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 카페에서 생긴 일
크리스마스는 지났지만
카페 1층 입구에서 반기는 곰돌이는
기분 좋게 하는 그 무엇이 있었다.
2025년 6월 8일은 한국 미용장 대전지회 임원회의가 있는 날이다. 임원 12명은 오후 7시에 보문산 입구 누룽지 삼계탕 집에서 만났다. 물에 빠진 닭은 싫어하는데 구수하고 쫄깃한 찰 누룽지는 아주 맛있었다.
전희영 감사가 아시안 마켓에서 구입한 두리안 크림 비스킷을 나누어줬다. 삼계탕 먹고 뭔가가 궁금하던 차에 비스킷은 찰떡궁합이었다. 염치 불고하고 한 개 더 먹었다. 선물 하나가 이렇게 여럿을 상쾌하게 만들다니! 선물 나누는 방법 한 가지를 또 배웠다.
식사 후 최승이 감사 추천으로 분위기 좋다고 소문난 카페로 이동했다. 손님이 꽉 차서 2층으로 올라갔다.
예쁜 화분이 반기는 깔끔한 2층 입구
클로드 모네 : 헤이그 근처 튤립 꽃밭
클로드 모네 : 양산 쓰고 오른쪽으로 몸을 돌린 여인
클로드 모네 : 햇빛 속의 포플러나무
명화가 다섯 작품이나 걸려있어 깜짝 놀랐다. 소문날 만큼 품격이 있었다. 다만 화가와 작품명을 명시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2층 역시 손님이 많아 회의 진행이 어려워 테라스로 나갔다.
분위기 만점 테라스
대전에 이렇게 좋은 곳이 있었다니!
날이 어두워질수록
풍경은 더 그윽하고 아름다웠다.
빙수야 팥 빙수야!
빙수야 망고 빙수야!
이런!
먹는 것에 환장해서
쿠키랑 빵, 커피 사진을 못 찍었다.
저녁 식사는 회비에서 지출했으나 더는 공금을 쓸 수 없어 디저트는 만원씩 걷었다. 전화기만 들고 나서려다 혹시 몰라서 지갑을 가져왔다. 얼마나 잘했는지.
팥 빙수와 여러 가지 쿠키, 소금빵, 크림빵을 주문했다.
푸짐한 디저트는 회장님이 계산했고 커피는 이혜정 임원이 샀다. 만원 씩 걷은 건 다음 기회를 위해 프로 살림꾼 총무님이 맡았다.
8시 56분 2층 테라스에서 찍은 달
테라스로 나오면서 나는 추억에 잠겼다. 고1 때 바로 이 카페 앞길을 할머니와 걸어내려 갔기 때문이다.
옛집은 무수리다. 무수리에서 고개를 넘어 보문골과 배나무골을 거쳐 산등성이를 따라 오르고 오르면 높디높은 끙재에 다다른다. 끙재는 오르기 너무 힘들어 끙! 소리가 절로 나온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끙재의 정식 명칭을 여러 번 검색했지만 아직 찾지 못했다.
끙재에서 본 무수리 뒷산과 주변 마을 풍경은 57년 지난 지금까지도 선명하다. 끙재를 넘어 잊어버리고 한참 내려오면 지금의 멜뷰가 있는 한적골에 이른다.
할머니는 동생들과 버스 타고 쉽게 가지 못한 나를 걱정하고 나는 할머니 건강을 걱정하며 오순도순 다섯 시간 반 만에 대사동 자취방에 도착했다. 할머니는 차멀미가 심해서 버스를 타지 못한다.
예순여덟 할머니의 대전 시내 나들이는 그때를 마지막으로 여든아홉에 돌아가셨다. 임원회의도 회의지만 할머니와 얽힌 추억으로 나는 아주 특별한 시간을 보냈다.
9시가 넘자 카페에는 우리만 남았다.
우리도 9시 20분에 회의를 마치고 일어났다.
방향이 같은 임원 둘과 주차장으로 내려와 시동을 걸었다. 시동이 안 걸렸다. 4일 전에 자동차 검사를 해서 아무 문제없다고 검증받았는데 이게 웬일이란 말인가? 여러 번 반복했지만 마찬가지였다. 몹시 당혹스러웠다. 엄소정 위원이 딱 보더니 배터리 때문이라고 했다. 동행하려던 두 임원을 서둘러 보내고 아들한테 전화를 걸었다.
아들이 알려준 번호로 보험사 긴급출동 서비스를 신청했다.
혼자 두고 떠날 수 없어 같이 있으려는 회장님과 이혜정 위원을 안심시켜 보냈다.
친절하게 주차해 주던 분이 다가왔다. 혹시 주차장 폐쇄하고 퇴근해야 하니까 차 빼라면 어떡하지? 걱정스러워 퇴근이 늦어져 어떡하느냐고 인사말을 건넸다.
"고객 안전이 우선이지요. 걱정하지 말고 편하게 기다리세요!"
마음가짐이 훌륭해서 혹시 카페 주인인가 물었더니 아니라고 했다.
맡은 일의 범위가
벗어났는 데도
최선을 다하는
그분은 진정한 프로였다.
잠깐은 앞이 캄캄하기도 했지만 1시간 30분 동안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아까 카페 앞 도로에 주차할까 잠깐 고민하다 주차장으로 들어왔었다. 얼마나 잘했나. 주차장은 넓고 밝아서 안전하니까.
10시 4분
대사동 멜뷰 카페 주차장에서
출동서비스를 기다리며 찍은 사진
불야성을 이루던 카페는 직원들이 모두 퇴근해서 깜깜했다.
사람 마음처럼 간사한 것은 없다. 아까 테라스에서는 달만 보이더니 주차요원의 친절에 감동한 그때는 카페 간판만 보였다.
사위는 고요하고 적막했다.
소쩍새가 울었다.
까막까막 출동 기사를 기다렸다.
30분 넘게 기다린 출동서비스 카가 주차장으로 기세 좋게 들어왔다. 기사는 전화 통화할 때처럼 몹시 불친절했다.
주차요원과 극과 극이었다.
기사가 점프 선을 연결하며 배터리 문제면 간단한데 주변 기관이 고장 났으면 견인할 거라고 했다. 견인? 새롭게 가슴이 덜컥했다.
시동은 걸리지 않았다.
마른침이 넘어갔다.
배터리를 교체했다.
부드럽게 시동이 걸렸다.
10시 19분 주차요원은 끝까지 친절하게 나를 배웅하고 카페 주차장 입구 차단기를 내렸다. 저렇게 훌륭한 직원이 있는 카페 주인은 조상 3대에 걸쳐 덕을 쌓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