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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지음 Oct 10. 2022

화분 속에 들어있는 식물로 살아가고 있지만요

4년차 공무원이 들려주는 진짜 공무원 이야기



화분에 옮겨 심은 식물은 자라는 데 한계가 있다. 물론 화분 안에서 화분에 딱 알맞은 모양과 크기로 자라나겠지만 한계는 분명하다.



나는 화분 안에 들어있는 식물이었다. 회사가, 우리 집이 그러했다. 회사라는 틀에서 회사에 맞는 사람으로 자라나야 했고, 육체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집은 정서적으로 독립하지 못해 부모님의 요구에 맞게 가치지기를 했다.



두 곳에서 모두 벗어나려는 시도는 작은 용기로는 허락되지 않는 크고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엄청나게 큰 용기와 대범함을 가지지 않고서야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회사와 집이었다. 물론 돈만 있으면 그 모든 게 쉬웠겠지만 나에게는 땡전 한 푼 없었다.



내 시선은 자꾸만 다른 곳을 향했다. 자신의 길을 개척해 들어본 적 없던 직업을 만들어 낸 사람에게로 향했고, 알지 못했던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에게 귀 기울어졌다. 그들의 이야기는 동태눈이 되어 가고 있던 내 눈을 초롱초롱하게 만들었고, 심장이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당장 떠날 수 없다는 걸 가장 잘 알고 있는 건 나임에도 흘러가는 하루가 너무나 아까워서 뛰쳐나가 버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나는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계속 떠나려고만 했다.



회사를 떠나려고 하니 부모님이 붙잡아서 결국 두 곳 모두를 떠나야겠다고 다짐했다. 육체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건, 결국 정서적으로 독립하지 못했다는 이야기와 같아서 내가 선택을 하려면 두 분의 허락을 받아야만 가능했다.



나는 두 분을 설득시킬 증거물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무엇보다 나조차도 나에게 확신을 가지지 못해서 무언가 하나의 성과가 필요했다. 나를 믿어달라고 하지 않아도 상관없을만한 내가 나를 믿을 수 있는 하나의 성과.



결국 성과는 내지 못했고, 벗어날 길은 없었지만 무턱대고 나는 탈출을 계획했다. 내가 또 회사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소리는 고모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미래가 보이지 않아서 그렇다"는 나의 말에 고모는 어디를 가도 미래를 원래 선명하게 보이는 게 아니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한 번도 사주를 본 적이 없는 내게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간을 말하라고 했다.



매번 극구 사양하던 나는 단숨에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간을 고모에게 말했다. 오늘 아니면 내일 안에 전화를 준다고 했는데 현재까지 전화가 없는 걸 보면 내일쯤 나의 사주팔자에 대해서 듣게 될 예정이다. 내 사주팔자가 대체 어떻길에 왜 항상 더 큰 세상을 보지 못해 안달이 난 건지 나도 좀 알아야 속이 풀리겠다.



선명하게 보고 나면 조금 나아질까. 나의 사주에 매몰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지만 나를 걱정해주는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과 함께 약간의 안개는 걷히길 바라는 기대로 잠에 들어본다. 내일은 조금이라도 실마리가 풀릴까.



화분 속에서 나와 산에 옮겨 심어질 수 있을까. 조금 더 큰 양분을 받아먹고 싶은데. 아니 꼭 식물이 되어야 할 이유는 있을까. 그냥 물이 돼보는 건 어떨까. 물이 돼서 지구를 몽땅 여행해보는 건 어떨까. 내 사주팔자가 대체 어떠길래 이토록 넓은 세상을 갈망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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