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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거목이 되는 법

by 글마중 김범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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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한국미용장협회는 3년마다 선거를 통해 이사장을 선출한다.


이번에는 대전지회 박 후보와 서울지회 김 후보 두 명이 최종 등록을 마쳤다. 1번 박 후보는 시의원이고 세 번째 출마였다. 2번 후보는 부회장으로 대학교수이며 국회의원 며느리다.

선거관리위원회에서 경남지회를 시작으로 전국 공동유세 날짜를 발표했다. 대전 미용장 45명을 원팀으로 단결시킨 지회장이 단톡방에 문자를 보냈다. 대전 지역 유세 때 똘똘 뭉친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자고. 불가피한 사정이 있는 몇 명 빼고 참석하겠다는 답이 연이어 올라왔다.

대전 유세장에서 1번 박 후보가 단상에 올라갔다. 미용 교육 사업과 미용산업 해외 활성화 향상을 위해 뚝심 있게 밀고 나가겠다고 어필했다. 대전지회가 1번 후보를 지지하는 것은 같은 지역이라 팔이 안으로 굽어서가 아니었다. 일 잘하기로 유명한 대전 시장이 K 뷰티산업을 중점사업으로 추진 중이기 때문이었다. 시의원과 이사장 임기가 같아 공약 실천이 가능했으므로 이번에는 1번 후보가 반드시 이사장에 당선되어야 했다.

2번 후보는 무슨 일이든 맡기기만 하면 일사천리로 해내는 만능 재주꾼이었다. 대학의 다국적 강의를 통해 개발도상국 학생들을 유치하여 한국 미용을 글로벌화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전국의 미용장들은 행사 때마다 성우 뺨치는 좋은 목소리로 똑소리 나게 진행하는 모습을 계속 봐왔고 오래전부터 국제 미용대회 심사위원을 역임해 이사장으로 손색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박빙의 승부가 예상되었다.

1번 대전 후보의 연설은 안정감 있고 편안했다. 말에 강약이 없어 이목을 집중시키는 힘은 부족했으나 오히려 믿음직한 모습으로 돌아오는 반향효과가 있었다. 단점이 플러스 요인이 되는 그런 경우였다. 2번 후보는 재기 발랄한 표정과 또랑또랑한 말투로 청중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나는 초장부터 기가 죽었다. 유세가 모두 끝난 뒤 평정심을 되찾고 보니 2번 후보는 젊어서 그런지 무게감이 없었다. 현란한 언변이 공약 실천 능력과 직결되는 건 아니다. 미용장들은 미용 분야의 석학들이다. 미용계 발전에 어떤 인물이 적합할지 정확하게 분석하리라 굳게 믿기로 했다.

선거운동은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

대전지회 회원들은 인원을 배분해 지방 유세에 함께했다. 나는 서울 유세에 동행했다. 서울 지회장은 대놓고 1번 후보를 지지했고 이사장은 부회장인 2번 후보를 지지해 양분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대전 지회 단톡방에는 날마다 각 지역 유세를 다녀와 의견을 올렸다. 분위기가 싸한 지역과 호응도가 높은 지역이 엇비슷해 승리한다 해도 근소한 차이일 것 같았다.

2023년 2월 14일 우리나라 중심도시 대전에 전국 미용장이 모였다.

정기총회와 이사장 선거를 하기 위해 약 350명의 회원이 참석한 것이다. 총회와 신입생 환영회가 끝나고 투표하기 전 마지막 연설이 이어졌다. 1번 후보는 얼굴에서 빛이 났다. 마사지받았느냐고 물었더니 잠 못 자고 피곤하면 그렇단다. 타고난 건강 체질이다. 환하게 웃으며 여유로운 어조에 강약을 실어 흠잡을 데 없는 연설을 했다. 대전지회 회원들의 환호성과 우렁찬 박수가 쏟아졌다. 연설문 준비 없이 즉석연설을 자랑으로 삼는 2번 후보가 단상으로 올라갔다. 지친 기색이 역력했고 말도 더듬었지만 지지하는 팀의 함성은 회의장을 뒤흔들었다.


출마했으면 오직 승리뿐!

규모가 크거나 작거나 모든 선거는 다 똑같았다.

투표를 마치고 회의장으로 돌아오는 기분이 씁쓸했다. 간밤 꿈이 뒤숭숭해서 더 그런 것 같았다. 늘 개꿈만 꾸면서도 꿈의 영향을 받다니. 바보 같다. 대전 팀들은 입을 열지 않고 초조하게 높은 천장만 바라보며 개표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개표 결과를 발표하겠습니다! 얼굴 에 웃음이 가독한 사회자가 마이크를 잡았다. 누군가가 말했다. 사회자는 2번 후보를 지지한다고. 대전지회 회원들은 공든 탑이 무너지는 것 같은 절망감에 휩싸였다.

1번 후보 210표

2번 후보 121표

기권 1표

1번 후보가 13대 이사장으로 당선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우 와 - !!!”


대전지회 회원들이 벌떡 일어나 함성을 지르며 손을 흔들었다. 1번 후보와 함께 2주일 동안 전국 유세에 빠짐없이 참여했던 대전지회 선거위원과 임원들은 눈시울을 붉혔고 A는 감격해서 눈물을 철철 흘렸다.

이번 선거 후보는 3명이었다. 후보 B는 미용계 발전을 위해 1번 후보가 이사장이 될 수 있게 힘을 실어주고 기꺼이 포기했다. 나는 2번 후보도 그러기를 바랐다. 얼마나 합리적이고 아름다운 모습인가? 선거 비용도 절약해 경제적이고. 하지만 다 끝나고 보니 그건 아니었다. 이번 선거를 통해 2번 후보는 더 단단해지고 넓어지면서 거목으로 폭풍 성장했을 것이었다.

선거는

승자도 키우고

패자도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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