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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TP 초등학교 교사가 보는 대한민국 교육, AI

실패의 의미, 그리고 이세돌과 알파고, 0.007%

by 가생이

저는 원래 교사가 꿈이 아니었습니다. 일전에 말씀드렸다시피 공대, 경영대를 다니다가 학사경고도 맞아봤고 자퇴도 해봤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어쩌다 보니 대한민국의 공교육의 종사자가 되어있습니다. 교사가 꿈이 아닌 사람이 교사의 길을 걷고 있기에 조금 더 객관적으로 우리나라 교육에 대해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말해놓고 보니 오늘 말씀드릴 주제와 아주 깊은 연관성이 있네요. 하하. 어찌 보면 두 번의 자퇴가 제 인생에 가장 큰 도움이 된 실패가 아닐까 합니다.


대한민국의 교육이란 말을 들으면 어떤 느낌이 들까요? 주변 지인들한테 재미 삼아 물어봤더니 좋은 단어들이 안 나오더라고요. 답답하다, 숨 막힌다, 짜증 난다, 두 번 다시 고3으로 돌아가기 싫다 등등.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받은 교육은 교육이 아니고 훈련(training)에 가까웠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대학에 가서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학문의 요람이라기보다는 훈련을 더 잘 받기 위한 거대한 장소라고나 할까요. 써놓고 보니 좀 과장된 측면도 없지 않아 있지만, 사실 대학에 들어가면 신입생부터 취업을 위한 어학성적이나 자격증을 따기 바쁜 것도 사실이니까요.


사우디나 두바이, 중동국가와 같이 지하자원이 풍부한 것도 아니고 중국이나 인도같이 인구수가 많은 나라도 아닌 대한민국. 제한적인 인적자원이과 자연자원으로부터 효율적으로 국가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트레이닝 같은 평가방법으로 인재를 육성해 왔습니다. 지금까지 성장통도 있었지만 결국은 선진국에 가까운 경제력을 갖춘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공사례를 많이 보여준 이제까지의 교육과정과 평가방법을 관성적으로 바꾸기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고 예측할 수 없습니다. 2025년 미국은 왕복가능한 우주선을 수십 번씩 쏘고 있고, 중국이나 인도 등 여러 나라가 AI와 로봇에 대대적인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교육으로 흥한 우리나라 대한민국, 교육으로 망하지 않으려면 대한민국의 교육에 대한 성찰이 필요합니다. 이제까지는 훈련이었다면 앞으로는 진정한 교육이어야 합니다.


실패를 싫어하고, 실패를 용서하지 않는 나라 대한민국


노벨문학상이나 노벨평화상은 있어도 자연 과학 쪽으로는 노벨상이 하나도 없는 우리나라. 참 슬프지 않나요?

바로 옆나라 일본은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스무 명이 넘어간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답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지 않을까 합니다.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장래희망이나 꿈을 적어내라고 하면, 의사나 변호사, 공무원의 비율이 꽤 높습니다. 과학자나 우주비행사, 발명가라고 써낸 친구들은 거의 없습니다. 에디슨이 위인인 줄은 알고 있는데 에디슨처럼 되려고 하는 아이들은 없습니다. 먹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월급을 받거나, 일정한 수입을 만들 수 있는 직업들이 아이들의 장래희망입니다. 초등학교 고학년 아이들일수록 이런 결과가 두드러집니다. 어려서부터 생존경쟁에서 뒤떨어지면 안 된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경쟁에 뒤떨어져선 안되기 때문에 실패를 최소화해야 합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교육은 경쟁을 바탕으로 아이들 스스로 생존을 위한 훈련에 가까운 성격을 짙게 띠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다수의 학부모님들도요. 여러분들의 자녀가 소위 우리나라 SKY대의 의학대학과 공과대학(또는 자연대학)을 합격했다면 어디에 최종등록하시겠습니까? 제 스스로도 제 자식에게 섣불리 어디를 가라고 답을 내리기 어려울 것 같네요.


교육은 그 나라 국가의 자연환경이나 문화, 사회 성향을 많이 반영합니다. 우리나라의 교육과 사회저변에 깔린 분위기 중 가장 고쳐야 할 점 중의 하나는 실패를 타 부시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실패를 좋아해야 합니다. 실패를 싫어하지 말고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밉상이지만 자주 보고 싶은 죽마고우처럼요. <성공해야 해. 100점을 맞아야 해. 1등급에 들어야 해.> 이런 성공강박증이 우리나라 교육을 훈련으로 만든 것 같습니다. 저도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교육을 받아왔습니다. 이제까지는 이런 생각이 유효했습니다. 제1차, 2차, 3차 산업혁명에서는요. 그러나 세상은 우리가 기존에 보고 느꼈던 것과 달리 빠르게 예측불가한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효율과 성공만을 추구했던 교육기조가 오히려 발전을 방해하고 발목을 붙잡고 있는 형국이 된 것 같습니다.

실패는 남들한테 감춰야 하는 부끄러움이고 회상하기 싫은 경험처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실패를 줄이고 성공만 하고 싶어 합니다. 성공의 확률을 높이는 방법은 새로운 도전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안정적인 방법만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안정적인 방법은 실패가 없지만, 발전도 없습니다.



AI, 이세돌과 알파고, 0.007%의 승률


최근 2~3년 들어 챗GPT, AI, 또는 양자역학과 같은 단어들이 많이 들립니다. 우리나라 교육부도 AI관련 정책으로 꽤 힘을 쏟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초등학교에서부터 디지털 교과서 및 에듀테크와 관련된 어플들이나 기자재들에 대한 투자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화두가 대중들에게 자주 들리기 시작한 시발점은 알파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은 인류와 AI 대결로 꽤 흥미로운 화젯거리였습니다. 4승 1패로 알파고의 압도적인 승부였으나, 이세돌은 역사상 최초 전무후무하게 AI로부터 단 한 번의 승리를 가져다준 유일한 사람이 아닐까 합니다.

노벨화학상 수상자이자 알파고 개발 CEO 허사비스는 말했습니다. ' 알파고 상대로 이세돌을 선택한 이유는 월드탑클래스 선수 중 가장 창의적인 수를 두고, 알파고의 허점을 잘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아서입니다. 우리의 선택은 옳았고 알파고는 이번 오류를 통하여 또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알파고의 패배를 패배라고 하지 않고, 오류라고 말했으며, 그걸 토대로 발전할 것이라고 말하는 CEO허사비스, 그리고 개발진이 분석한 알파고를 0.007%의 확률로 이길 수 있었던 창의적인 신의 한 수를 둘 수 있었던

이세돌.


왼쪽 노벨화학상 수상자 허사비스, 가운데 이세돌, 오른쪽 구글 회장 (출처: 구글코리아)

노벨상 수상자 허사비스와 바둑랭킹 탑 랭커 이세돌, 이 두 사람의 만남은 우리나라 교육의 지향점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큰 사건이었습니다. 실패할 수도 있었던 한 수를 둔 이세돌과 패배했던 판을 패배라고 말하기보단 앞으로의 발전을 위한 오류라고 말하는 CEO.

우리나라 교육이 두고두고 그 의미를 되짚어야 하는 부분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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