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겹경사
버킹엄궁전 근위병 교대식
사흘간의 시골 잔치가 끝나고 친척들이 모두 돌아갔다. 너는 저녁 설거지를 끝내고 편하게 쉬고 싶어서 신방으로 꾸민 윗방 문을 열었다.
시어머니가 다급하게 불렀다.
“야이!”
“네?”
“나 혼자 자기 싫다. 너 여그서 자거라!”
깜짝 놀란 너는 대답할 수 없었다.
“이거 안 뵈냐. 내가 니 자리꺼정 펴놓은 거? 우리 K 혼자 편히 자게 너는 여그서 자란 말이다.”
너는 그렇게 시어머니와 같은 방을 쓰게 되었다.
시어머니는 주일마다 배부른 너를 앞세우고 마을 한가운데 있는 교회로 예배를 보러 갔다.
시어머니와 한방을 쓰는 건 체념해서 괜찮았다.
하지만 일요일이 다가오는 건 공포 그 자체였다.
너는 임신 말기에 나타나는 한두가 섰다. 배 무게에 신경이 눌려 돌아눕기조차 힘들고 걸음도 심하게 절룩였다. 움직일 때마다 엉덩이 한쪽과 넓적다리가 도끼로 쪼개는 것처럼 잔인하게 아팠다.
고통스러워서 정말 교회 가기 싫었다. 하지만 혼전 임신으로 교인들에게 시어머니 체면을 깎은 잘못으로 군말 없이 나섰다.
시어머니는 뒤에서 잔인하게 너를 몰아세웠다.
“빨리 걸어. 빨리! 동네 챙피항께 쩔룩거리지 말고 똑바로 걸어. 빨리 더 빨리. 너 정녕 나 죽어 나자빠지는 꼴 보고 말 테냐? 제발 빨리 걸으라구 이 굼벵이 같은 예편네야!”
교회 가는 길이 지옥길보다 무서웠다. 절룩이는 너는 그대로 흔적없이 사라져버리고 싶었다.
콩이 멍석 가득 널려있었다. 너는 시어머니가 시킨 대로 썩은 콩을 골라냈다.
가만히 앉아서 하는 일이라 그런대로 할 만했다. 밭에 갔던 시어머니와 K의 형수가 다섯 살 먹은 조카딸 손을 잡고 들어왔다.
시어머니가 너의 눈치를 살피며 한참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혼인 때 K 친구들이 자개 상 두 개 하고 놋그릇 칠첩반상기를 선물했단다. 느덜 살림 날 때꺼정 큰집서 보관하고 있는디 자개 상 작은 거 느 동서 주면 안 되겄냐?”
K의 형수가 바짝 달려들었다.
“자네 시숙이 예쁜 자개 상에서 밥 한번 먹어봤으면 소원이 없겠대!”
너는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K의 형수가 너를 얼렀다.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잖아. 살아있는 자네 시숙 소원 좀 들어주자. 동서 그렇게 하자. 응?”
K의 형은 초등학교 교사였다. 그렇게 자개 상이 예쁘면 사면되지 왜 동생 결혼 선물을 탐내는가 말이다.
네가 말했다.
“형님 결혼 음식은 나누어도 결혼 선물은 나누는 게 아니지요.”
동생의 아내한테 반말을 던지는 몰상식한 시숙이었다. 너는 콩 한쪽도 나누기 싫었다. 시어머니가 한숨을 쉬며 웅얼거렸다.
“뺏으려는 큰 거나 안 뺏기려는 작은 거나 둘 다 똑같다 똑같어!”
그날 잔뜩 토라진 K의 형수는 너한테는 아무 말 없이 부동산 투기 때문에 바빠서 돌볼 겨를 없다며 다섯 살 먹은 조카딸을 두고 갔다.
김장을 한다고 했다. 너는 절룩거리며 시어머니와 밭에서 배추를 뽑아 들국화가 만발한 밭둑에 쌓았다.
배추를 집까지 옮기기 위해 리어카에 산더미처럼 싣고 시어머니가 앞에서 끌고 너는 뒤에서 밀었다. 리어카는 생각보다 잘 굴러 절룩거리는 네 걸음으로 따라가기 벅찰 정도였다.
집까지 반쯤 갔을까? 리어카 바퀴가 장마 때 파였던 커다란 웅덩이에 콱 처박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시어머니 얼굴이 허옇게 탈색되었다.
“바쁜 철이라 부를 사람도 읎는디 이 일을 워쩐다냐?”
시어머니는 한참 궁리 끝에 단단히 작정하고 말했다.
“할 수 읎다. 내가 심껏 끌을팅게 너도 심껏 밀어봐라. 자 시작한다. 하나, 둘, 셋!”
너는 힘껏 리어카를 밀었다.
꿀렁! 하는 느낌과 동시에 리어카 바퀴가 확 빠져나갔다. 너는 고대로 폭 고꾸라졌다.
충격으로 두 눈에 번갯불이 번쩍했다. 너는 주위에 아무도 없는데도 창피해서 얼른 일어나려고 버르적거렸지만 어림없었다. 간신히 그야말로 천신만고 끝에 일어났는데 배가 심하게 당겼다.
밤이 되자 예정일은 20일이나 남았는데 본격적으로 진통이 찾아왔다. 시어머니가 전에 없이 다정하게 말했다.
“여자가 애 낳는 건 순전히 하나님 뜻이니라. 그렁께 너무 겁먹지 말고 나랑 집에서 낳자. 빙원 간다고 안 아픈 거 아녀. 어디서 낳으나 아플 만큼 아퍼야 애가 나옹께. 알았쟈?”
너는 병원비 아끼려는 시어머니 속셈을 간파했기에 그러기로 했다.
초저녁잠이 많은 시어머니는 곯아떨어졌고 네가 배를 잡고 뒤틀며 신음하면 그때마다 조카딸이 똑같이 흉내를 냈다. 너는 그게 못 견디게 싫었다.
이틀이 지났다. 시어머니는 잔칫집에 가고 K의 형수가 아기 이불과 기저귀 감과 배냇저고리를 한 아름 사 들고 왔다. 너는 진심으로 고마웠다. K의 형수는 조카딸을 데리고 가며 병원 가서 생돈 날리지 말고 집에서 애 낳는 게 좋을 거라며 협박조로 명령했다.
그날 저녁 너는 K와 시어머니 앞에 선물을 펼쳤다.
“낮에 형님이 왔다 갔어요. 자개 상 안 줘서 섭섭했을 텐데 선물을 한 보따리 가지고 왔네요. 굉장히 고맙고 미안하고 그러네요.”
시어머니가 이를 부드득 갈았다.
“깨밀어 갈 예펜네. 지가 산 것처럼 생색낼라구 나 읎는 날 골라서 왔다 갔능 게비네. 이게 다 뭐여? 애기 이불이랑 옷이랑 전부 싸구려로만 골라서 사왔잖여. 으이구 믿고 돈 맽긴 내가 미친년이지!”
진통 시작한 지 나흘째 밤이 되었다. 온몸을 기름틀에 넣고 짜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K는 밤새워 허리를 문지르고 몸부림칠 때마다 시어머니는 네 손을 잡고 위로하고 응원했다.
닷새째 되는 날 오전 10시. 친정어머니가 황황히 들어섰다. 너도 놀라고 시어머니는 더 놀랐다.
“엄마!”
“어젯밤 할머니하고 똑같이 네 꿈을 꾸고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시어머니가 뜨악한 표정으로 무슨 꿈인데 그러냐고 물었다.
“아 글쎄 얘가 소복을 하얗게 입고 나타나서 할머니 엄마 나 좀 살려줘, 하고 애원하지 뭐예요. 그래서 새벽같이 집을 나섰답니다!”
그날 밤 11시 56분에 아기가 태어났다.
K는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기뻐했다. 너의 어머니도 첫 딸은 살림 밑천이라며 겹경사가 났다고 했다. 시어머니는 안색이 확 변하더니 쓸모없는 딸 낳고 좋아하는 쓸개 빠진 놈이라고 K 등짝을 후려갈기며 아기 얼굴도 안 보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6. 무능한 너
크로아티아 자다르 로만프롬 광장 부근
너는 아기를 낳았어도 숨 막히는 고통이 가라앉지 않았다. 네가 헐떡거리며 온몸을 기름틀에 넣고 비틀어 짜는 것 같다고 호소했다. 그런 너를 보며 시어머니가 비웃었다.
“하이고 지저바 낳은 주제에 엄살은!”
밤 12시 20분 고통은 절정에 달했고 너는 비명을 지르며 잠깐 정신을 잃었다. 툭! 소리와 함께 사타구니 생살이 10센티가량 터지며 피가 뿜어져 나왔다.
시어머니는 네가 칠칠치 못해서 아까운 솜이불이 피에 젖어 못 쓰게 되었다고 펄펄 뛰었다. 너는 너무 아프고 서러워서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보다 못한 K가 빽! 소리쳤다.
“어머니 제발 좀!!”
시어머니는 애지중지 자식 키워봤자 소용없다고 신세 한탄을 하며 잠 부족하면 약해진다고 등짝을 두들겨 패서 K를 윗방으로 쫓았다. 그러고는 부엌으로 나가 아궁이가 미어터지게 불을 땠다. 절절 끓던 방은 금방 불가마처럼 변했다.
고문이 따로 없었다.
견디다 못한 네가 이불 밖으로 손을 꺼냈다. 도끼눈을 뜨고 감시하던 시어머니가 불호령을 내렸다. 산후조리 잘 못 해줘서 손목 시다고 원망하지 말고 얼른 집어넣으라고. 그러고는 눈을 흘기며 또 불을 때러 부엌으로 나갔다.
친정어머니가 이때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팔을 을러메고 윽박질렀다.
“너는 어째 하는 일마다 이 모양이냐? 아무리 무녀리라고 해도 그렇지. 온 집안이 나서서 쌍수 들고 환영하던 국민학교 동창 S는 본 체도 안 하고 마음대로 연애질 하더니 아주 꼴좋다 꼴좋아!”
시어머니가 딸 낳았다고 구박하고
친정어머니가 비웃고
산후통으로 아파도 너는 괜찮았다.
그제 밤 며칠 먹지 못하고 진통에 시달려 심한 변비가 왔다. 시어머니가 잠든 걸 확인하고 윗방에서 곤히 잠든 K를 깨웠다.
“나 변소 가고 싶은데 혼자 가기 무서워!”
K는 소리 없이 일어나 변소에 가서 아기 오줌 뉘는 자세로 너를 안고 오랜 시간에 걸쳐 요강에 똥을 누게 하고 말끔히 치웠다.
K와 너는 환하게 뜬 달을 쳐다보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더없이 다정하고 달콤하고 행복했다.
그래서 너는 괜찮았다.
아기는 태어나면서부터 바짝 마른 입술을 달싹이며 울었다. 예정일보다 20일 먼저 낳아서 젖이 나오지 않았다. 보다 못한 친정어머니가 아침나절 보리차를 끓여 수저로 떠서 아기 입에 흘려 넣었다. 구역예배를 마치고 돌아온 시어머니가 기겁해서 수저를 빼앗았다.
“사부인.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저 먹을 것 다 준비해서 세상 밖으로 보내십니다. 제발 거룩하신 우리 주님 뜻 거스르지 말고 젖 나올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세요.”
아기 울음소리에 점점 힘이 빠졌다. 통증과 피가 그치지 않아 일어나 앉을 수조차 없는 너는 아기의 허기를 채워주지 못해 조금도 괜찮지 않았다. 저녁에 K가 보리차를 떠먹였다. 아기는 허겁지겁 끝없이 받아먹었다. 설거지를 마치고 들어오던 시어머니는 수저를 빼앗고 하나님 운운하며 K 등짝을 후려갈겨 윗방으로 쫓았다.
아기 죽게 생겼다고요!
너는 시어머니와 싸우지 못하고 속만 태웠다. 너는 그렇게 무능한 너 자신이 정말 싫었다.
누가 아기에게 보리차 먹이지 않나 감시하던 시어머니가 잠들었다.
이틀이나 밤잠을 설치고 피범벅이 된 요와 이불 빨래로 지친 친정어머니도 잠들었다.
울다 지쳐 잠든 아기를 오래도록 토닥이던 너도 잠이 들었다.
“캬악!”
천둥 치듯 울리는 아기 단말마에 모두 놀라 잠을 깼다.
아기는 얼굴이 까맣게 탄 채 숨을 헐떡였다.
시어머니가 울부짖었다.
“아이구 K 새끼야. 아이구 내 새끼야!”
K가 황급히 아기에게 보리차를 떠먹이며 소리쳤다.
“하여튼 우리 어머니 사람 여럿 잡을 양반이라니까!”
생살 터진 자리 통증으로 너는 여전히 꼼짝을 못 했다. 친정어머니가 시어머니한테 생살 터진 상처가 커서 한약방 좀 갔다 오겠다고 했다. 시어머니는 시간 지나면 낫는데 왜 유난을 떠느냐고 불같이 화를 냈다.
그러거나 말거나 친정어머니는 읍내 나가 마른 약쑥을 사 왔다. 친정어머니는 시어머니 교회 간 사이에 약쑥을 달였다. 너는 반신반의하며 환부에 펄펄 솟아오르는 약쑥 김을 쐬었다.
생채기 통증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닷새가 지나자 누름돌을 얹은 것 같던 젖이 돌아 아기에게 먹일 수 있었다.
친정어머니는 일주일을 머물고 울면서 돌아갔다.
무능한 네가 천하의 여장부를 울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