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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세포소생술

by 한현수


단어가 갑자기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 일이 잦아지고 혼란스럽다.

나이 들수록 심해지는 이 현상을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기억세포소생술은 떠오르지 않는 단어를 찾는 방법이다. 정확히 말하면 단어를 기억하는 뇌의 기억세포를 회생시키는 것이다.


기억세포소생술은 심폐소생술로 멈춘 심장을 회생시키듯 기억세포를 회생하게 하고 기능을 잘 유지하도록 한다. 깜박깜박 단어를 잊어버리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방법이다. 특별한 뇌질환 없이 이 문제로 병원을 찾는 사람이 많다. 이들 대다수는 치매로 진행될까 염려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걱정하지 말자.


걱정만 하고 있으면 기억은 회복하지 않는다.


뇌가 단어를 잊어버리는 것은 그 단어를 담당하는 기억세포의 건강이 좋지 못하기 때문이다. 죽어가는 기억세포를 어떻게 살릴까? 가장 중요한 것은 잊어버린 단어를 찾고 단어를 다시 잃지 않겠다는 절심함이 있어야 한다.


첫째로, 단어가 생각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나는 이 방법을 좋아한다. 잊어버린 단어를 급하게 사용할 것이 아니라면 경험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단어가 돌아온다고 믿고 운동하며 하고 있는 일을 집중하면 된다. 중요한 것은 단어와 연관된 것을 수시로 생각하고 관찰하는 것이다. 그러면 주변 뇌신경세포가 병든 기억세포를 도와 회생하도록 돕는다. 뇌세포가 뇌세포를 돕는 뇌신경가소성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건강한 세포가 병든 세포에게 하는 소생술인 셈이다. 건강한 세포는 더 건강하게 되고 병든 세포는 회복하게 되니 일석이조다.


때죽나무꽃 이름을 잊어버린 적이 있었다. 그 꽃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만 이름을 잊은 것이다. 꽃을 좋아하는 내겐 실망스러운 일이었다. 누군가의 문밖에서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낼 수 없는 그런 느낌이었다. 검색하거나 식물도감을 통해 쉽게 찾을 수 있는 이름이지만 간절한 마음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기로 하고 꽃나무 주변을 수없이 서성거렸다. 며칠 지나 때죽나무꽃이 거의 질 때쯤 꽃 이름이 생각났다. 떨어진 꽃을 밟으며 걷고 있는데 발끝에서 꽃이 부서지는 두두둑 소리와 함께 꽃 이름이 떠올랐다. 눈물만큼의 이름이었다. 꽃 이름을 기억하는 병든 뇌세포에게 나의 간절함이 통했구나. 그렇게 얻은 이름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그 이름은「눈물만큼의 이름」이란 시로 거듭났다.


어렵게 돌아온 단어는 좀처럼 잊지 않게 된다.


발끝에서 부서지는 이름 하나

혀끝에 맺힌다, 눈물만큼의 이름


거꾸로 매달렸다가 하얗게 직선으로 추락하며

망각에 저항하는 이름


꽃이 나의 해마 속으로 떨어진다

나비 한 마리 끌어안고 있다


- 졸시「눈물만큼의 이름」일부


둘째로, 찾아낸 단어를 노트에 기록하고 반복해서 암송하는 것이다.


'망각 노트'를 만들어서 단어를 기록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 전 혹은 아침에, 기록된 단어를 집중하여 반복적으로 소리 내어 읽는다. 심폐소생술을 할 때 심장을 반복적으로 압박하듯이 단어를 부르며 세포에 생명력을 넣는 것이다. 단어를 계속 부르면 단어를 담당하던 세포가 깨어난다.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기억세포가 건강을 회복하는 것이다. 암기하는 기분으로 반복하다 보면 단어를 잊지 않게 된다.


자꾸만 단어를 까먹는다고 실망하지 말고 기억세포소생술을 하자. 그리고 회생한 단어는 눈물만큼의 이름처럼 소중하게 생각하고 반복적으로 사용해야 오래 기억할 수 있다.


기억세포에게 '살아있음과 기억'이란 말은 하나다.


간절하면 통하고

간절하면 잊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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