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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어머니를 만날 수 있다면

by 글마중 김범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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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만날 수 있다면 이 선물을 전하고 싶다.

어젯밤 아주 잠깐 어머니를 만났다.

장소는 우리 집이었고

공간은 꿈속이었다.

돌아가신 지 20년 되었는데 꿈속 만남은 네댓 번쯤?

며칠 전 뜬금없이 어머니한테 서운했던 일이 떠올라 사라지지 않고 자꾸 맴돌았다.

아마 그래서 어머니 꿈을 꾸었던 모양이다.

37년 전 1월 새벽 4시.

극심한 통증에 잠을 깼다.

셋째 출산 예정일을 하루 앞두고 양수가 터진 것이었다.

아침 일찍 남편 전화를 받은 어머니가 첫 버스를 타고 10시경에 도착했다.

뒤이어 내가 해산하는 꿈을 꿨다는 시어머니도.

시골에서 헐레벌떡 달려온 두 어머니는 산통에 시달리며 누워있는 나를 나무랐다.

“낳는 순간까지 움직여야 해. 양수 터졌다고 엄살떨지 말고 얼른 일어나!”

내 어머니는 시어머니한테 정성껏 점심을 차려 대접하라고 엄명을 내렸다.

시어머니는 사부인 고생하시지 않게 구석구석 집안 청소를 해놓으라고 했다.

두 어머니는 이야기 삼매경에 빠져있고 나는 쑤시는 배를 부여잡고 걸레질을 했다.

내 어머니는 진정 내 편이 아니었다.

섭섭하고 그지없이 야속했다.

건강하고 키도 크고 똑똑한 막내 여동생한테도 이럴까?

아닐 것이었다.

어머니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나를 무녀리라고 부르며 무시했다.

무녀리의 사전적 의미는 말이나 행동이 좀 모자란 듯이 보이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며

비슷한 말로는 멍청이, 못난이, 칠푼이가 있다.

어머니는 공부도 못하고 편편 약질인 데다 마른버짐이 생기다 만 것 같은 얼굴을 뒤덮었다며

손톱 끝만큼도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다고 외척들에게 대놓고 광고했다.

그날 저녁 준비와 설거지도 내가 했다.

산후조리해주러 왔으니 확실하게 대접받아야겠다고 했다.

밤 10시. 남편이 퇴근해 어머니와 셋이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갔다.

양수 없는 출산의 고통!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분만 대기실을 기어 다니다 똥까지 쌌다.

분만실로 가자며 들어오던 간호사가 소리쳤다.

“아유 냄새, 더러워 죽겠네 정말!”

간호사 말이 끝나기 전에 어머니도 핀잔했다.

“아이그 칠칠치 못하기는. 너 때문에 간호사 선생 고생하잖아!”

그러고는 어쩔 줄 모르는 남편을 손짓으로 불렀다.
“하던 이야기 참 재밌네. 마저 해보게나.”

간호사 팔에 끌려 대기실을 나서는 등 뒤에 대고 어머니가 말했다.

"쥐띠는 새벽 3시 넘어 낳아야 팔자가 좋아. 아무리 아파도 금방 낳지 말고 이 악물고 참어!"

분만 침대에 눕자마자 바로 아기가 태어났다.

간호사가 대기실에 대고 큰소리로 말했다.

"새벽 3시 5분 남자 아기 순산했습니다."

어머니와 남편이 3시를 넘겨 다행이라고 손뼉 치며 환호했다.

어머니도 밉고 남편도 미웠다.

보름 동안 산후조리를 해주겠다던 어머니는 닷새도 안 돼

헛구역질이 나는 것을 보니 임신인 것 같다는 올케의 전화를 받자 친손주가 더 귀하다며 서둘러 떠났다.

37년이 지났어도 어제 일어났던 일처럼 생생하게 아프다.

청상과부였던 우리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우리를 버리지 않고 키웠으며 나는 빚까지 얻어 대학에 보냈다.

그런데도 70이 넘은 지금까지 수많은 감사는 깨끗하게 잊어버리고 몇 가지 상처를 들추어 곱씹고 있다.

그렇게 못된 딸이건만 꿈속의 어머니는 다정한 얼굴로 다섯 음절의 말을 따뜻하게 건넸다.

실현될 수 없어서 더 간절한가?

단 하루만이라도 어머니가 살아 돌아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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