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코모레비
일상이 항상 평화롭고 좋을 수 있을까?
그건 가능하지 않다고 본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으니까.
그러나 누구나 일상을 요리하는 요리사가 될 수 있다. 일상은 누구에게나 매일 배달되는 싱싱한 음식 재료 같으니까. 어떻게 요리를 할 것인지는 본인 마음에 달렸다. 그건 나를 위한 요리가 될 수 있고 다른 사람을 위한 요리가 될 수도 있다.
일하고 놀고 먹고 자는 일......일상은 되풀이되는 일이다. 하나하나 생각해 보면 이것 만큼 중요한 일이 없다. 이게 루틴이다. 루틴 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며 살면 어떨까. 루틴은 삶의 기본일 테니까. 삶의 조건과 배경이 어떠하든 상관없다. 내 일상은 내가 변주하는 거니까.
내게 찾아오는 소소한 일에 햇볕이 들게 하는 것, 그리하여 그걸 즐기며 축적해 가며 나무처럼 단단해지는 것. 이걸 해내는 사람의 뇌는 건강하다.
빔 밴더스가 만든 영화 <퍼펙트 데이즈 >에 코모레비(木漏れ日)란 말이 나온다. "나무 사이에 잠시 비치는 햇빛"이란 뜻이다.
코모레비는 청소부인 주인공의 일상에 잠깐식 등장하는 은유이다. 공중화장실을 청소하고 단골집에서 같은 음식을 먹고 책을 보며 자고 그렇게 똑 같이 반복되는 일상에서 주인공은 나무 사이에 비치는 햇빛을 사진에 담는다. 그의 삶에 조금씩 들어오는 햇빛을 모으는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노숙자의 동작, 공원에서 같은 점심을 먹는 소녀의 눈빛, 화장실에 들어오는 사람들의 급한 소리 모두가 그에겐 빛이다. 그의 일상은 그래서 더 견고하다. 그가 더러운 변기를 열심히 닦을 수 있는 것도 닦은 후에 만나는 빛 때문은 아닐까.
일상에서 빛을 건져내는 일!
어두울수록 빛을 찾아가는 일!
일상의 행복으로 찾아온 코모레비는 은유이다. 은유는 강력한 생각의 도구이다. 뇌가 은유를 사용하기 시작할 때 그 뇌는 건강하다. 흔들려도 무너지지는 않는다. 결코 삶이 퍼펙트할 수 없지만 퍼펙트 데이즈(perfect days)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일상의 은유 때문이다.
그래, 오늘 퍼펙트했다고.
영화 마지막 장면이 모든 걸 말해준다. 주인공이 운전대를 잡고 한소끔 웃으면서 우는 묘한 복합 연기. 그게 퍼펙트 데이즈의 묘미 아닐까. 너와 나의 삶의 은유가 아닐까. 가로수에서 내려온 코모레비가 차의 앞 창문을 뚫고 얼굴을 비출 때 그의 뇌는 어떻게 작동하고 있을까.
어느 가을에 건져 올린 빛 하나 올린다.
가을은 저물고
어쩌지 못해 그냥 있는 아침
스윽, 낙엽이 내 곁에 내려앉는다
무엇을 말하였나 싶은데
손등에 기대어 있는
구멍 난 뒷모습이 따뜻하다.
- 졸시, 가을 볕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