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나 원고 청탁받았다.
- 딸이 보내온 네덜란드 아침 풍경. 맑고 희망찬 내 마음 같다 -
누워서 게임을 하고 있는데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대인 관계 폭이 좁고 문자로 대화하기를 좋아하는 내 전화기는 언제나 꿀 먹은 벙어리다. 어쩌다 걸려온 건 광고나 불온 목적의 전화였기에 심드렁하게 발신자를 확인했다. 뜻밖으로 유달상 교수님이었다. 벌떡 일어나 공손한 자세로 전화를 받았다.
“다음 주 수요일 오후 2시에 시간 낼 수 있나요?”
골프 연습장 가는 시간이었지만 간단히 접고 시간 낼 수 있다고 했다. 아주 중요한 선약이라 하더라도 교수님이라면 주저 없이 바꿀 수 있었다.
문학박사 유 교수님은 그림자도 밟기 송구한 스승님이다. 2014년부터 시민대에 다니며 유 교수님한테 소설 교육을 받아 2021년 10월 문학시대를 통해 소설가가 되었다. 등단 이후에도 강의 내용 전체가 어록이라 계속 수강하고 있다.
“아끼는 후배한테 글 청탁을 받아서 작가님을 추천했어요. 고료는 섭섭지 않을 겁니다. 자세한 것은 그날 만나서 이야기하지요.”
글이라면 교수님이 백 배 천 배 더 잘 쓴다. 아무래도 탈모 관리를 전문으로 했던 미용장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나에게 길을 열어주려고 양보한 것 같았다. 어쨌든 작가로서의 첫 원고 청탁을 받은 것이었다. 서막이 장쾌하게 열린 것 같아 호흡이 벅찼다. 동생이 준 새 수첩을 펴고 등단 기념으로 사위가 선물한 명품 펜으로 질문 내용을 꼼꼼하게 기록했다.
드디어 그날이 왔다. 교수님은 우리 집까지 와서 나를 태우고 약속 장소로 갔다. 3월에 탈모 방지 샴푸와 토닉 출시를 앞둔 대표이사와 교수님 후배 마케팅팀장을 만났다. 외국 생활을 오래 한 대표이사는 이탈리아 전문가에게 아로마 오일 및 유효 성분 배합 기법을 전수받았다고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금방 한 시간이 지나갔다.
순수하고 인자한 모습의 대표이사였다. 경험을 토대로 기획한 사업이라 신뢰할 수 있었고 마케팅팀장은 기발한 아이디어가 무궁무진해 찬탄을 금치 못했다. 준비한 궁금증을 하나하나 풀어가며 글 바탕을 엮던 나는 어렵지 않게 결론 내릴 수 있었다.
- 이 사업을 성공시키기에 나의 필력은 형편없이 부족해 -
며칠 지났지만 나는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이렇게 큰소리친다.
원고 청탁받아봤으면 이미 성공한 거나 다름없다고.
2023.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