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조 '설일'
겨울나무와
바람
머리채 긴 바람들은 투명한 빨래처럼
진종일 가지 끝에 걸려
나무도 바람도
혼자가 아닌 게 된다.
혼자는 아니다
누구도 혼자는 아니다.
나도 아니다.
실상 하늘 아래 외톨이로 서 보는 날도
하늘만은 함께 있어 주지 않던가.
삶은 언제나
은총(恩寵)의 돌층계의 어디쯤이다.
사랑도 매양
섭리(攝理)의 자갈밭의 어디쯤이다.
이적진 말로써 풀던 마음
말없이 삭이고
얼마 더 너그러워져서 이 생명을 살자.
황송한 축연이라 알고
한 세상을 누리자.
새해의 눈시울이
순수의 얼음꽃,
승천한 눈물들이 다시 땅 위에 떨구이는
백설을 담고 온다.
2026년 새해가 밝았다. 실상 새해가 됐지만 새해임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이런저런 일들로 마음이 복잡하여 새해라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더군다나 춥고, 주변에 아픈 이들도 많아 새해가 더욱 춥고 길게만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해가 되면 늘 머릿속을 맴돌며 ‘새해에는 이렇게 살아야지’라고 일깨워주는 시가 있다. 바로 김남조의 ‘설일’이라는 시다.
모든 구절구절마다 다 마음을 울리지만 가장 먼저 울림을 주었던 부분은 겨울나무와 바람을 보며 혼자가 아니라고 깨닫는 부분이었다. 앙상한 겨울나무와 바람을 보며 어떻게 투명한 빨래를 떠올리고, 그리고 혼자가 아닐까를 생각할까? 역시 ‘시인의 눈은 다르구나’를 느낀 순간 ‘혼자가 아니다’라는 말이 너무나 다가왔다. 이 세상에 나 혼자 있는 것 같고, 무슨 일을 할 때도 혼자 하는 것 같아 외롭고 쓸쓸하고 때로는 지루하기도 했는데,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그 일을 하는 동안에 늘 주변에 누군가가 있었고, 그 누군가의 도움을 통해 참 많은 일을 했었다. 또한 혼자라고 느낄 때조차도 하늘이라는 절대자가 늘 함께 해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얼마나 위로가 되고 기쁨이 되는지 ‘혼자가 아니다’는 이 구절이 주는 깊은 울림은 어떤 세상이어도, 어떤 문제가 닥쳐도 이겨나갈 수 있는 큰 힘이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삶도 사랑도 돌층계, 자갈밭처럼 고난과 시련의 연속일지 모르지만 신의 은총으로, 신의 섭리로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세상은 삭막하고, 세상은 예측하기 어려운 수많은 문제들로 가득 차고 더군다나 그 안에 존재하는 많은 사람들 또한 나와 다르고 나의 생각과 다르기에 그들과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함께 살아가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처럼 너그러운 마음으로, 황송한 축연이라 알고 새해를 살아갔으면 좋겠다. 순수한 마음들, 깨끗한 마음들이 눈물이 되고 그것들이 다시 순수하게 하얀 눈이 되어 내리듯이 순수한 마음으로, 깨끗한 마음으로 그렇게 새해를 살아갔으면 좋겠다. 2026년도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상상할 수는 없지만 겸손한 마음으로, 너그러운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하루하루의 삶을 감사함으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더군다나 광야 같은 이 세상 혼자가 아니기에 또한 힘차게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지 않을까?
2026년 꿈꾸고 희망하는 모든 일들이 열매를 맺는 아름다운 날들이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