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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죽을 권리 01화

죽을 권리

1. 인권

by 글마중 김범순
양지안 교회.jpg

사진 출처 : 양지안 인스타그램


인권은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를 의미한다. 인권의 주요 권리로는 생명권, 자유권, 평등권, 사회권이 있다.


생명권은 생명의 가치를 존중받을 권리로 가장 중요한 권리이자 인간이 태어난 바로 그 순간 무조건 부여받게 되는 권리이다. 생명권에는 죽음을 선택할 권리. 고통 없이 죽을 권리. 죽는 순간까지 행복할 권리. 인간답게 죽을 권리가 포함되어 있다. 세계 최초로 죽을 권리를 법적으로 인정한 국가는 네덜란드이다.



드넓고 맑은 호수에 하얀 돛단배가 떠 있고 저 멀리 하늘가로 기러기가 날고 있다.


맑고 깊은 교회 종소리가 호반에 울려 퍼졌다. 시계가 없던 중세 시대 때 시민들에게 시간을 알려주기 위해 시간 숫자만큼 쳤던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너는 은혜로운 종소리에 모든 잘못이 한가닥 한가닥 풀리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9월 2일 네덜란드 석양은 어리둥절할 만큼 길었다. 밤 10시인데도 훤했으니까. 그 대신 겨울이 되면 밤이 길어 아침 9시 학교 갈 때와 오후 4시 집에 돌아올 때도 가로등이 들어온다고 했다.


큰 호수와 수많은 웅덩이와 골목마다 운하가 있는데 모기가 없다. 참 신기한 노릇이다. 비가 많이 내리고 새와 달팽이와 거미가 많아서 그런가?


밤새 내린 비가 아침에 그치더니 점심 무렵부터 또 온다. 거의 매일 비가 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9월 4일 낮 최고 온도는 20도였다.

한국은 30도인데.

너는 얼른 위도를 검색한다.


네덜란드 북위 50.75도 ~ 53.53도

대한민국 북위 33.06 ~ 38.37도


네덜란드가 조금 북쪽에 있다고 이렇게 온도 차이가 나다니!


오후 4시 산책을 나선 너는 또 놀랐다.


신호등 없는 건널목에서 모든 차가 사람이 먼저 건너가도록 얌전하게 기다려주고 있어서다. 우리나라도 얼른 자리 잡아야 할 선진 문화이다.


공원 안에는 여러 종류의 꽃과 하얀 메꽃이 흐드러져 신비스러웠고 이름 모를 새가 줄지어 앉아 있었다. 더더욱 너의 눈길을 잡아끄는 건 주렁주렁 열린 까맣게 익은 복분자였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복분자가 익어 쏟아져도 손대지 않았다. 모든 이가 고스란히 그 풍경을 감상할 수 있도록.


개암도 익어 풀숲 여기저기 떨어져 있었다. 너는 또 행복해서 감탄사를 연발했다.


편서풍이 공원 가득한 둥치 큰 나무들을 휩쓸어버릴 듯 불었다.

쏴-!

도토리가 빗소리를 내며 쏟아졌다.

영혼에 진 얼룩들이 말끔히 씻겨나갔다.


네덜란드 기업이 경영하는 동네 마트에 갔다. 물가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것 같았다. 비비고 만두와 여러 종류의 라면이 있어 깜짝 놀랐다. 해외에 진출한 우리나라 식품이 자랑스러워 태극기라도 흔들고 싶다.


공원 주차장에 현대 자동차가 세워져 있었다. 너는 반색을 하며 사진 찍으려고 휴대전화를 꺼내다 그만두었다. 남의 나라에서 함부로 사진 찍다 어떤 오해를 받을지 몰라서다.


9월 22일. 날씨가 맑았다. 재택 근무일인 사위와 강아지를 데리고 들판을 산책했다. 광활한 초지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좁은 산골짜기에서 자란 너는 산골짜기를 벗어나 넓은 곳으로 가는 게 꿈이었다.


해묵은 미루나무가 양쪽으로 늘어선 자동차 도로가 멀리 보이고 가끔 소들이 풀을 뜯는 들판 한가운데 섰다. 너는 양팔을 벌리고 360도 돌면서 멀고 먼 지평선을 마음껏 감상했다. 사위 덕에 평생소원을 이룬 것이다.


들판 길가에는 쓰레기통이 있고 그 위에 강아지 배변 봉투 함이 붙어 있어서 또 감탄했다.


백조 한 쌍이 밭가운데서 두 발에 검은흙을 덕지덕지 묻힌 채 먹이를 찾고 있었다. 아주 실망했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올 때는 달랐다. 운하에 두둥실 떠서 고요히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역시 백조는 물 위에 떠 있어야 우아하다.


거실에서 원고를 정리하는데 딸이 불렀다.

“엄마!”

목소리에 힘이 없어 가슴이 미어졌다. 얼른 딸 방으로 올라갔다. 딸은 너한테 어푸러지며 엉엉 울며 앓느라고 엄마 떠날 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잘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 너도 울면서 딸을 안고 얼른 나으라며 괜찮다고 달랬다.


사위가 포르투갈로 출장을 갔다. 딸이 사위 없는 동안 너와 같이 자며 후회 없이 이별 연습을 하고 싶다고 했다. 고생만 시킨 딸이라 너는 감동했다. 밤이 되었다. 든든한 사위가 없고 여자 넷만 있으니 허전하기 이를 데 없고 무섭기까지 했다.


늦은 아침을 먹었다. 딸은 미역국에 밥을 말아 네가 만들어 온 황석어젓과 고들빼기김치를 맛있게 먹었다. 흐뭇하기 이를 데 없다. 딸은 이제 매일매일 이렇게 행복할 것이다.


아름다운 네덜란드에서 10월을 맞았다.


아침 산책할 때 손끝이 시리고 하얀 입김이 나왔다. 자전거 도로가 미어터지도록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학생이나 직장인들 모두 패딩점퍼를 입었다.


9월 내내 비가 내려서 그런지 공기가 맑고 달았다. 해가 뜨면 눈이 부시고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천지창조처럼 비쳤다.


딸과 사위와 함께 병원에 가서 의료진 도움을 받기로 한 날이 닷새 남았다.




2. 1985년 5월 6일


고 2.jpg

사진 : 고은별


온종일 흐렸다.


오후 6시가 훌쩍 넘었다. K는 또 늦는 모양이다. 학교 바로 밑에 살아서 퇴근하면 집까지 도착하는 데 5분도 안 걸린다.


초등학교 3학년 딸과 1학년 큰아들 숙제를 살펴주고 저녁을 먹이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K가 가장 아끼는 고교 후배 염 선생이었다.

“형수님 여기 대학병원 응급실입니다. 빨리 오세요!”

염 선생은 숨 가쁘게 이 말만 하고 전화를 뚝 끊었다.


무슨 일이지?

어디 다쳤나?


몇 달 전에는 헬멧을 쓰지 않고 아는 동생 오토바이 뒷자리에 탔다가 많이 다친 적이 있었다. 틀림없이 운동장에서 학생들과 피구를 하다 심하게 다친 것 같았다.


택시를 타고 도착한 병원의 넓고 환한 응급실 침대에 K가 말짱한 모습으로 누워있었다. 피범벅이 아니라 안심한 너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니, 집 놔두고 왜 여기 누워있대?”

“···!”


K는 말간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눈동자는 초점이 없었고 너를 몰라보는 것 같았다. 억장이 무너져 휘청했다.

너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여보 나야. 나라고. 나 모르겠어?”


K는 이 여자가 왜 이러지 하는 표정으로 모른다고 가만히 고개를 한 번 끄덕했다. 너는 울부짖으며 침대 머리맡에 어쩔 줄 모르고 서 있는 K 동료 선생들에게 물었다.


“이이 왜 이러는 거예요. 도대체 어디가 아픈데 이래요?”

강 선생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학교에서 쓰러지셨는데 뇌출혈이랍니다.”


그때 신경과 과장이 빠른 걸음으로 너에게 다가왔다.

“배우자신가요?”
“네. 이이가 저를 몰라봐요!”

“이 환자 언제 숨이 멎을지 모릅니다. 강하제를 투여해도 혈압이 계속 치솟고 있어요. 어머니 계시면 얼른 연락해서 마지막으로 얼굴 보게 하세요. 형제들도요!”


헉! 마른침이 넘어갔다.

세상에는 이런 일도 다 있었다.

화분에 물 주고 기분 좋게 출근한 사람이 퇴근 무렵 죽는다니!


서른아홉 K

서른넷 너


너희에게 그날은

참으로 가혹했다.


염 선생이 동전을 건네며 너를 공중전화 부스로 데리고 갔다. K의 형에게 전화를 걸어 떨리는 목소리로 두서없이 상황을 전했다.


전화기에 또 동전을 넣었다.

딸각!


전화기가 동전 삼키는 소리를 듣고도 너는 망설인다. 친정어머니한테 K가 병원에 있다고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아서다.


조금 전 신경과 과장은 이 말도 했다. 만에 하나 K가 오늘 밤을 무사히 넘기면 식물인간이 될 거라고! 병원 생활이 길어질 것이었다. 백일 갓 지난 막내를 돌보려면 친정어머니 도움이 절실했다.


망설임 끝에 심호흡을 크게 하고 번호를 눌렀다. 사태를 전해 들은 친정어머니는 소리부터 질렀다.

“너는 어째 하는 일마다 그 모양이냐. 뇌출혈로 쓰러졌으면 한방병원으로 가야지 왜 병신같이 대학병원에 있는데?”

이럴 줄 훤히 알기에 망설였던 것이다.


많이 놀랐겠구나! 따뜻하게 위로하는 어머니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먹빛 가슴이 또다시 무너져 내렸다.


통솔력 있는 K는 사람을 좋아하고 사교력이 뛰어났다. 사람들도 그런 K를 아주 좋아하고 잘 따랐고. K가 교편을 잡자 주변에서는 국회의원 할 사람이 학교 울타리 안에 갇혔다며 아깝다고 입을 모았다.


응급실 안팎은 업무를 마감하고 달려온 학교 전 직원과 K의 친구들, 지인들, 선후배, 학부모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요즘에는 어림없는 일이지만 40년 전에는 그랬다.


대학병원이지만 CT 촬영 장비가 없어 K를 앰뷸런스에 싣고 다른 병원으로 촬영하러 갔다.


그 사이 너는 집으로 왔다. 떨리는 손으로 화장대 서랍에 K의 안경을 넣었다. 이 안경을 다시 쓰지 못하면 어떡하지? 큰 아이들을 재우고 막내에게 젖을 먹이며 너는 그 생각만 되풀이했다.


택시가 병원 근처 내리막길을 쑤욱 내려갔다. 수렁으로 빠져드는 느낌과 동시에 숨이 턱 막혔다. 그 시각 K가 숨을 거두는 것 같았다. 너는 맹렬히 하나님께 기도했다. K를 살려달라고.


택시에서 내려 고꾸라질 듯 응급실로 뛰어갔다. 말짱하던 K의 모습은 간데없고 혼수상태가 되어 숨소리가 천장을 찌를 듯 크고 거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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