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도 강경나루 둑길을 자동차로 천천히 달렸다. 폭넓은 금강 가득 물이 넘실거려 가슴이 뻥- 뚫렸다. 3분쯤 달렸을까? 공사 표지판이 줄줄이 세워져 있고 도로 폭이 갑자기 좁아졌다. 설상가상! 대형 트럭이 마주 오고 있었다. 운전자는 빵빵거리며 속도를 조금도 줄이지 않았다. 후진에 약한 나는 진땀을 흘리며 남편한테 소리쳤다.
“당신 뭐 하는 사람이야. 오늘 나 여기 온다고 말 안 했어? 당장 현장 감독 잘라!”
“알았어, 감독은 물론 과장까지 해고할게”
언제부터인가 남편한테 무소불위 권력을 부여했다. 사회적 약자인 남편의 기를 살려 주기 위해서다. 처음에는 적응을 못하더니 시간이 흐를수록 능숙해지며 아주 통쾌해했다.
이 대화법에는 단점이 있다. 바로 부작용이다.
아주 가끔 현실을 잊고 나를 야! 하고 부른다.
44. 요람에서 무덤까지
- 파리 루브르 박물관 대형 스핑크스 -
지난 수요일 시의원 박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저녁 식사 모임에 참석했다. 박은 시청에서 퇴근하는 대로 집이 가까운 나를 먼저 태우고 안의 집으로 갔다. 박과 안은 삼십 년 지기 친구다. 박은 성격이 느긋하면서 속이 깊었고 안은 제비처럼 민첩하고 입바른 말을 잘했다. 안의 집이 가까워지자 박이 말했다.
“몸살 나서 못 나오겠다고 하는 데 따뜻한 국물이라도 먹이려고 억지로 끌고 가는 거야. 빈속에 그냥 약 먹을까 봐.”
안은 박을 보자 핀잔을 멈추지 않았다.
“야, 우리 집 한두 번 와 봤냐. 그렇게 못 찾고 헤매는 게 말이 되냐고? 에이그 속 터져. 덩치만 크지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다니까!”
하도 민망해서 그만하라고 안의 옆구리를 찔렀다. 전에도 그 비슷한 아슬아슬한 장면을 여러 번 목격했는데 박은 신기하리만큼 아무런 자극을 받지 않고 안의 일에 발 벗고 나섰다. 듣기 싫은 말을 조금도 견디지 못하는 나로서는 참으로 불가해한 일이었다.
식당에 도착해 밝은 조명 아래서 보니 안은 얼굴이 핼쑥하고 입술까지 부르텄다. 말만 거칠게 할 뿐 박의 유세를 돕기 위해 근 한 달간 전국을 돌며 고생을 자처했기 때문이었다. 숙성된 우정의 아름다운 참모습에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묘한 충격을 받았고 절친인 박과 안이 몹시 부러웠다.
내 주변의 지인들은 부드럽고 상냥한 어투로 듣기 좋은 말만 한다. 잘 살아서 그런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왜 그럴까? 곰곰 생각해 보니 바른말하는 친구는 무조건 멀리해서 그렇게 된 것이었다. 요람에서부터 함께한 절친이 있다면야 좋겠지만 그건 이미 물 건너갔고 이제부터라도 사람을 사랑하며 사람답게 살아서 무덤에서도 잊지 못할 영원한 절친을 만들어야겠다.
절친(切親) : 더할 나위 없이 친한 친구
45. 아가야
설에 7개월 된 손녀가 왔다.
코비드로 산후 조리원도 면회금지라
태어나서 처음 만난 것이다.
낯을 가려 얼른 방으로 들여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을 맞추기 시작했다.
핏줄이라 알아보는 거라고 호들갑을 떨고 싶었다.
까꿍! 얼굴을 감췄다 불쑥 나타나면 활짝 웃었다.
특히 머리 쓰다듬어주는 것을 좋아했다.
돌아갈 때 머리를 쓰다듬으며
잘 가 또 만나자 하니까 똑바로 쳐다보았다.
맑고 영롱한 두 눈이 사랑과 호기심으로 가득하다.
아가야 엄마 아빠랑 잘 지내고 있지?
너는 모를 거야.
너를 우주만큼 사랑하는 가족이 아주 많다는 것을.
46. 봄이 오고 있어요.
봄을 품은 탑정호 상류 갈대밭
오랜만에 남편과 탑정호 나들이를 했다.
갈대밭만 보면 까닭 없이 쓸쓸하다.
설렘의 뒤안길 같은 묘한 애수 때문인지도.
봄을 품은 소나무와 물결의 기상이 씩씩하다.
물풀 속에 갓 부화한 송사리가 가득했다.
겨우내 추워 추워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자연의 섭리는 참으로 놀랍다.
연둣빛이 살짝 스민 수양버들.
노루발톱만큼 촉을 틔운 버들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