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사랑의 계절
지나가다 마주한 흔한 장면들이 어느 날은 다르게 다가오곤 한다. 여기가 이런 느낌을 주는 곳이었는지 문득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이곳이 이런 색깔이었는지, 이런 모습이었는지 멈춰 서서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내가 사랑했던 기억의 조각들을 꺼내본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받았던 따뜻한 위로, 혼자 간 등산에서 만나 인생이야기를 들려주신 아주머니, 비 내리는 날 우비 위로 떨어지던 비소리, 내 앞에 벌러덩 누워서 배를 쓰다듬어 달라했던 처음 보는 강아지. 사랑이 담겨있던 많은 장면들에 괜스레 웃음이 나왔다.
저녁식사를 하고 늦은 저녁 집 주변 산책로를 돌면 제 3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구경할 수 있다. 이번 산책에는 마주 잡은 두 손을 놓지 못하는 학생 커플을 마주쳤다. 손을 놓기 싫은 두 학생의 마음이 설레여서 몰래 미소 지었다. 공원을 한 바퀴를 더 도는 데 똑같은 자리에 똑같은 모습으로 학생 커플이 여전히 두 손을 마주 잡고 있다. 나도 그런 풋풋한 사랑을 했었던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면 카페에 간다. 혼자 좋은 노래를 들으며 책을 읽는 시간은 제일 좋아하는 시간 중 하나다. 내 바로 앞자리에 앉아있는 커플이 꽁냥꽁냥 거리는 게 보였다. 여자는 남자의 어깨에 기대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남자는 여자의 오른쪽 팔에 손을 얹은 채 토닥거려 주고 있었다. 서로가 기대 하루를 살아온 사람들이 대견하게 느끼며 내 앞에 놓여져 있는 카페라떼를 홀짝거렸다.
어떤 날에는 강풍주의보가 내려진다. 내 앞에 있던 나뭇잎이 6층까지 올라갈 때는 나뭇잎도 새를 보며 자유롭고 싶었나 보다 생각하며 웃음이 나왔고, 맑은 하늘에 구름을 올려다보며 세상은 가만히 들여다보면 참 예쁘다는 생각을 했다. 세상을 예쁘게 들여다볼 수 있어서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제3자의 입장에서 새롭게 펼쳐지는 세상을 바라보는 게 너무나 예뻐서 모든 장면에 한참을 눈을 떼지 못했다.
아주 흔하디 흔한 일상이 나에게로 다가가 와 예쁘게 변해서 이렇게 예쁜 장면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한참을 감격스러워 한다. 길을 걸으며 이어폰 사이로 나오는 노랫말의 아름다움과, 갑작스럽게 길에서 만난 옛 친구도, 갑작스럽게 연락이 온 10년 전 동창도, 내 앞에 펼쳐지는 인생이 내 인생 같지 않고 제3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 같았다. 살아있어서 다행이었다. 이 세상을 보는 게 무척이나 행복했다. 내 눈에 보이는 것들이, 내 귀에 들리는 것들이 꽤 오랫동안 내 안에 머물렀다.
'신지음 계절집'의 사계절 중 '봄 : 사랑의 계절'편 입니다.
4계절의 이야기가 틈틈히 올라올 예정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