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에게 말했다
"새야, 왜 날아가니?"
새가 대답했다
"넌 왜 숨을 쉬니?"
- 졸시,「하나마나 한 농담」
숨을 쉬는 것을 고민하는 게 얼마나 되었을까. 숨 쉬는 것을 고민하는 사회. 숨은 생명활동에 있어 당연한 것인데 지금은 숨에 관한 질문이 하나마나한 질문이 아니다. 숨 쉬는 것은 나만의 것이 아니고 같이 쉬어야 하고, 누군가의 숨이 내 폐에 들어오고 나의 숨이 누군가의 폐에 들어가는 '함께 공유하는 공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우리는 함께 호흡하는 공동체임을 실감했다. 공기 중에 내뱉는 상대방의 호흡을 들이마시지 않기 위해 마스크를 사용했고, 서로 호흡을 섞지 않기 위해 사회적 거리 두기를 했고 만남을 자제했다. 식사공동체는 자기만의 식사가 있지만 호흡공동체는 자기만의 호흡이 불가능하다. 호흡은 타인이 내쉰 숨을 내가 들이마시는 서로 의존적인 것이니까.
호흡은 생명의 시작과 끝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태생 후 첫울음과 함께 엄마에 의존했던 배꼽혈관이 닫히고 본인의 호흡으로 생명을 유지하기 시작한다. 첫 들숨으로 폐는 확장되고 자력으로 숨을 쉬어 살 수 있는 생명이 되는 것이며 가족과 공기를 나눠마시는 호흡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사라진 배꼽혈관의 흔적으로 간초음파에서 원형 인대(ligament teres)를 볼 수 있는데 간을 검사할 때마다 첫 호흡의 신비로움을 느끼곤 한다.
생명이 닫히는 마지막 호흡은 어떨까. 임종이 가까워지면 불규칙한 패턴의 호흡을 하게 되는데 이것은 주기적인 과호흡과 무호흡을 반복하는 체인스톡호흡(cheyne sokes breathing)이라고 한다. 이쯤 되면 마지막 호흡이 다가오고 있다는 신호이므로 다가오는 죽음 앞에 엄숙해지는 시간이다. 마지막 숨은 1L의 깊은숨이며 날숨이다. 날숨이기에 숨을 거둔다고 말하고 마지막 숨이기에 누구에게나 딱 한 번 있는 숨이고 왔던 곳으로 돌려주는 숨이다. 인생의 긴 호흡 여정으로 볼 때 "세상의 첫 호흡, 들숨에 대한 마지막 마침표, 날숨"인 셈이다.
인생은 들숨으로 왔다가 날숨으로 돌아간다.
그동안 지구에 살다 간 모든 사람들이 내뱉은 호흡이 대기권에 포함되어 있다. 저들의 마지막 숨에 포함된 수많은 분자들이 우리의 호흡 속에 들어오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내쉰 마지막 숨도 있고 샘 킨이 말한 로마 정치인 카이사르의 것도 히틀러의 것도 이태원 압사 사고로 숨진 159명의 가쁜 호흡도 지구대기권에 포함되어 있다. 이 분자들은 절대로 깨지거나 없어지지 않으며 하루에 2만 번씩 우리의 들숨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가히 시간과 역사를 초월한 호흡공동체의 과학적 실상이다.
밀지 마 밀지 마......
발바닥이 둥둥 떠다니는 과밀이야
원하는 건 공기야
......
정말 우리에게 봄이 또 올까
꽃잎은 겹겹의 슬픔 농담이야
무력하게 헛기침만 해도
뚝뚝, 덩어리채 떨어져 나가는 농담이야
- 졸시,「이태원 농담」일부
가슴이 압박되어 숨을 쉴 수 없었던 이태원 청년들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호흡공동체인 이 나라에 저런 슬픈 농담은 다시 있어선 안된다. 어떻게 겹겹 꽃잎 떨어지듯 건강한 청년들이 압사되어 죽어갈 수 있단 말인가.
첫 숨과 마지막 숨, 한 번의 기회는 공평하게 주어지지만
두 숨 사이에 있는 길고 긴 숨은 평화롭지도 공평하지도 않다.
숨은 같은 조건의 공간에서는 공평하지만 어디에 있느냐 무슨 일을 하느냐에 따라 공기의 질이 다르다. 환경의 질과 사람의 밀도에 따라 공기상태는 다르며 근무조건에 따라 공기의 질 편차는 심할 것이다. 누군가는 지금도 폭염으로 하루 종일 뜨거운 공기를 누군가는 더러운 공기를 누군가는 세균이 흘러 다니는 공기를 마셔야 한다. 또다시 코로나19 팬데믹 같은 상황이 올 수도 있다. 호흡공동체의 위기가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 알 수 없다.
숨 잘 쉬고 있지요? 이런 인사말이어도 어색하지 않은 세상이다.
30년 전에 어느 선배의 습관적인 농담이 있었다. "태백산에 있는 맑은 공기를 서울에 판매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아마 떼돈 버는 일이 될 거야."
슬픈 농담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공기를 사고파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호흡은 생명의 시작이고 기본이기 때문에 공기만큼은 누구에게나 공평해야 한다. 지금 마시는 공기 속에 인류의 호흡이 숨어 있다. 그럼에도 자본주의는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자본주의에 길들인 사람들은 시애틀 인디언 추장의 말을 꼭 기억했으면 한다. "우리는 땅의 한 부분이고 땅은 우리의 한 부분이다. 어떻게 공기를 사고판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