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사랑의 계절
각자의 습관과 각자의 생각은 각자의 세상을 만들고, 각자가 오롯이 만들어낸 각자만의 세상을 이해하기란 좀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이해하기 쉽지 않은 타인의 세상에 푹 빠진다. 그렇게 타인의 세상을 알아가고, 생각하며, 타인의 세상마저 이해하게 된다.
이해하게 된 것이 타인이었을지, 타인의 세상이었을지를 구분하는 건 꽤나 부질없는 일이다. 그 둘을 어떻게 분리할 것이며, 분리한다면 타인이 존재할 수 있는가도 의문이다. 타인과 타인이 만들어낸 세상은 떼려야 뗄 수 없다.
타인의 세상에 푹 빠지게 되는 경로는 아마 다음과 같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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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알게 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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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세상이 보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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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세상을 알게 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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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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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세상을 이해할 수 있게 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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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너의 세상을 사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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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세상에 푹 빠지는 일은 타인으로 존재하던 사람이 더이상 당신에게 타인이 아니라는 의미이며, 각자의 생각을 담으며 살아가던 각자의 세상에 점차 교집합이 생긴다는 말과 같다. 서로의 세상을 공유하고 둘만의 세상이 만들어지는 일이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그게 단순히 친해지고 싶어 하는 마음이든, 두근거리는 호감이든, 절절한 사랑이든 간에 티를 내지 않으면 그 누구도 그 마음을 알 수가 없다. 더 많은 감정을 나누고 싶다면 '내가 너를 생각하고 있다'는 걸 표현해야만 한다.
사랑을 시작하는 모두는 용기가 있는 사람이다. 자신의 마음을 용기내고 표현한 대단한 사람이다. 사람들은 몇 번의 사랑을 거친다. 단번에 자신의 반쪽을 알아본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마는 운명처럼 끌린 그 반쪽도 누군가의 큰 결심이자 용기로 시작되었음은 아주 분명한 사실이다.
그 용기를 지속하는 건 조금 더 어려운 일이다. 조금씩 사랑의 표현이 익숙해지고 무덤덤해질 때 즈음의 타이밍은 전혀 맞지 않고, 예상치 못할 때 다르게 찾아온다. 아직도 여러 번의 용기를 내 사랑한다 말하고,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은 보다 용기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랑의 용기를 낼 수 있는 사람 옆에 있었던 사람이라면 언젠가는 알게 된다. 당장이든, 시간이 흐르든 간에 그게 얼마나 대단한 용기이자 사랑이었는지를 깨닫게 되는 시점이 언젠가는 온다.
이러나저러나 사랑의 타이밍을 맞추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누군가는 시작을 준비할 때, 누군가는 끝을 바라보기도 하고, 누군가는 정처 없이 방황할 수도 있다. 누군가는 사랑의 속도가 10이라 할 때, 누군가는 사랑의 속도가 1일 수도 있으며, 맞지 않는 사랑의 속도를 어떻게 해서든 맞추지 않으면 결국 어긋나기 시작한다.
사랑의 속도를 맞추는 유일한 방법은 10의 속도를 가진 사람은 속도를 늦추고, 1의 속도를 가진 사람은 속도를 높이는 것뿐이다. 서로의 속도에 조금씩 맞춰 가다 보면 언젠가는 비슷해지는 속도가 오고, 사랑의 속도가 느껴지지 않은 편안한 시점이 온다.
대단한 용기로 사랑을 시작했다면, 사랑하기에 맞지 않는 속도를 맞춰 사랑해왔다면, 무엇보다 옆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분명 더 많이 사랑한다고 표현해야 한다. 사랑한다는 말은 단순하지만 더 무겁고, 더 무겁기에 더 자주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 필요하다. 사랑한다고 표현하고 그렇게 사랑을 덜 어내며 또 나누며 자꾸 덜어내야 한다. 덜어낸 사랑을 다시 나에게 줄 수 있도록.
오늘 하루가 저물고, 또 내일 하루가 다가오고, 또 다른 하루가 찾아오겠지만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고, 사랑한다는 걸 알아주길 바란다면, '사랑한다'라고 알려주는 수밖에 없다. 비슷한 하루를 보내면서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려면 말하는 수밖에 없다. 더 많이 표현하고 더 많이 안아주면서 사랑한다고 말하는 수밖에는 없다. 더 많은 표현보다도 더 진지하고 따뜻하게 표현하는 수밖에는 없다.
'신지음 계절집'의 사계절 중 '봄 : 사랑의 계절'편 입니다.
4계절의 이야기가 틈틈히 올라올 예정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