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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마표류기 Sep 30. 2021

말 사귀기 25

39. 대화를 위한 고삐


오늘은 영하 4˚C입니다. 밤새 눈이 많이 내리고 바람도 많이 불었지만 나는 무엇에 홀


렸는지 이 새벽에 눈을 밟으며 마장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말했습니다, 승마는 마


약 같은 것이라고. 제가 타고 있는 말인 필란더가 자그마한 마방에서 내가 오기만을 기다린다고 생각


하면 아무리 춥거나 덥더라도 나가게 됩니다. 24시간 중 길어야 2시간이 바깥 나들


이를 할 수 있는 기회인데 얼마나 간절하겠습니까? 하지만 오늘 추위는 말을 타기에


적합한 정도가 아닌 것 같습니다. 땅도 꽁꽁 얼어 아무리 염화칼슘을 뿌렸다 하더라도 말이


미끄러지기 쉽고 또 흥분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아주 조심조심 실내마장에서 타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역시 나와 같은


‘마(馬)니아’들이 실내마장에 모여 있네요. 그들도 매서운 추위에 나오기까지 무수히 많은 고민과 갈등을 했을 겁니다.


실내에 말이 많아 일렬로 우측으로 돌기 시작했습니다. 좁은 실내마장에서 궤적을 따라 평보, 속


보, 좌속보를 할 때, 만약 전체 흐름과 방향이 맞지 않는 말이 있다면 다른 말에 방


해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한정된 공간에서는 통일성 있게 기승을 하곤 합니다. 보통 공람 마술이라고도 하는데 방


향과 발걸음이 같으면 아무리 많은 말이 있다 하더라도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중 속도가 뒤처질 경우에는 안전을 위해 중앙으로 빠져 다른 말


에게 방해를 주지 않는다는 규칙도 정해져 있습니다.


그런데 나와 멀리 있던 한 사람이 낙마하고 말았네요. 기승자를 떨어뜨린 말은 가뜩


이나 좁은 마장을 휘젓고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말들을 위협하면서 잡힐 듯 잡히


지 않고 도망 다니던 말은 결국 교관님들에 의해 붙잡혔습니다. 상황은 정리되고 다행히


낙마한 분도 크게 다치지는 않았습니다. 말을 타다 보면 수많은 사건 사고가 발생합니다. 기승자의 작은 실수는 나비효과가 되어 주변에 피해를 주기도 합니다.

사실 오늘 낙마한 분은 말에서 자주 떨어지는데, 내가 옆에서 보기엔 자기 자신도


모르게 고삐를 너무 자주 당기는 버릇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론에서는 다리로 추진을 해서 고삐를 당


긴 만큼 컨트롤해주면 좋다고 하지만 쉽지 않은 동작입니다. 특히 고삐는 말과의 소통수단 중에 하나입니다. 또한 이를 사용함에 있어서는 양보가 필수적입니다. 양보는 고삐를 항상 팽팽하게 유지하되 말이 불편해하면 풀어주고 느슨해지면 다시 팽팽하게 유지해 주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어렸을때 종이컵 전화기처럼 말이에요. 실이 팽팽하면 잘 들리고 느슨하면 잘안들렸죠. 물론 강하게 당겨버리면 끈어져 버렸습시다. 그럼 서로간의 대화는 불가능해 지겠죠. 우린 끈어지지 않게 풀어주었다 당겨주었다 하면서 팽팽하게 소통해야합니다.  하지만 낙마한 그분은 고삐를 브


레이크처럼 다뤄 말의 속도가 빨라지면 당겨버리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기좌가 말에 확실히 고정되지


않은 채로 말입니다. 물론 연세가 많아 다리에 힘이 부족한 탓도 있겠지만, 그렇다 해도 고삐에 너무 의존하면 안 됩니다. 제가 이렇게 잘 아는 까닭은 저 또한 초보자 때 그 분과 똑같은 과정을 거쳤고, 교관님들이 항상 지적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처음에 승마를 시작할 땐 고삐의 단순한 기능밖에 모릅니다. 고삐를 당기면 말이 설 것만 같은 착각, 고삐를 돌려 목만 돌아가게 하면 방향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그것입니다. 물론 훈련이 잘된 말이나, 일명 ‘무딘 말’은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삐에 의존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고삐를 당기고 있고, 모든 기승을 고삐로만 해결하려고 합니다. 어느 선수가 말했습니다.


“타면 탈수록 고삐에 의존하면 안 된다.”


내포된 의미는 어렵지만 오래 탈수록 이 말을 기억해야 하며, 이를 실천할수록 말과의 대화가 쉬워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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