렘으로 시달리기 싫어서, 그녀로부터 연락을 받은 사실을 애써서 지워버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며칠 후에 사무실에서 야근을 하면서 친한 동료에게 상담을 해 보았다. 그녀와 나눈 메시지 내용을 보여 주자, 동료는 이건 그 여자가 먼저 프러포즈를 한 건데, 네가 그냥 퇴짜를 놓은 거라면서 아까운 기회를 놓쳤다고 대답을 해주었다. 동료의 대답은 오히려 그에게 자신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날 집으로 돌아와서, 밤늦은 시간에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내가 문자를 받았던 날도 늦은 시간이었으므로 그렇게 큰 실례는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이 되었다.

> 잘 지내셨어요?

> 네. 잘 지내세요?

> 네. 그때 제가 같이 만나지 못해 미안했어요.

> 아니오. 제가 갑자기 연락한 건데요.

> 혹시 이번 주 목요일에 볼 수 있을까요?

> 이번 주요?

> 네. 시간이 되세요?

> 특별한 약속은 없어요. 근데, 이렇게 빨리 보게 될지 몰랐어요. 저는 한두 달 있다 볼까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 어디서 보는 게 편하세요?

> 한국에서 몇 년 살기는 했는데, 아직 많이 몰라요. 그날은 제가 병원에 실습이 있어요. 오후 4시에 마쳐요.

> 병원이 어디죠?


그녀는 병원 이름과 위치를 가르쳐 주었고, 그는 그날 4시에 건물 정문 인근에서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그녀는 주저하는 듯이 바로 답을 안 했지만 잠시 후 그러겠다는 의미를 문자로 보냈다.

약속 시간 두 시간 전에 그는 도착하여 주변을 살펴보았다. 대도시 안에 이렇게 한적하고 조용한 동네가 있었는가 생각하게 만들 정도로 운치가 있는 곳이었다. 병원도 규모가 아담하였다. 시간이 가까워 가자 그는 초조해졌다. 십 분이 더 지나자 그녀는 정문에서 서둘러 나왔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와 시선이 마주치자 아는 척하지 않고 그의 근처를 스치며 지나가 버렸다. 그런 모습에 그는 작은 상처를 받았지만,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서 그녀의 뒤를 따라갔고 잠시 후 모퉁이를 돌아서 둘은 마주 보게 되었다. 그에게 먼저 데이트를 신청했던 때와는 다르게 그녀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의 눈길을 약간 피한 채 주위를 다소 의식하는 듯 보였다. 불안해 보이는 그녀를 진정시키려고 근처 카페에서 이야기를 하자고 먼저 제안했다. 혹시나 아는 사람이 그들의 모습을 우연히 보더라도 아주 평범한 사이로 보이도록 아예 창가 자리로 앉았다. 처음에 머뭇거리던 모습과는 다르게 심리적으로 안정이 되어가자 말수가 급격하게 늘었다. 마치 그를 상대로 한국어를 연습하려고 끊임없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자기 나라에서는 의사이며, 한국에는 정부 장학금으로 대학원에 유학 중이라는 말을 들으니까 그는 속으로 놀랬다.

남자는 여자를 데리고 미리 알아 놓은 도시근교의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강을 따라서 차는 경쾌하게 한동안 달리다가 잠시 후 한적한 시골에 도착했다. 야외캠핑장에서 바비큐를 구워 먹는 형식의 레스토랑이었고, 자리들은 이미 많은 사람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예약해 둔 자리에 앉아 그들은 바비큐 통에서 피어나는 불길에 손을 비비며 차가운 공기에 굳어버린 손과 얼굴에 온기를 가져갔다. 그녀는 모든 것들을 신기한 듯이 바라보며 스마트폰 카메라에 모습들을 담아가고 있었고, 시간이 지나자 얼굴에 웃음을 보이기 시작했다. 웃고 있는 모습을 보자 그는 세미나에서 처음 봤을 때의 그녀의 모습이 불현듯 연상되었다. 차는 다시 강변도로를 반대방향으로 달려서 도시로 들어왔다. 둘은 조용한 술집으로 걸어 올라갔다. 창 아래를 내려다보니 이십 대 안팎의 젊은이들이 반대편 건물의 지하에 있는 클럽으로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 있었다. 밤 열 시가 넘자 술집 안의 음악은 쿨 재즈 스타일의 분위기가 있고 잔잔한 느낌으로 바뀌었다. 창문 밖과 그를 번갈아 바라보며 계속 말하고 있는 그녀의 얼굴에 자리 잡은 시원스러운 눈매, 적당히 튀어나온 광대뼈, 갸름한 얼굴 라인, 그리고 가게 안의 조명에 반사된 윤기가 흐르고 있는 그녀의 긴 머리로 그는 멍하니 물이 흘러 가 듯이 시선을 옮기고 있었다. 그녀와 오늘 밤을 보내고 싶다는 강한 욕구가 갑자기 그의 몸속 깊은 곳에서 쏟아져 나오는 것을 느꼈다. 피곤하였지만, 이런 분위기에서 그런 노곤함은 그의 성적 욕망과 잘 어울려 가고 있었다.



열한 시가 넘어가자 남자는 여자에게 늦었으니 이만 나가자고 제안했다. 은은한 재즈 음악과 칵테일에 기분 좋게 취한 듯 하였으나, 그의 제안에 동의하고 코트를 입고 밖으로 따라 나왔다. 하루 종일 날씨는 맑았지만 냉동창고안을 거니는 것처럼 아주 추운 밤이었다. 조금 전까지의 따뜻하고 기분 좋은 음악이 흐르던 건물 안과는 밖은 천지차이였다. 조금 걸어가다 그녀는 추운지 그의 팔짱을 꼈다. 그는 놀라서 옆을 바라보았지만 그녀의 미소에 금방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을 지어 주었다. 거리를 오래 걷기에는 너무 추운 날씨였기 때문에, 잠시 몸을 녹일 곳을 찾다가 근처의 술집에 다시 들어갔다. 하지만, 손님으로 이미 가득 차서 자리가 없었다. 할 수 없이 가게를 나오다가, 그는 그녀에게 홀연히 돌아서며 말했다. '저기.... 오늘 밤. 저와 같이 보내실래요?' 그는 여자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처음이었으므로, 몹시 떨려서 그녀의 얼굴을 제대로 보고 말하지 못했다. 정확하게는 그 말을 하면서 순간 눈을 감아 버렸다. 그녀는 그 말을 듣고 그의 눈을 응시하더니, 잠시 후 고개를 가볍게 끄덕여 주었다. 둘은 다시 거리로 나가서 걷기 시작했고, 어색한 분위기를 깨려고 그는 무슨 말이라도 걸어 보았고 그녀는 무슨 내용이더라도 그가 어색해하지 않도록 가볍게 웃어 주었다. 잠시 후 그들은 어느 호텔로 들어갔고 체크인 후에 객실로 향했다. 망설이는 그를 보더니 그녀는 자연스럽게 리드를 해 주었다. 가벼운 샤워 후에 둘은 객실 가운만을 입은 채 침대에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몇 년만인지도 기억이 나지도 않았지만, 그는 정말 오랜만에 여자의 육체를 품어 보는 것이었다. 그녀 또한 쌓였던 욕정을 그를 통해 풀어 버리는 것처럼 둘은 몇 시간이고 쉬지 않고 서로를 탐하였다. 자신에게 먼저 데이트 신청을 했던 그녀답게 잠자리에서도 아주 적극적이고 개방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고, 그는 화끈하고 저돌적인 여자의 매력에 흠뻑 빠져 버렸다. 관계가 끝나자 침대에 누워서 얘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최근에 논문 심사를 통과하여 마음적으로, 시간적으로 여유가 생긴 것 같았다. 겨울방학이 끝나고 새 학기가 시작되는 이른 봄에는 귀국을 할 것이라고 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더 나누다가, 그녀는 자기 나라에 먼저 귀국한 남편이 있다고 했다. 결혼은 어쩌면 했을지도 모른다는 염려를 하였지만, 기혼자라는 그녀의 말에 그는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태연한 척 표정을 지어 보았다. 그녀가 귀국하기까지는 약 두 달 정도 남았다는 계산이 나왔다.



그날 이후, 둘은 자주 연락을 나누었다. 그녀에 비하여 일을 하느라 상대적으로 바쁜 그로서는 그녀가 너무 자주 문자를 보내면, 모두 답장을 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지루했던 그의 일상에 활력이 생겼지만, 그는 친구들에게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기보다는 자신만의 비밀스러운 생활로 남겨 두고 싶었다. 졸업생인 그녀는 기숙사를 비워 주어야 했고, 그는 그녀를 자신의 오피스텔에 같이 살도록 하였다. 이렇게 하여 약 두 달 동안의 밀월 생활이 시작되었다. 퇴근시간이 기다려졌고, 퇴근 후 달려가면 그녀는 새색시처럼 저녁을 해 두고 그를 사랑스럽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둘이 팔짱을 끼고 밤에는 주변 공원을 산책하였고, 주말이나 주중에도 휴가를 내서 여러 곳을 여행 다녔다. 이제는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시한부 부부로서의 조그만 순간까지라도 그들은 마치 하나의 몸처럼 서로 탐닉을 하였다. 두 달만 추억을 만들고 마치 바람처럼 스쳐가듯 그녀를 잊어버릴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떠나는 그 순간이 가까워오자 그의 마음은 불안했고, 조금씩 가슴이 깨질 듯이 아파왔다. 하지만, 그는 그런 마음의 상태를 보여주지 않으려고 노력하였다. 그녀는 귀국하고 매년 국제세미나에 참석한다는 핑계로 한국에 왔고, 어김없이 그에게 연락을 하였다. 그녀를 잊어야 한다는 생각에 애써 그녀의 문자와 연락을 외면하려 했지만, 그녀가 한국에 도착해서 주는 연락 한통에 그의 굳은 결심은 매번 와르르 무너져 버렸다. 코로나가 시작된 이후 이년이 넘도록 그녀는 한국에 오지 못하고 있었다. 어쩌면 다행이라고 생각이 들었고, 이제는 그녀와의 추억으로부터 벗어나서 새로운 만남을 찾아 떠나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녀와 두 달 정도 같이 했던 오피스텔의 공간은 그 추억으로부터 떠나는 것을 무척 어렵게 했다. 계약기간이 다시 끝나가자, 그는 오피스텔을 떠나기로 했다. 이후에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고 시설에 격리되자, 지나간 시간들에 대하여 찬찬히 바라볼 기회가 생겼다. 하지만, 그는 이런 질문에서 답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사랑했을까?"




16층 복도를 지나가며 도시락들이 방 입구마다 하나씩 놓이고 있었다. 1606호에서 간간이 새어 나오는 아기 울음소리는 고요한 적막을 깨웠다. 마침내 잠을 재우는 데 성공한 것처럼 어느새 울음소리가 멎었다. 슈쿠코는 품에서 편히 잠든 딸을 침대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새근새근 작은 숨을 쉬는 천사의 얼굴을 보고 있으니, 자신도 모르게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뒤를 돌아 걸어가 방문을 열고 복도 바닥에 놓인 비닐을 집어 들고 다시 문을 닫았다. 비닐 속의 도시락을 책상 위에 올려 놓았다. 일본에서 살았을 때 먹었던 도시락과는 음식 구성이 여러모로 달랐다. 한국생활도 이제는 익숙해졌다고 생각이 들었으나 갑자기 일본음식이 먹고 싶어졌다. 하지만 이내 단념을 하고 종이를 뜯어서 나무젓가락을 꺼내 손에 집었다. 밥알을 하나 둘 입속으로 넣어 보았지만 좀처럼 식욕이 돋지 않았다. 어렸을 때 엄마가 만들어 준 김초밥이 생각이 났다. 밥에 별다른 고미를 넣지도 않았지만 언제나 군침을 돋게 했고, 하나둘 집어 먹으면 금방 배안을 가득히 부르게 하였다. 나중에 우리 딸에게도 그런 추억을 남겨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운 추억만... 그러면서도 아기의 인생이 그녀처럼 흘러가지 않게 되기를 바랐다. 산다는 것이 어쩌면 고통과 스트레스의 연속이 아닐까 느껴졌다. 간간히 웃는 일이 생기는 것이고 좋은 사람을 만나면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는 게 아닐는지... 그렇지만 늦가을 하늘을 수놓으며 날아가는 기러기들처럼 행복은 잠시 머물다 먼 어딘가로 점점 사라져만 갔다. 또 다른 조그마한 희망만을 남긴 채..



​'엔도는 당신의 가까이에 있어.'


느닷없이 문자가 들어왔다. 회계결산이 마감되는 시기였으므로 사무실 안의 직원들은 서로 말없이 하루 종일 컴퓨터 화면과 서류들을 보면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근처에 와 있다는 말인 걸까? 슈쿠코는 궁금했다. 오늘은 너무 바빠서 야근을 해야 할 것 같은데... 할 수 없이 답장을 그렇게 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나 오늘 너무 바빠서, 야근을 좀 해야 해요.'라고 전송을 해 주었다. 그리고는 다시 서류 내용에 눈을 가져갔다. 조금 뒤에 누군가 자기 옆에 서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음. 실망인걸..."


그녀는 옆을 올려다보았다. 남자 친구인 엔도가 자신을 내려다보며 웃음을 짓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훤칠한 키에 매력적인 눈웃음은 수십 번을 보아도 언제나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사무실 안의 여직원들은 벌써부터 이쪽으로 눈을 돌려 쳐다보고 있었고, 부러운 표정으로 자기들끼리 수군거리고 있었다.


"어머. 여기까지 어떻게 왔어요? 온다고 얘기라도 하지 그랬어요?"


아침에 바쁘게 출근하느라 제대로 꾸미지도 못하고 나온 채 머리만 간단히 묶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 아주 편하지가 않았다.


"크크.. 그런 표정 짓지 마! 뭘 입고 어떻게 꾸며도 슈쿠코는 항상 이뻐!"


그녀는 얼굴이 붉어졌다. 그리고는 그를 데리고 사무실 옆 휴게실로 나갔다. 휴게실에 와 있는 옆 사무실의 직원들도 그들을 유심히 쳐다보았고, 자기들끼리 수군거렸다. 부장님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슈쿠코는 당황하여 가볍게 인사를 드리고, 남자 친구를 데리고 자리를 뜨려고 하였다.


"엔도 씨. 여기는 어떤 일로 오셨나요?"


부장님은 남자 친구에게 공손히 말을 걸었다. 어떻게 이름까지 알고 있을까 궁금증이 들었다.


"부장님. 잘 지내시죠? 제 여자 친구가 이 회사에서 근무하여 제가 잠깐 찾아왔습니다."


"아. 그렇군요. 슈쿠코씨가 여자 친구인지는 정말 몰랐네요. 정말 둘이 잘 어울리는군요. 뭐. 이제 거의 퇴근시간인데, 둘이 먼저 나가세요."


"부장님. 감사합니다만, 제가 일이 많이 남아서 오늘은 야근을 해야 되거든요."


슈쿠코는 쩔쩔매며 부장님께 말씀드렸다. 그런 모습을 보며 부장님은 그녀에게 살짝 눈치를 주며 괜찮으니 먼저 퇴근을 하라고 대답해 주었다.



퇴근시간이 거의 다 되어 갔지만, 힘들게 야근하는 사무실 직원들을 뒤로 한 채 먼저 회사를 나오는 것이 마음이 영 편하지가 않았다. 엔도의 차에 타고 둘만의 시간이 되자, 그녀는 물어보았다.


"부장님과 아는 사이였어요?"


"응. 여기 회사의 주거래처가 우리 아버지 회사야."


둘이 사귀기 시작하면서 그의 집안이 부유할 것 같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사실 몰랐던 그녀는 당황하였다.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말이 없어진 그녀를 보자 엔도는 차를 몰며 먼저 말을 걸어왔다.


"내가 부잣집 아들이어서 싫어?"


"아니오. 그런 뜻이 아니에요.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어요. 그냥 좀 혼란스러워서 그래요."


자동차의 앞창에 전개되어 오는 도쿄의 야경을 바라보던 그녀는 그 말을 하면서 약간 고개를 숙였다. 그런 모습을 엔도는 놓치지 않았고 미소를 지었다.


"나는 슈쿠코의 이런 모습이 좋아."


그 말은 그녀를 더 당황스럽게 해 주었다. 고개가 손 쪽으로 더 숙여져 갔고, 엔도는 그녀의 하얀 손을 잡아 쥐었다. 그녀의 따뜻한 체온이 손을 타고 그의 온몸으로 느껴져 왔다.


​도쿄만의 아름다운 바다 야경이 보이는 레스토랑 입구에서 차는 멈추었다. 레스토랑은 보기에도 아주 고급스러웠고, 메뉴판의 가격은 이미 눈을 의심스럽게 만들었다. 주위에 앉은 손님들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한번 정도는 텔레비전에서 본 듯한 얼굴들이었다. 그녀는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말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장실 거울을 보며 얼굴을 다시 살펴보았다. 그리고는 화장품을 꺼내서 입술을 다시 칠하고, 얼굴에 가벼운 터치를 더하였다. 눈 주위와 눈썹으로 옮겨와 살짝 공을 들여 갔다. 머리를 묶은 끈을 풀고 머리카락을 다시 매만졌다. 물소리가 들려 화장을 멈추었고, 문을 열고 나온 어느 여자가 거울 앞으로 다가오면서 그녀를 쳐다보았다. 슈쿠코는 그녀의 반응을 약간 살폈다. 상대 여자가 자신의 모습을 관찰하는 것을 보고, 그녀의 마지막 표정을 확인하였다. 상대 여자가 약간 긴장하는 듯 한 느낌을 보자, 슈쿠코는 이내 안심을 하고 잠시 후에 화장실을 나와 테이블로 걸어와 자리에 앉았다. 엔도는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더 아름답게 변해 있는 자신의 얼굴을 쳐다보며 만족해하는 그의 얼굴을 보자 슈쿠코는 다시 안심이 들었다. 그와의 달콤한 대화와 아름다운 음악, 눈으로만 봐도 식욕을 채울 수 있는 음식들로 즐거운 시간을 보낸 후에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완벽한 남자였다. 그러한 그가 왜 평범한 자신을 선택하였는지 알 수가 없었다. 화장을 지우며 갑자기 행복감과 동시에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하지만, 자신을 사랑해 주는 그가 있다는 사실에 모든 것을 잊어버리려고 했다.



어느 날 생리가 계속 안되고 있다는 것을 슈쿠코는 깨달았다. 불안한 마음에 검사를 해 보았고, 선명한 선이 눈에 들어왔다. 다음 날은 회사에 휴가를 내고 산부인과에 가 보았고, 임신을 했다는 것을 의사에게 들을 수 있었다. 갑자기 머리가 핑 돌았다. 그녀뿐만 아니라 그도 마음의 준비가 되었을까 걱정이 들었다. 조심스럽게 엔도에게 전화를 걸어 보았다.


"슈쿠코. 웬일이야? 낮에는 연락한 적이 거의 없었는데... 내가 보고 싶었나 보네."


"안 바쁘세요? 지금 일하고 있는 중이죠?"


"괜찮아. 무슨 일 있어?"


"... 조금 전에 병원에 갔다 왔어요.... 저... 임신했어요."


엔도는 말이 없었다. 조금 있다가 그의 말이 다시 들려왔다.


"정말이야? 잘 됐네. 아이가 생긴 거야. 우리 둘 사이에."


"네. 혹시 부담되세요?"


"아니야. 그런 뜻이 전혀 아니야."


엔도는 그날 슈쿠코를 만나서 안심시켰고, 며칠 후에 자신의 부모님께 그 사실을 알리고, 그녀와 결혼하고 싶다고 이야기를 하였다. 하지만, 그의 부모님은 쉽게 결혼을 허락하지 않았다. 사업상 전략적으로 다른 집안에 결혼을 시키려고 생각을 하고 있던 부모님은 아들의 말에 충격을 받았지만 그 후 조심스럽고 차분하게 그녀의 임신과 아들과의 관계에 대해 정리를 해 나가기 시작했다. 엔도의 어머니는 슈쿠코를 몰래 만나서 애를 지우고 아들과 헤어지는 조건으로 적지 않은 돈을 주겠다는 제의를 하였다. 그녀는 그런 제의는 수락하지 않겠다고 했다. 기나긴 줄다리기가 이어져가자, 엔도와 슈쿠코는 지쳐갔고, 불행하게도 그녀의 뱃속의 아기도 유산이 되어 버렸다. 엔도는 정신없이 그녀를 찾으러 다녔지만 슈쿠코는 마음을 정리하고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고향으로 내려가 몇달을 보낸 후에 가진 돈을 정리하고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나기로 하였다.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러 공항 내 출국장으로 들어가기 전에 문 입구에 서있는 엔도를 발견할 수가 있었다. 미안하다고 말하는 그를 등지고 그녀는 천천히 출국장 안으로 들어갔고, 눈물이 흘러나왔지만 뒤를 돌아다보려고 하지 않았다.



캘리포니아에 도착한 이후 모든 것을 잊어버리기 위해 영어공부에 몰두하였다. 영어공부를 해서 나중에 무엇을 하겠다는 목표도 없었지만 외국어 공부에 관심을 가져 보니, 그 재미가 서서히 느껴져 갔다. 하지만, 일본에 두고 온 추억들은 쉽사리 그녀의 마음속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차를 빌려 캘리포니아를 가로지르며 멀리까지 여행을 다니기 시작하였다. 처음으로 가 본 샌프란시스코는 아름다운 도시였다. 카페에 앉아서 태양을 즐기며 바다경치를 구경하고 있는 중이었다. 일본에서 대학을 다니며 친구들과 호기심에 담배를 피워 본 적이 있었는데, 미국에 도착해서는 적적한 마음에 담배를 가끔 피워 보았다. 그날도 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피우려고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었다. 라이터를 차에 두고 온 것이 생각났지만, 차에 갔다 오려면 거리가 꽤 멀었기 때문에 단념하고 입에서 담배를 내려놓았다.


"제 라이터 사용하세요!"


갑자기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슈쿠코는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한 동양 남자가 라이터를 건네고 있는 중이었다.


"고맙습니다."라고 말하고, 라이터를 받아서 담배에 불을 붙이고 다시 그에게 건네주었다. 남자는 호주머니에 라이터를 집어넣더니, 잠시 앉아도 되냐고 물어보았다. 불편하였지만 그의 미소는 엔도의 미소와 너무나 닮았기에 바로 거절을 하지 못하고 허락을 해 주었다. 남자는 조심스럽게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던 그녀는 그의 얼굴을 찬찬히 관찰하였다. 생김새와 영어의 억양으로 봐서는 일본 남자는 아닌 듯하였고, 오히려 그러한 점이 마음의 부담을 덜어 주었다. 눈웃음과 건강한 치아는 그의 젊은 얼굴을 더욱 인상적으로 만들어 주고 있었다. 여자의 입장에서 그는 첫눈에 호감이 가는 얼굴이었다.


"한국사람은 아니시죠? 일본 사람이세요. 혹시?"


그는 부드럽게 말을 다시 건네고 있었다.


"네. 저는 일본 사람입니다. 혹시 한국사람이세요?"


"네. 맞습니다. 저는 한국사람입니다. 제 이름은 민수입니다."


양국 관계가 그리 좋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은 양국 정부 간의 공식적인 입장이라고만 평소 생각하고 있었던 그녀로서는 남자의 국적 따위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샌프란시스코에 관광하러 오셨나요? 도시가 아름답죠?"


"네. 무척 아름다운 곳이네요. 저는 여기에 살지는 않아요. 잠깐 구경하러 왔어요. 그리고 저는 슈쿠코라고 합니다."


"슈쿠코씨. 만나서 반갑습니다. 여기에 사시는 분으로는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제가 관광객처럼 보였나요?"


"하하. 그런 뜻은 아닙니다. 그냥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는 근처에 있는 오클랜드에 살고 있어요. 헬리콥터 조종훈련을 받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면 조종사인가요?"


"네. 그렇죠. 한국에 돌아가면 헬리콥터 조종사가 될 생각입니다."


"멋지네요. 비행기나 헬리콥터 조종사와는 처음 만나 보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조종하는 것이 쉽지는 않아요. 원래 저는 비행기 조종사로 경력을 시작했는데, 헬레콥터 조종으로 바꾸고 있는 중입니다."


"대단하시네요."


그의 말에 그녀는 조금씩 호감을 가져가고 있었다.


"언제 미국에 오셨나요?"


"반년 전에 왔어요. 현재 LA에서 어학연수 중이에요."


"아. 그렇군요. 여기 샌프란시스코까지 멀리 여행 왔군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헤어지면서 서로의 이메일과 전화번호를 교환하였다. 그 후에 둘은 이메일과 전화로 여러 번 연락을 나누었고, 남자는 한 달에 몇 번씩 그 먼 거리를 직접 운전하여 그녀를 만나러 왔다. 어떤 때는 중간지점에 있는 도시에서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하였다. 그를 만나면서 슈쿠코는 일본에서 있었던 아픈 기억들을 서서히 잊어갈 수 있었다. 한 사람을 잊어버리는 방법이 새 사람을 만나는 것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이해할 수가 있었다. 그다음 해에 둘은 일본과 한국으로 각자 돌아왔고, 주기적으로 양국을 서로 왕래하면서 더 가까워져 갔다. 어느 날 일본으로 온 민수는 그녀에게 청혼을 했다. 슈쿠코는 바로 답을 하지 않았지만, 그의 청혼이 싫지 않다고 하면서 잠시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하였다. 그 후 그녀는 그에게 전화를 걸어 결혼을 하겠다고 하며, 모든 것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건너왔다. 처음 몇 달은 한국생활이 쉽지는 않았다. 한일관계가 악화될 때로 악화된 터였지만, 일본을 대하는 한국인들의 정서가 이 정도일지는 몰랐다고 후회가 되기도 하였다. 한국에 사는 일본 여자들의 인터넷 커뮤니티를 방문하여 정보를 얻어가며 한국을 서서히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산림청과 관련된 어느 회사에 헬리콥터 조종사로 취직한 남편은 바쁜 와중에도 한국생활에 적응해 가는 아내에 대한 걱정과 관심을 아끼지 않았다. 결혼 후 이년이 흘러가자 어느덧 그녀도 한국생활이 익숙해져 갔고, 한국말도 많이 늘었다. 어느 날 임신한 것을 알게 되자 남편에게 말을 하였고, 그는 행복해하며 그녀를 끌어안아 주었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느껴졌다. '이것이 행복이구나.'라고 느낄 수 있었고, 뱃속의 아기도 커가며 배는 더욱 불러져 왔다. 하지만, 어느 날 아침에 그녀의 얼굴과 배에 키스를 해 주고 집을 나간 남편은 영영 돌아오지 못하였다. 산불을 진화하기 위해 깊숙한 산중으로 헬리콥터를 몰고 들어간 남편은 계곡 사이에 일어난 돌풍과 앞을 가린 연기 속에서 그만 추락을 하고 사망을 하였다. 깊은 근심과 슬픔으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지만, 멀지 않아서 태어날 딸을 생각하며 일본 여성으로서의 마음을 굳게 먹었다. 남편이 죽은 후 매달 한국 정부에서 주는 연금으로 슈쿠코는 아기를 키우며 생활하고 있었고, 코로나가 장기화되며 코로나에 걸리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지내고 있었다. 하지만, 어디서 전염되었는지 알 수도 없이 코로나가 모녀에게도 전파되었다. 집의 난방이 설상가상으로 고장이 나버리자, 슈쿠코는 시설 격리를 신청했고, 아기의 분유통들과 기저귀들을 충분히 챙겨서 격리시설에 입소하였다. 모든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그녀의 머릿속을 지나갔고, 그녀는 먹던 도시락을 다시 비닐봉지 속에 집어넣고 휴지통 안으로 버렸다. 아기는 아직까지 별 다른 증세 없이 잘 지내고 있었다. 이제 우리는 한국사람이라고 생각이 들었고, 두 명의 하루도 오늘 저물고 있었다.




2109호에 있는 늙은 남자는 복도 밖으로 휴지통을 잠시 가지러 나왔다가 안에서 문이 잠겨버리자 방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당황해하며 복도를 서성이고 있었다. 스피커 방송에서 움직이지 말고 문 앞에 가만히 있으면 통제 직원이 올라갈 것이라고 계속해서 알려 주고 있었지만, 소리를 잘 듣지 못하는 남자는 계속 복도를 불안해하며 이리저리 움직였다. 잠시 후 보호복으로 중무장한 직원 한 명이 엘리베이터가 열리며 복도에 등장하였다. 그는 노인을 데리고 방앞으로 안내를 하고, 안에 넣어 주었다. 자신 때문에 각방마다 배달될 도시락이 지연되고 있는 것을


몰랐던 그 남자는 보호복을 입은 직원에게 저녁식사가 언제 제공되냐고 물어보기까지 하였다. 직원은 다소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상대가 청력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온터여서 이내 단념하고 곧 도시락을 받을 거라고 대답해 주었다.

노인은 격리시설의 방안이 답답하였다. 여기서 열흘이나 갇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아찔하기만 하였다. 젊은 시절 군대 영창에서 지냈던 기억이 떠 올랐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어머니가 홀로 자식들을 키웠던 까닭에 항상 가난을 면치 못하였다. 강원도 산골짜기로 배치받았던 군대에서 휴가철이면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 월급으로 받는 팔천 원과 휴가비로 받는 몇 천원이 그가 휴가기간 며칠을 버텨야 할 유일한 돈이었다. 서울에서 공장을 다니는 고향 친구가 자취하는 단칸방에 신세를 지기도 하였지만, 항상 그 친구에게 의지할 수만은 없었다. 상병을 달고 나온 휴가 동안 군용 열차를 타고 저 멀리 고향까지 내려가 보았지만 별다른 대접을 받지도 못하고 일찍 집을 나서야 했다. 거리를 거닐고 마주치는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 보였고,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자신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날은 여동생의 생일이었는데, 아무것도 못해 주었기 때문에 마음이 무척 무거웠다. 문득 길을 가다 눈에 들어온 것은 젊은 여자가 입는 화사한 원피스였다. 크기나 색깔, 디자인으로 보아서 동생에게 정말 잘 어울릴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남의 물건에 손을 대었다. 매장 직원이 잠시 한눈을 판 사이에 옷을 들고 재빨리 매장을 빠져나왔다. 하지만, 가게 사장과 점원은 그를 끝까지 쫓아왔고, 미칠 듯이 도망가다가 막다른 골목에서 그는 잡히고 말았다. 경찰서를 통해서 군헌병에게 그는 인계가 되었고, 그 후 군대 영창으로 이송되어 수감생활을 하게 되었다.


군대를 제대한 이후로 공장을 다니거나, 건설현장에서 일용근로자로 일하며 그의 힘든 사회생활이 시작되었다. 또래의 젊은이들이 대학을 다니고 졸업 후에 어엿한 직장생활에서 일하는 모습은 그에게는 다른 부류의 인간들이 사는 세상만 같았다. 하지만, 그의 인생에 처음으로 어쩌면 마지막으로 행복이라는 것이 살며시 찾아왔다. 동남아에서 한국공장의 관리인으로 일하고 있는 군대 동기가 그에게 일자리를 제공하여 그는 이년 정도를 베트남에서 지내게 되었다. 호찌민의 혼잡한 도심에서 벗어나 교외에 자리 잡은 공장들은 근처의 베트남 현지인들에는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곳이었다. 재밌는 일들이 많이 기다리고 있을 도시로 나가는 젊은이들이 많았지만, 집의 생계를 부담해야 하는 이들은 이곳 공장에서 제공할 수 있는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이러한 현지 젊은이들을 보면서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자신도 여기서 버는 많지 않은 돈을 모아서 한국으로 보내고 있었다. 그 돈으로 병든 어머니 치료비와 동생 학비, 가족 생활비 등에 보탤 수가 있었다. 젊은 여공들을 볼 때면 한국에 있는 여동생이, 그리고 자신이 출근하는 길가에 항상 우두커니 앉아서 멍하니 행인들을 바라보는 나이 든 베트남 여자에게서는 어머니의 모습이 연상되었다. 그들과 우리들은 닮은 점이 참 많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밍이라고 하는 베트남 여공은 일이 아직 서툴러서 언제부터인가 그의 눈에 자주 들어오고 있었다. 열심히 하려고 하는 모습은 좋았지만 단순한 작업일지라도 그녀에게는 적성에 맞지 않아 보였다. 어느 날 공장에서 작업 도중에 기계에 손을 다치는 사고가 생겼다. 그는 베트남 직원들과 같이 그녀를 데리고 호찌민시의 병원으로 차를 몰고 급하게 달렸다. 눈물을 닦으며 고통을 참아 보려는 그녀의 모습에서 베트남 여인 특유의 강인함이 엿보였다. 다행히 수술이 잘 되어 그녀는 큰 장해는 남지 않게 되었다. 그녀는 공장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는데, 그는 왠지 시간이 갈수록 밍이 보고 싶어졌다. 어느 날 밤을 꼬박 새우고 고민을 하다, 다음날 그는 밍의 고향으로 향하였다. 고향의 한 식당에서 일하고 있던 그녀는 그의 모습을 보자, 놀랐지만 그가 바라보는 눈빛 속에서 자신을 향한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동남아의 우기가 시작되자 매일같이 몇 시간 동안은 세찬 비가 쏟아졌다. 호찌민 구시가지를 같이 걷고 있던 그와 밍은 비를 피해 어느 건물의 지붕 밑으로 달려들어갔다. 둘은 서로의 젖은 모습을 보며 웃기 시작했다. 그녀의 윤기 나는 까만 머리칼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물과 하얀 얼굴에 자리 잡은 초롱한 눈과 그 눈썹에 앙증맞게 이슬 맺힌 작은 빗방울들을 보는 순간, 그의 눈에는 웃음이 서서히 사라지며 강렬한 불길이 타 오르기 시작했다. 밍은 잠깐 고개를 숙였지만 다시 그의 눈을 응시해 주었다. 둘은 창문이 큰 건물로 들어가 방을 잡고 첫날밤을 보내었다. 시간이 흘러서 둘 사이에는 남자아이가 태어났다. 그는 밍과 아이를 한국으로 데려가기 위해 여러 가지 준비를 하려고 한국으로 혼자 먼저 돌아갔다. 그러나 다시 베트남으로 돌아왔을 때는 밍은 교통사고로 이미 세상을 떠나 있었다. 그는 슬픔으로 가슴이 찢어졌지만 시간이 지나자 정신을 차리고 아들을 데리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나이 든 어머니가 아들을 같이 돌보아 주면서 힘들게 키워 갔다. 그는 조선소에서 노동을 하면서 힘든 일, 위험한 일들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하며 억척스럽게 살아갔다. 덕분에 한때는 팔자라고 생각했던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소음 사업장에서 오랫동안 일을 하게 된 이유로 그의 귀는 서서히 나빠져 갔고 회복되지는 못하였다. 아들이 혹시나 커가면서 학교 친구들이나 동네 또래 아이들에게 동남아 혼혈이라고 놀림을 받지는 않는지 걱정이 되었지만, 씩씩하게 잘 자라서 지금은 군대까지 가서 생활하고 있는 중이다. 자신의 불행했던 군대 시절이 아들에게 되풀이되지 않도록, 군대에 있는 아들에게 돈은 부족하지 않게 챙겨 주었다. 살림이 조금 나아지자, 주위에서 결혼을 하라고 여자들을 소개해 주었지만, 소개해 주는 사람의 체면 때문에 형식적으로 만남에 나가는 정도였다. 그의 마음속에는 젊은 시절 베트남에서 많은 시간과 아름다운 추억을 같이 했던 밍이 영원히 자리 잡고 있었다.




길다고 생각했던 열흘의 격리생활이 끝나고 코로나 확진자들은 격리시설에서 하나둘씩 퇴소하기 시작했다. 나도 퇴소하는 날 아침에 방안의 침구류, 세면도구 등을 모두 소각용 비닐에 넣고 보호장비로 중무장한 직원의 안내를 따라서 건물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그리고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내의 차를 타고 집으로 왔다. 당시 격리시설에 입소하는 과정에서 마주쳤던 다른 확진자들은 다시 마주칠 수 없었지만 모두 저마다의 일상으로 복귀하는 과정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이후에 코로나는 델타 변이에서 오미크론으로 새로운 변이를 거치면서 전파력이 더 강하게 되었다. 다행한 것은 증상이 이전 변이들보다 상대적으로 경증이라는 것이었다. 확진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였고, 시설 격리는 심각한 중증환자가 아니면 받아주지도 않는 상황으로 바뀌었다. 시간이 더 흘러서 이제는 확진자들의 수가 급감하였고, 코로나로 인한 영업시간 제한이 없어졌고, 실외에서의 마스크 착용 의무도 해제되었다. 이러한 변화가 격세지감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나는 지금도 그때의 격리 시절 기억들이 떠오르며 격리 과정에서 마주쳤던 사람들, 각자의 격리된 방에 흩어져서 열흘을 같이 보냈던 사람들은 코로나 시대에 저마다의 자기 인생에 관한 블루스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든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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