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

44. 요람에서 무덤까지

by 글마중 김범순

- 파리 루브르 박물관 대형 스핑크스 -


지난 수요일 시의원 박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저녁 식사 모임에 참석했다. 박은 시청에서 퇴근하는 대로 집이 가까운 나를 먼저 태우고 안의 집으로 갔다. 박과 안은 삼십 년 지기 친구다. 박은 성격이 느긋하면서 속이 깊었고 안은 제비처럼 민첩하고 입바른 말을 잘했다. 안의 집이 가까워지자 박이 말했다.

“몸살 나서 못 나오겠다고 하는 데 따뜻한 국물이라도 먹이려고 억지로 끌고 가는 거야. 빈속에 그냥 약 먹을까 봐.”


안은 박을 보자 핀잔을 멈추지 않았다.

“야, 우리 집 한두 번 와 봤냐. 그렇게 못 찾고 헤매는 게 말이 되냐고? 에이그 속 터져. 덩치만 크지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다니까!”

하도 민망해서 그만하라고 안의 옆구리를 찔렀다. 전에도 그 비슷한 아슬아슬한 장면을 여러 번 목격했는데 박은 신기하리만큼 아무런 자극을 받지 않고 안의 일에 발 벗고 나섰다. 듣기 싫은 말을 조금도 견디지 못하는 나로서는 참으로 불가해한 일이었다.


식당에 도착해 밝은 조명 아래서 보니 안은 얼굴이 핼쑥하고 입술까지 부르텄다. 말만 거칠게 할 뿐 박의 유세를 돕기 위해 근 한 달간 전국을 돌며 고생을 자처했기 때문이었다. 숙성된 우정의 아름다운 참모습에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묘한 충격을 받았고 절친인 박과 안이 몹시 부러웠다.

내 주변의 지인들은 부드럽고 상냥한 어투로 듣기 좋은 말만 한다. 잘 살아서 그런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왜 그럴까? 곰곰 생각해 보니 바른말하는 친구는 무조건 멀리해서 그렇게 된 것이었다. 요람에서부터 함께한 절친이 있다면야 좋겠지만 그건 이미 물 건너갔고 이제부터라도 사람을 사랑하며 사람답게 살아서 무덤에서도 잊지 못할 영원한 절친을 만들어야겠다.


절친(切親) : 더할 나위 없이 친한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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