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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내가 걷던 길에도

by 글마중 김범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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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서로 벚꽃


언고개 산서로는 어린 내가 걷던 길이다. 그 민둥산 길에도 아름드리 벚나무가 줄지어 서있다. 휠체어에 탄 남편과 데크길을 한참 걸었다.


벚꽃도 해거리를 하는지 올해는 꽃흉년이 들었다. 서운하고 속이 상했다.


59년 전에는 소달구지가 지날 정도의 좁은 자갈길이었는데 지금은 대전 벚꽃 5대 명소이자 10대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로 손꼽히고 있다.


중학교 2학년인 나는 동네 선후배들과 함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새벽밥을 먹고 언고개를 넘어 통학했다. 기쁜 날보다 고달픈 날이 훨씬 많았던 특징 없고 지루한 산길이었지만 모퉁이마다 추억이 새겨져 있어 세월이 흐를수록 각별하다.


그때 나는 속으로 다짐하고 다짐했었다. 제사 없는 날마다 마중 나온 할머니한테 뿌리 공원이 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꼭 예쁜 집을 지어드리겠노라고. 그 꿈이 얼마나 허황되었는지는 서른도 안 돼서 깨달았지만.


언고개 쉼터를 떠나 벚꽃 길을 따라 달렸다.

침산동 황새날 → 지푸재 → 정생 1동 → 정생 2동 사기점골 → 금동 → 장척 → 소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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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의 봄을 연주하는 소호동 산벚꽃


언제나처럼 소호동 버스 정류상에서 차를 멈추었다. 스쳐 지나치기에는 너무너무 아까운 풍경이었으므로. 사진으로는 그저 그렇지만 감정이 담긴 눈으로 감상하면 꿈속처럼 아련하다. 발길이 안 떨어질 만큼.


벚꽃 길은 소호동 산너머 대별동에서 끝이 난다.


벚꽃만 좋아하는 남편을 따라 늦게 벚꽃에 반한 나는 가오동 → 판암동 → 세천동으로 차를 몰았다. 세천동부터 시작된 벚꽃 길은 신상동 → 방아실 입구 → 사성동 → 대전 경계를 지나고 어부동을 거쳐 충북 회남까지 끊임없이 이어진다.


세상에서 가장 긴 벚꽃길인 것이다.

정확하진 않지만

대략 30km는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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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7일 충북 회남 대청호의 반쯤 핀 벚꽃


길가는 다 피었는데 도회지와 먼 호수 주변이라 기온이 낮아 그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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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1일 새잎이 돋는 대청호 수변공원

가물어서 그런지 물 높이가 아주 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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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1일 용담댐 벚꽃


멀리 보이는 벚꽃길이 꿈결 같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강 건너 풍경이 비현실적일 정도로 아름다운 건 왜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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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 벚꽃길


용담댐에서 돌아오는 길. 차 한 대 세울 공간이 눈에 띄었다. 얼른 차를 세우고 길 가운데로 뛰어가 사진을 찍었다.


올해도 눈이 부실만큼 벚꽃 감상을 했다.

벚꽃, 내년에 또 만나자.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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