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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놀먹17-뇌사용설명서

두 개의 뇌로 만들 미래의 빛과 그림자

by 한현수

미셀 세르가 <엄지세대, 두 개의 뇌로 만들 미래>를 발표했을 때 그의 놀라운 혜안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그는 검색엔진과 디지털 네트워크를 통해 미래를 열어가는 엄지세대를 신인류라고 말했다. 생물학적인 자신의 뇌와 디지털시대의 뇌(스마트폰과 컴퓨터), 두 개의 뇌로 미래로 가는 선두에 엄지세대가 있음은 분명하다.


어디 두 개의 뇌뿐인가? 이제 생성형 AI란 또 하나의 뇌를 장착시켜 AI스마트폰을 시작으로 어떤 뇌가 추가로 만들어질지 궁금하다. 엄지세대만큼은 아니지만 이제 모든 세대들이 엄지세대를 따라가고 있다.


어디서나 스마트폰만 바라보고 있는 모습, 그 자세가 현대인의 모습이 되었다.


모두가 스마트폰 한 곳을 바라보고 있을 때, 그 시선에 끼어들어 역이용하고 싶은 무수한 사람들이 생겨날 것이다. 선하게 탄생한 디지털이라 해도 악용하는 세력이 있을 것이고 거대한 공룡 자본주의가 그걸 가만둘 리 없다. 그것만큼 돈이 벌리는 곳이 어디 있겠는가.


"빛과 그림자"란 노래가 있다.


그대는 나의 행복, 그대는 나의 불행, 사랑하는 내 마음은 빛과 그리고 그림자


뇌 속에 있는 도파민박스의 본래의 기능이 행복이었지만 중독에 의해 불행한 박스가 되는 것처럼 미셸 세르의 말대로 엄지세대의 미래에는 원하는 빛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그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을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 그럴까?


첫째, 접속을 통해 정보와 지식은 무한 전송이 가능하지만 지혜와 합리적인 판단은 전송이 불가능하다. 오직 나의 뇌로만 가능한 것이다. 설사 정보 검색으로 수많은 것을 획득한다고 해도 삶으로 넘어지고 부딪히며 터득하는 지혜와 판단은 검색으로 얻어낼 수 없다.


둘째, 제1 뇌(자신의 뇌)가 제2 뇌(디지털)의 중독성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시선을 가져가는 싸움, 경쟁자들은 자극적이고 폭력적이거나 아니면 수면을 빼앗거나 심장과 호흡에 충격을 줄 놀라운 카드를 내밀 것이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게 마련인데 생각보다 그림자가 너무 짙다.


미래에 사람들의 모습이 저승 입구를 지키는 머리가 세 개 달린 괴물 케르베로스(cerberus)가 아니길 바란다. 세 개의 머리가 짖어대는 끔찍한 소리 가득한 세상이 아니길 바란다.


단테의『신곡』에 나오는 "살아서 들어가지만 결코 빠져나올 수 없는 저승 세계"가 중독의 세계처럼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지나친 걱정이 아니길. 잠을 자지 않고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는 케르베로스를 어떻게 구출할 수 있을까? 케르베로스를 힘으로 제압하는 헤라클레스 아니면 음악으로 케르베로스를 잠재우는 오르페우스 같은 존재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성형 AI이상으로 혁신적인 뇌가 만들어진다 해도 나의 뇌가 행복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제1 뇌가 제2 뇌에게 지배당하면서 제1 뇌에 드리워진 그림자는 짙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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