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지음 Aug 18. 2022

이상한 조직의 이상한 조직원으로서 살아갑니다.

3년 차 공무원이 들려주는 진짜 공무원 이야기



항상 체력이 부족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주말마다 하는 여행도, 퇴근 후 하는 필라테스도, PT도 아니고 글을 쓰는 일밖에 없기에 내가 가장 잘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를 이곳에 풀어내 보려고 한다. 내가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회사에서의 이야기를.








나는 이상한 조직의 이상한 조직원이다. 그곳은 이상한 일 투성이다. 3년이 되도록 자리를 옮겨주지 않기도 하고, 6개월 만에 다른 자리에 던져 놓기도 한다. 무엇보다 막 던져진 자리에는 제대로 된 매뉴얼이 없다. 하루 전날까지 이곳에서 일하던 사람이 남겨놓은 서류와 작성해놨던 공문을 보고 '알아서' 해나가야 한다. 내가 해야 할 게 무엇인지에 대해 알려주는 친절함을 기대하는 건 사치다. '그냥 하라'는 대사 또는 '버티라'는 대사만이 존재한다.



이상한 조직에서 이상한 하루를 버텨내려면, 나 또한 이상한 조직원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상처받지 않을 수 있다. 가장 나답게 사는 건 회사 밖에서나 통용되는 일이다. 가장 나답다는 건 결국 이상한 조직과는 맞지 않는 모난 부분이 있다는 거다. 



모난 부분이 조직에 부딪혀 스스로 아파하지 않게 하려면 이 조직과 맞지 않는 부분을 아예 깎아버리거나, 잠시 숨겨야만 한다. 나를 깎아버리고 싶지 않아 가장 나다운 부분은 옷깃 뒤로 숨겨 놓는다. 그리고는 이상한 미소를 장착한다. 감정을 빼는 일이 시작된다. 회사에서는 나답게 사는 걸 버려야 한다. 



출근을 하고, 경험을 쌓고, 또 즐겁게 퇴근을 하자. 이겨내고 나면 또 쉬운 일이 되어 있을 거니까. 매번 똑같은 다독거림은 다음 날이 되면 무너져서 결국 다시 주저앉게 만든다. 그럴 때는 새로운 다짐을 만들어내야만 한다. 벗어날 궁리만 하면서 버텨내야 한다고 다짐하는 순간 회사는 더 숨 막히는 곳으로 변한다.



정말 하루를 버텨내지 못하겠을 때는 여행작가가 된 것처럼 이상한 조직을 여행한다는 생각으로 출근을 해야만 한다. 여전히 일을 숙제처럼 해나가는 나는 3년이 지났는데도 일에서 편안함을 느끼지 못한다. 퇴근을 하고 나서도 다음 날 출근할 생각에 숨이 가파지는 건 언제 경험해도 적응이 되지 않는다.



"그래 인생 뭐 있냐 내 앞에 있는 서류부터 해치우자"



도망갈 수 없다면 또 버텨내야지 별 수 있겠냐는 말로 하루를 시작한다. 이상한 조직에 출근하는 건 엄청난 체력소모를 필요로 한다. 어떤 회사든 마찬가지일테지만 체력이 약하다는 건 많은 측면에서 약점이 된다. 퇴근 후에 아무것도 못하는 삶은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그리고 나는 회사에서 어떻게 하루를 보냈든 집에 오자마자 쓰러져서 자는 사람이었다.



퇴근을 하고 원데이 클래스를 배운다고? 주말마다 등산을 다닌다고? 그럴 체력은 나에게 남아있지 않다. 퇴근을 하고 뭔가를 하는 사람들이 부러워서 선택했던 '공무원'이라는 직업. 하지만 나는 공무원이어도 저녁과 주말이 없었다. 야근과 주말 출근을 해서가 아니라 그냥 체력이 없었다.



공무원이 되기 전에는 공무원이 되면 하고 싶은 게 무척이나 많았다. 퇴근을 하고 나면 맛있는 음식을 매일 만들어 먹을 생각을 했다. 그리고 주말에는 여행을 다녀야지. 그 모든 게 깨졌던 건 첫 출근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보란 듯이 내 계획을 깨지고 무슨 시름시름 앓고 있는 해파리 한 마리가 거울 앞에 서있었다. 당장이라도 푹 자고 싶은 마음만 간절했다. 자도 자도 체력은 충전되지 않았다.



체력이 빠르게 소모되는 가장 큰 이유는 회사에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통제하려고 노력했던 많은 날들이 스쳐 지나간다. 업무적인 숙지.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통제지만, 그것조차 쉽지가 않다. 열정적인 모습으로 지침을 읽어 내려가던 지난날... 그 모든 게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무력감을 경험하고 내 앞에는 또 시름시름 알고 있는 해파리 한 마리가 거울 앞에 서있다.



막상 출근하면 또 이상한 조직원으로서 눈을 똥그랗게 뜨고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하겠지만 지금 내 앞의 해파리는 좀처럼 우아한 춤을 출 생각이 없어 보인다. 언제쯤 제대로 된 춤을 추는 날이 올지 기대하지만 그 기대를 실현으로 만드는 건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이상한 조직에 오늘도 웃는 얼굴을 세팅한 채로 출근을 한다. 사실 그 조직에 어울리지 않는 이상한 사람은 나 하나뿐이라는 걸 인정하면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