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스폿 인트로(Jazz Spot Intro)
어려운 시간들을 보낼 때도 항상 행복은 함께 존재한다. 그것을 볼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을 뿐이다. 구름으로 뒤덮인 하늘 위로 날아오른 비행기의 창문을 내다보며 느낀 점이다. 푸른 하늘과 태양은 구름 위에 어김없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일본 나리타 공항에 착륙하기 위해 비행기가 하강하기 시작했고, 조금 있다가 아주 긴 해안이 시야에 들어오며 비행기는 잠시 후 활주로에 닿았다.
나리타 공항에 내린 후에 도쿄 중심부까지 들어가기 위해서 급행열차인 스카이라이너를 탔다.
스카이라이너는 공항터미널에서 우에노 역을 종착역으로 하고, 직전에 닛포리 역에서 정차한다. 호텔 체크인 시간이 오후 다섯 시여서 많이 남은 공백 시간을 메우고자, 닛포리에서 내려 오차노미즈 역으로 가는 기차로 갈아탔다. 오차노미즈는 "오차"(마시는 차)와 "미즈"(물)의 합성어인데, 이 지역이 과거에 차문화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추측이 되었다. 실제로 하천이 이 지역을 관통하고 있고, 옛날에는 하천의 물과 차문화의 연관성이 있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오늘 오차노미즈 지역을 방문한 이유는 악기점들과 Naru라는 재즈클럽을 가보기 위해서였다. 역에서 내리면 가까운 거리에 악기점들이 도로를 따라 양쪽으로 위치해 있다.
기타 전문점으로 들어가니, 가게 주인의 허락을 받았는지 십 대 소년이 에릭 클랩턴의 블루스곡인 Wonderful tonight을 기타 솔로로 연주해 보고 있었다. (아래는 유튜브에서 가져온 다른 연주자의 기타 솔로 영상임)
https://youtu.be/N__seKQS2RA?si=iVqIQNBLy08X4qyy
블루스 특유의 그루브를 살려서 기타로 연주하기에는 아직 어리지만, 템포와 리듬이 정확히 지켜지고 있는 것으로 봐서는 체계적으로 기타 수업을 받고 있는 학생인 것 같았다. 곡이 끝나자, 학생의 아버지인 듯한 분이 가게사장과 얘기를 나누었다. 이층으로 올라가니, 나의 눈에 들어온 것은 로즈마리 재료로 만든 플라멩코 기타였다. 한번 시연을 해 보고 싶었으나, 가격을 보니 거의 천만 원에 육박하였다. 가까이서 기타 외관만 오랫동안 관찰하다 가게를 나왔다. 기타 가게 바로 옆에 Naru라는 재즈클럽이 있었지만 문을 열지 않아서 다음을 기약하며 걸음을 다시 옮겼다.
더운 시간에 캐리어를 들고 다니다 보니, 그만 지쳐서 하천 옆에 있는 음식점으로 들어가서 두 시간 정도 생맥주와 꼬지를 먹으면서 휴식을 취하였다.
호텔로 가기 위해 역으로 향했다. 도쿄의 복잡한 기차, 지하철 시스템에 헷갈려서 반대방향 노선을 타기도 하는 등 시행착오를 거듭한 후에 겨우 호텔에 도착했다. 사십 분 만에 올 수 있는 거리이지만 거의 두 시간을 허비했다. 호텔에서 샤워 후에 약간 휴식을 취한 후, 신주쿠 지역으로 이동하여서 "재즈 스폿 인트로"(Jazz Spot Intro)라는 재즈클럽에 도착하였다. 건물의 지하에 위치한 협소한 공간에 연주자와 관객들, 바텐더들이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빼곡히 들어앉아서 재즈라는 공통주제로 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도쿄는 오래전부터 국제도시이며 많은 외국인들이 체류하고 있어서 다국적 문화와 인종이 공존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제는 서울도 그런 도시로 변화고 있지만, 도쿄는 그 역사가 오래되었다. 그래서, 전통적인 일본을 느끼고자 한다면, 글로벌 메가시티인 도쿄는 적당한 장소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문화적 다양성을 고려한다면 재즈가 아직 도쿄에서 명맥을 이어 나가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재즈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아프리카와 유럽의 음악이 혼합되어 탄생된 문화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또한, 재즈는 보컬이 주된 역할을 하기보다는 악기들의 연주가 곡의 전체를 대부분 이룬다. 서로의 언어를 잘 이해하지 못해도 음악으로 교감을 나누는 것이 재즈라고 할 수 있다. 영화 "라라랜드"(La La Land)에서도 남자 주인공이 비슷한 대사를 말한다. "이 땅에 이민 온 당시의 사람들은 영어를 잘하지 못했지. 그렇지만, 바에 모여서 악기로 서로 소통했지. 그들에게 재즈는 바로 영어였던 거야." 대충 이런 내용의 대사였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그들의 재즈를 들으며 술을 마시던 관객들도 영어에 아직 미숙한 이민자들이었다.
https://youtu.be/eKz5Hida8n4?si=INgTYbT_NgMfqj4V
재즈 스폿 인트로(Jazz Spot Intro)도 이런 맥락에서 나는 이해를 해 보았다. 이 클럽의 관중들은 절반 넘게 외국인들이 차지하고 있다. 백인들, 중국인들, 한국인들, 흑인들이 간단한 일본어 정도는 할 수 있지만, 나머지 청중인 일본 현지인들과는 제대로 의사소통이 될 수가 없다. 연주자들도 다양한 국적이 섞여 있지만, 그들은 일본어 대신에 재즈로 소통을 하고 있다. 다양한 연령대, 평범해 보이는 사람부터 매력적인 젊은 여성까지 모든 인종들이 이 공간에서 재즈로 소통하며 외국생활의 애환을 달래는 듯했다. 입장료에 주류 한 잔을 포함한 가격인 1,500엔을 주인에게 내고 자리에 앉으면, 주인이 먼저 건배를 건네 오고 근처의 다른 손님들도 같이 건배를 청한다. 연주자들은 어느 정도 실력이 있어야 앞에서 공연을 하겠지만, 연주자들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앉아 있는 관객들도 그냥 즐기면 된다. 재즈는 논리적으로 이해하기보다는 느껴야 하는 것이다.
호텔로 가는 기차를 타러 가는 도중에 역 근처에서 색소폰 솔로 버스킹 공연이 있었다. 한국에서도 인기를 끈 박효신의 "눈의 꽃"의 일본 오리지널 버전인 "유끼노 하나"를 연주하고 있었다. 조용히 따라서 노래를 불러 보았다.
호텔로 돌아와서는 "스콧 조플린"의 The Entertainer라는 래그 타임(Ragged time) 음악을 들으며 오늘의 재즈 여행을 마무리했다. 영화 Sting의 ost로 나온 곡이기도 하다. 래그 타임 장르는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에 미국에서 인기가 있던 음악 장르로 재즈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고, 재즈의 발전과 더불어 쇠퇴하였으나 재즈에 영향을 주었다. 피아노 곡 장르이며, 왼손으로는 베이스 음을 일정하게 치지만, 오른손에게는 자유로움을 준다. 온갖 변주와 자유로운 연주를 허용한다. 이런 점은 재즈에서도 찾을 수 있다.
https://youtu.be/7_ZotkSW8 Lk? si=IsOGzPAKVqFZrPw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