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차 공무원이 들려주는 진짜 공무원 이야기
공무원으로 근무했던 3년 동안 한순간도 빠짐없이 "이곳이 나와 맞지 않는다"고 퇴사를 하고 싶다고 외쳤다. 그러면서도 이곳을 놓지 못했던 이유는 어떤 회사든 똑같을 거라는 막연한 짐작 때문이었다. 공무원을 그만두고 다른 회사에 취직하고 싶지 않았고, 내가 공직자의 옷을 벗는다면 아예 9to6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9to6의 삶이 숨 막힐 듯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그냥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저질러 버릴까 하는 생각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던 수백 번의 순간들을 기억한다. 하지만 나를 책임져 줬던 부모님한테 더 이상 기대고 싶지 않아 목구멍 끝에서 맴도는 말을 내뱉을 수가 없었다. 아니, 수천번 내뱉었지만 정작 종이에 적어내지 못했다. 더욱이 이제는 나 하나쯤은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나이가 되었기에 이곳을 여전히 떠나지 못하고 있다. 나가서 더 행복할 거라는 확신을 아직 가지지 못해서.
확신을 가지기 전까지 그만두고 싶다고 이야기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나는 몇 주 전 또 '그만둬야 살 것 같다'라고 이야기했다. 그 이야기는 흘러 흘러 고모의 귀에 들어갔고,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간을 부르라는 고모의 말에 홀리듯이 내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간을 이야기했다. 태어나서 사주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나는 여전히 운명보다도 인생은 개척하는 거라고 생각하지만, 3년 동안 질질 끌고 온 삶이 답답해서 태어남과 동시에 약간은 정해져 있는 내 삶의 방향을 알고 싶었다.
"너 회사 그만두면 사회생활 못할 거래! 그냥 다녀야 한대!"
고모는 내가 전화를 받자마자 속사포로 이야기를 꺼냈다. 사업을 하는 고모의 사주를 봐주시는 선생님이 계신데, 그분이 내가 회사를 그만두면 안 될 거라고 이야기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대체 그런 사주가 어딨어!!! 고모 듣고 싶은 말만 들으면 어떻게 해!!!!"라고 대답했다. 고모는 핵심이 중요하지 무슨 말이 더 필요하냐면서 말을 덧붙였다.
"너는 회사랑 안 맞는 사주라고 하더라. 회사를 다니는 한 계속 때려치우겠다고 이야기할 거래. 다른 사람이 시킨 일만 하는 걸 답답해한대. 마케팅? 이런 거 하면 잘할 거라고 하더라. 그런데 일단은 회사는 다니래. 그리고 이미 그 길로 들어섰으니까 일단 이겨내라고 하더라"
회사를 다니는 한 계속 때려치우겠다고 하는 사주라... 며칠 안 해본 아르바이트와 공기업 인턴 5개월 그리고 3년 동안의 공무원 생활을 포함해서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니 내가 답답한 걸 참지 못했던 사람이라는 게 더욱 뼈저리게 느꼈다. 남이 시킨 일만 하는 걸 답답해하는 나는 공무원의 업무와 폐쇄적인 조직이 답답하다 못해 숨이 막혔다. 그럼에도 내가 여기에서 이겨내야만 하는 사주라면 '한 번 이겨내 볼까' 하는 생각이 아주 잠시 들었다가 그런 생각을 이미 천 번은 더 했다는 걸 알고는 이겨내야겠다는 생각이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공무원 조직은 폐쇄적인 데다가 무엇보다 소문이 소문을 낳는 곳이다. 당사자는 알지도 못하는 소문을 만들어내고, 출처 없는 소문을 부풀리다 못해 터지게 만든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아 하는 나는 공무원 조직은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불편하기만 했고, 그건 어떤 회사에 다니든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무엇보다 내 체력이 어떤 회사든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면직을 주저했던 많은 이유들이 있었다. 어차피 회사에 갇힐 거라면 1년 동안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공부했던 시간을 무의미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고, 이곳을 떠나 밖으로 나가면 그곳에 어떤 길이 있는지조차 몰라 두려웠다. 더 이상 답답한 인생을 살고 싶지 않아도 나에게 확신이 없는 이상 이곳을 떠날 수가 없었다.
내 평생 처음으로 사주를 봤는데 그 사주가 "회사를 다니는 한 때려치우겠다고 말하는 사주"라니. 회사에 출근을 하면서도, 퇴근을 하면서도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모르겠다 모르겠어"라는 말을 육성으로 내뱉었다. 약한 체력은 주말에 체력을 회복했었는지 기억은 나냐고 비웃으며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 월요일이 되자마자 널브러진 해파리를 또 마주한다. 안녕 해파리...
진짜 나를 숨긴 채 회사의 부품으로 살아가는 시간을 끝내고 집에 와 쓰러져 잠이 들었다. 그래도 다시 일어나 이 글을 쓸 수 있다는 건 체력이 조금이나마 남았다는 이야기. 몽롱한 정신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서 아무런 생각도 방향도 찾지 못한 채 영영 확신을 가지지 못할까 봐 두려워진다.
언젠가 확신을 가진 채 맞지 않는 옷을 집어던지는 날이 오면 아주 환하게 웃으며 "이제 더 이상 때려치우겠다고 말 안 해도 될 것 같아!!"라고 말할 것이다. 그때가 오기 전까지는 또 웃음을 세팅한 채 버텨낸다. 웃는 척하는 걸 아무도 모르는 부품이 되어, 내 사주를 생각하며 가끔은 웃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