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시간 비행 끝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도착했다. 영어가 안 되므로 우리나라 사람들 뒤를 열심히 쫓아 걷고 또 걸어 출국장에 도착했다. 줄이 짧아 싱거울 만큼 금방 입국 수속이 끝났다.
그런데 이를 어쩌나!
그 많던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가고 한 명도 눈에 띄지 않았다.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이냐?
그때 어디선가 우리나라 단체 여행객이 모여들며 큰소리로 말했다. 43번으로 나가면 된다고.
복도를 나오니 금방 면세 구역이었다. 작년에는 이렇지 않았는데.
나가기 전에 물건을 또 사라는 배려?
아니면 내보내기 직전까지 팔아보자는
고도의 상술?
짐 찾는 곳은 1층에 있을 것이었다.
배기지 라운지 43번 화살표를 따라 계단을 내려와 열심히 걸었다.
갑자기 화살표가 사라졌다. 탑승 구역이었다.
안내 직원한테 비행기 표를 보여주며 수화물 찾는 곳을 물었다.
직원이 먼 손짓을 하며 돌아가라고 했다.
뭔가 단단히 잘못된 것 같았다.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한참 걷다 우리나라 중년 남자를 발견했다.
반갑게 다가갔다.
“한국인이세요?”
그는 기분 나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고개를 젓는다는 것은 한국말을 알아들었다는 뜻이다.
나쁜 목적으로 아는 체하는 것 같아서 저럴 것이었다. 해외에서 만난 반가움을 이용해 얼마나 나쁜 짓을 많이 했으면 저럴까? 입맛이 썼다.
다시 천장에 붙은 배기지 라운지 43번 화살표를 따라 걸었다.
스태프 룸 앞 라운지에 여자가 앉아 있어 물어봤더니 직원이 아니라고 했다.
한층 내려왔으므로 옆에 있는 계단을 올라갔다.
입국 수속을 마친 곳으로 되돌아온 것이었다. 그나마 낯이 익어 조금 안심이 되었다.
그때 우리나라 중년 남성이 수속을 마치고 나왔다.
“한국인이신가요?”
“네.”
그렇다고 해줘서 얼마나 고맙던지!
비행기 표를 보여주며 짐 찾는 곳을 물었다.
“어쩌지요? 환승 입국장으로 들어오셨네요.”
어쩐지,
어쩐지 이상하더라.
그래 김범순 하는 일이 늘 그렇지 뭐!
“다시 입국 수속을 밟으려면 힘드실 텐데요.”
“영어가 되면 직원한테 물어봐 주시겠어요?”
그가 흑인 안내직원에게 유창한 영어로 내 상황을 설명했다.
고맙고 또 고마웠다. 기회가 된다면 딸네와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어 전화번호를 묻고 싶었지만 참기로 했다.
흑인 직원이 앞서며 따라오라고 했다. 한참 만에 직원과 프리패스 입국 게이트를 통과했다.
그가 휴대폰으로 한국말하는 직원에게 물어보고 번역된 화면을 보여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말아요. 끝까지 안내해 줄게요.”
폰 전면에 아내 사진과 더불어 가족사진이 저장되어 있었다. 우리나라 남편들에게서 발견하지 못한 모습이라 놀라웠다.
멀리 22번이 보였다. 혼자 가도 된다며 고맙다고 반복해서 인사했다.
수화물 벨트에 다 내 것 같기도 하고 다 아닌 것 같은 가방 일곱 개가 하염없이 돌고 있었다.
가방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사위와 작은손녀가 가맣게 기다리고 있었다.
너무 늦어져서 다른 출구로 나가 엇갈린 건 아닐까 걱정을 많이 했단다.
늦어진 사유를 과장되게 설명하자 사위가 말했다.
"암스테르담 스키폴공항에서는 출구로 나오는 한국인보다 환승하는 숫자가 훨씬 많아요."
난딸네 집 강아지
1년 3개월 만에 만났는데 알아보고 반가워 어쩔 줄 모른다. 이래서 못된 사람더러 개보다 못하다고 하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