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

42. 어쩌다 보니

by 글마중 김범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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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AAN은 네덜란드어로 풍향계, 바람개비를 뜻하며 딸네 갤러리 이름이다 -


기분 꿀꿀할 때는 달달한 거 보기만 해도 위로가 된다.


무 썰다 손가락 끝도 썰었다. 삼빡한 느낌을 따라 피가 뚝뚝 흘렀다. 구급상자에 그 많던 1회 용 밴드가 다 어디로 가고 딱 한 개 남아있다. 잃어버리기 전에 얼른 사다 놔야겠다. 운동을 마치고 곧바로 아파트 상가 약국으로 갔다.


“대일밴드 한 갑 주세요.”


친절하지도 불친절하지도 않은 무표정한 약사가 밴드 갑을 건넸다. 현금은 길가에 있는 단골 좌판에서 채소를 사기 위해 카드로 계산했다. 카드를 받아 드는 약사 얼굴에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다. 은근히 기분 나빠 속으로 헐뜯었다.


-그렇게 장사해서 돈 벌겠니? -


싱싱한 채소를 골고루 사고 현금을 꺼내는데 하얀 종이가 눈에 띄었다. 약국에서 받은 카드 영수증이었다. 영수증을 읽던 나는 약사 표정이 왜 변했는지 알게 되었다.


품목 1회 용 밴드

수량 1

가격 1000원


대일밴드 한 갑이 천 원일 줄이야!

적어도 사오천 원은 할 줄 알았다.

어쩌다 보니 나는 아주 재수 없는 손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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