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고(El Tango)는 19세기 후반 아르헨티나, 우루과이의 항구도시의 변두리 지역에서 생겨난 주변부 문화로 시작하여 많은 변화를 거치며 100년 넘게 그 장르를 유지하고 있는 음악이자 춤입니다.
1880년대에 남아메리카 플라타 강변 지역에서 탱고가 탄생하였는데, 플라타 강(Rio de la Plata)을 경계로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가 있으며, 각국의 수도인 '부에노스 아이레스'(Buenos Aires)와 '몬테비데오'(Montevideo)는 플라타 강의 항구도시로 탱고의 탄생과 발전에 중요한 장소가 되었습니다.이러한 연유로 두 나라는 탱고의 기원이 각자 자기들이라고 주장합니다. 두나라가 공동신청하여 탱고는 2009년에 유네스코 지정 무형 문화유산으로 승인되게 되었습니다.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와 우루과이의 몬테비데오로 배를 타고 들어온 선원들에 의해 쿠바의 '하바네라'(Habanera) 음악과 리듬이 소개되며 탱고 탄생의 초석이 마련됩니다. 이후 대평원의 가우초(Gaucho, 북미의 카우보이 같은 느낌)를 배경으로 생긴 우루과이, 아르헨티나의 '밀롱가'(Milonga) 음악을 거치며 최종적으로는 탱고가 탄생하게 됩니다. 그래서, 탱고 추는 살롱을 지금도 '밀롱가'라고 부릅니다. 하바네라는 음악살롱에서 추는 커플 댄스를 위한 음악이었지만 템포는 느린 편이었습니다. 밀롱가 음악시대를 거치면서 상대적으로 템포가 빨라졌으며, 또한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온 이민자들에 의해 탱고의 색깔이 정립되었습니다.탱고의 기원이 되었던 밀롱가나 초기 탱고는 플롯, 바이올린 등 간단한 악기로 유쾌하게 연주되는 곡이 많았지만, 유럽이민자의 대량유입으로 탱고에 우울함, 향수, 슬픔의 정서가 깔리게 되었습니다.우선, 앙헬 비욜도의 1905년 곡인 '라 모라차'(La Moracha)를 들어 보겠습니다. 한 가우초를 사랑하는 씩씩하고 활발하게 사는 한 여성의 이야기로 경쾌한 느낌의 초기 탱고, 밀롱가 음악입니다.
사르미엔토, 알베르디 같은 아르헨티나의 정치인들은 유럽문화에 바탕을 둔 문명을 세우고자 유럽 이민자를 적극 받아들였고, 1880~1920년 사이에 들어온 이민자는 500만 명 이상이었고, 가난한 이민자들은 도시 변두리에 공동 거주하였습니다. 이민 1세대는 주로 남성들이 홀로 오는 경우가 많아서, 짝 없는 가난한 유럽 남성 이민자들에게는 사창가의 역할은 많은 의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당시는 술집, 모임장소, 음악, 춤이 있는 문화공간적 역할도 하고 있었습니다.
새로운 꿈을 찾아서 유럽에서 남아메리카의 도시인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이주했지만, 그들의 삶은 기대와 달리 힘든 현실 속에 살아야 했고, 제도와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이 강한 남자들이 군림하는 세상 속에서 살아남아야 했습니다. 고향을 향한 그리움을 삼키며 하루를 살아남기 위해 자기보다 강한 자에게 굴복해야 하며, 그 설움을 이기기 위해서는 더 강한 자가 되어야 했습니다. 거리를 지나며 결투에서 칼을 맞고 숨진 남자의 시신을 보게 되며, 성욕을 해소하기 위해 찾은 사창가를 나오며 느끼는 고독감, 창녀에게 사랑의 마음을 주었으나 되돌아온 실연의 상처, 사창가의 술집에서 대부(Compadre, 보스적 의미) 격의 강한 남성이 매력적인 여성과 추는 춤과 주위에서 이를 지켜보는 시선들, 이 모든 것은 탱고에감성적이고 격정적 정서를 탄생시켰습니다. 카리브해 지역 음악, 브라질 음악처럼 즐거운 느낌은 절대 아니었고, 그 바탕에는 슬픔, 우울함, 무거움, 긴장감 같은 정서가 깔린 춤과 음악이었습니다.이러한 변화된 탱고의 정서를 배경으로 1917년에 나온 까를로스 가르델의 곡인 '미 노체 뜨리스떼'(Mi noche triste, 나의 슬픈 밤)을 들어 보겠습니다. 여성의 배신으로 인한 상실감이 가사에서 드러납니다.
유럽이민자들에 의해 여러 악기가 도입되어 탱고연주에 사용되었는데, 그중에서 독일 이민자들로부터 왔을 것으로 보이는 '반도네온'이라는 악기는 무겁고 진중한 느낌을 표현하는 탱고의 색깔에 어울려 중요한 탱고 악기로 자리를 잡습니다.
탱고의 노래를 들어 보면, 이탈리아 칸초네적 느낌, 탱고 기타리스트의 연주느낌에서는 스페인 기타가 느껴지는 등 유럽의 여러 음악들이 융합되어 있습니다.밀롱가의 주요 악기로 사용되는 기타는 탱고의 대중화에 기여를 하였습니다.
약 100년 전에는 아메리카 대륙의 부유층 자제들은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보내서 공부를 하며 인맥도 쌓게 했는데, 이렇게 탱고는 파리에 소개되어 인기를 얻게 되고 유럽의 다른 국가들에 전파가 되었습니다.'올리베리오 히론도'(Oliverio Girondo)라는 아르헨티나 청년은 그런 청년 중 한 명이었으며, 파리에 탱고를 전해주고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대중들이 탱고를 추도록 기여하였습니다. 탱고는 음란하다고 생각하여 일반대중은 썩 내켜하지 않았지만, 파리에서 탱고는 점잖아지며 변화가 되었습니다. 그런 변화를 반영한 곡이 '라 꿈빠르시따'(La Cumparsita)입니다. 탱고의 가장 대표적인 곡들 중 하나가 된 음악이며, 1916년에 우루과이 뮤지션인 '헤라르도 마또스 로드리게스'(Gerardo Matos Rodríguez)가 작곡한 곡입니다.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탱고 음악을 국제적으로 널리 알리고 발전시킨 유명한 탱고 뮤지션들은 '까를로스 가르델'(Carlos Gardel)과 '아스또르 삐아솔라'(Astor Piazzola)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Por una Cabeza'(뽀르 우나 까베사)는 아르헨티나의 작곡가 '까를로스 가르델'이 작곡하고 '알프레도 레 페라가' 작사한 1935년 탱고곡입니다. 제목은 스페인어로 '머리 하나의 차이'라는 의미로, 경마에서 근소한 차이로 패배한 경주마를 인용하여 사랑의 밀고 당기기에서 미미한 차이로 진 남자의 심경이 그려져 있습니다. 먼저 오리지널 버전을 들어 보겠습니다.
아스또르 삐아솔라(Astor Piazzola)는 아르헨티나의 탱고 작곡가이며 반도네온 연주자입니다. 전통 탱고와 클래식, 재즈를 접목시켜서 누에보 탱고(Nuevo Tango) 장르를 개척하였습니다. 탱고를 춤보다는 음악에 더 비중을 두려고 한 특징이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미국에서 반도네온 연주자로 활동하였으며, 프랑스 파리에서는 클래식을 공부하여 그의 탱고 곡들이 클래식 공연장에서 오케스트라와 협주가 이루어지게 되었으며, 미국에서는 재즈와 탱고가 접목이 되도록 하였습니다. 1982년에 그가 작곡한 오블리비온(Oblivion, 망각)이라는 곡을 공유하며, 탱고에 대한 저의 글을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