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아날로그
큼직한 주머니가 있는 겉옷을 입으면 가방이 필요 없다.
통장, 휴대폰, 신용카드만 챙겨 집을 나섰다.
홀가분해서 좋다.
깜빡깜빡 잊어버리기를 잘하는 나.
한 시간 남짓 운동하면서 반복적으로 동선과 구입 물건을 외웠다.
- 가장 먼저 병원에 간다.
- 지하 보행로 리어카에서 전에 봤던 만 원짜리 바지 사고 연결된 백화점 식품매장으로 직진한다.
- 백화점에서는 돌아볼 것 없이 남편이 좋아하는 미소된장만 산다.
- 은행에 들러 현금을 찾는다.
- 아파트 쪽문 단골 난전에서 값싸고 싱싱한 야채와 과일을 산다.
병원에 도착하기 직전 수제 빵집 앞 매대에 시선을 빼앗겨 동선을 수정해야 했다.
내가 좋아하는 희고 부드러운 빵이 있어서였다.
어릴 때 읽은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의 감동 때문에 희고 부드러운 빵만 보면 지금도 넋을 잃는다.
치료마치고 나올 때 꼭 살 것을 다짐 또 다짐했다.
그 다짐은 병원문을 나서며 까맣게 잊었다.
지하로 난 계단을 신나게 내려갔다.
맨 아랫 계단을 내려설 때 빵 생각이 났다.
집에 가서 옷 갈아입은 뒤가 아니라 천만다행이다.
호기롭게 빵을 들고 주머니에서 카드를 꺼냈다.
"어머나, 이걸 어떡해!"
신용카드가 아닌 도서관 이용 카드였던 것이다.
"아유, 괜찮습니다. 자동 이체하시면 돼요."
"비밀번호 카드가 없어서 텔레뱅킹도 못하는데. 아, 하나원큐로 송금할게요!"
- 천만에 만만에 콩떡 ~ ! -
컴퓨터, 내비게이션, 휴대폰! 이것들은 항상 기계치인 나를 깔보고 골탕 먹였다.
화면에서 지시하는 대로 비밀번호 누르고 이체 계좌 누르고 빵집 통 번 누르고 비번을 눌렀다.
-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십시오. 취소하시겠습니까? 다시 시작하고 ······· ! -
빌어 처먹을 전자금융!
"암만해도 안되네요. 조 아래 있는 현금 출금기 갔다 올게요."
그놈의 조 아래는 왜 그렇게 말고 멀던지!
계획했던 대로 모든 일을 마치고 집에 가서 빵집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자 아들이 말했다.
"엄마, 내가 휴대폰에 토스 깔아서 지난번에 송금해봤잖아요!"
아날로그 한계를 넘지 못해 몸과 감정이 더불어 고생한다.
- 딸이 비발디 사계를 감상한 곳이라며 보낸 사진으로 울적함을 달랬다 -
-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Scheepvaartmuseu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