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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노이 민언냐 Nov 26. 2021

너와 나의 연결고리 - 바이올린

10살 딸과 함께 하는 고통템       일러스트 BY 민언냐 인 하노이

“쭌이, 쩡이 바이올린 연습 시작~”

“엄마, 피아노 한 번 더 치면 안 되나?"

“어, 안된다.”

“.. 엄마도 바이올린 배워야 된다. 그래야 안다.”

쩡이는 요즘 부쩍 바이올린 연습을 하기 싫어한다. 바이올린을 연습시키려면 나는 1인 연극을 하듯 변화무쌍해진다.

시작은 늘 달콤한 말투와 칭찬이다. 물론 이정도에 연습을 하겠다고 일어서는 쩡이가 아니다. 그러면 육아의 기본인 감정 공유와 응원으로 돌입한다. "쩡이, 힘들겠다. 힘내."를 연발한다. 여기서 포인트는 한껏 아래로 처진 눈썹과 눈이다. 딸이 순순히 바이올린을 꺼내 준다면 럭키~그날은 운이 억세게 좋은 날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다음 단계로 진행되는 경우가 더 많다. 혼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하며 으름장을 놓는 것이다. 사실 모든 걸 뛰어넘고 마지막 단계로 직진하는 날이 더 잦아지고 있다는 게 함정이다.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선생님은 쭌이보다 쩡이가 더 잘한다고 했다. 재능이 있다고 칭찬을 받아 나는 예중, 예고를 떠올리며 저축을 많이 해둬야겠다고 김칫국물까지 마시고 있었다. 하! 지! 만! 손톱만큼의 재능은 금방 바닥이 난다. 연습을 요리조리 피하던 쩡이는 결국 쭌이보다 진도가 느려지고야 말았다. 반면 박치가 의심이 되던 쭌이는 짧은 손가락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고 진도를 나가고 있다. 선생님 또한 쭌이의 노력에 많은 칭찬을 많이 했다. 사실 선생님은 쭌이에게 많은 기대는 하지 않은 듯했다. 하지만 나 또한 마찬가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꾸준한 연습이 시급해 보였다. 그래서 요즘에는 적어도 이틀에 한 번은 20분에서 30분의 연습을 시키려고 한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이리저리 연습을 피하던 쩡이, 결국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바이올린을 꺼내 들었다. 그런데 쩡이가 눈을 세모로 하고 내 발을 흘겨보며 중얼거리듯 한마디 하는 게 아닌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엄마도 해봐야 안다는 것이었다. 순간 10초간 정적이 흘렀다. 나는 말문이 막혔다. 그렇지, 딸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 나는 바이올린을 배운 적이 없다. 그러니 자세를 잡고 서서 바이올린을 턱 아래에 끼워 본적도 활을 고양이 손 모양을 하고 쥐어 본 적도 없었다. 사실 바이올린을 제대로 만져본 적도 없었다.


순간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바이올린도 바이올린이지만 그보다 초딩 3학년의 딸에게 큰소리치는 것도 몇 년 안 남았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제는 "칵 마! 혼난다."는 말은 수명이 다했구나. 공포정치는 먹히지 않겠구나. 그리고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은 진짜였다. 머지않아 쩡이의 바람은 현실화되었으니 말이다.


아이들의 과외 선생님 내게 무료 레슨을 제안한 것이다. 그녀는 내가 피아노를 친다는 것을 알고 악기에 흥미가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원래 소속되어 있던 오케스트라도 코비드로 공연이 무기한 취소되자 시간적인 여유가 생겼다고 했다. 하지만 정작 나는 바이올린을 끼워 넣을 틈이 없었다. 클래스 101에서 수강한 일러스트 수업은 매회마다 열 번은 반복해서 봐야 겨우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일주일 1회의 베트남어 수업과 일주일 2회 온라인 프랑스어의 숙제만으로도 일주일이 꽉 차있었다. 아, 한 가지 더 있다. 1달이 조금 넘은 테니스 수업 또한 일주일에 두 번씩 받고 있다. 그렇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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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무료 레슨'이라고 하지 않았나. 거절을 하기에는 너무도 달콤한 말이다. 결국 나는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예스'를 외치고 말았다. 그렇게 순식간에 갑분 바이올린이 시작되었다. 된장국 냄새가 진동하는 내 삶에 깜빡이도 켜지 않고 바이올린이 들어왔다.  


첫날, 가벼운 마음으로 방으로 들어갔다. 바이올린 선생님은 먼저 활을 잡는 손부터 설명했다. 그리고 두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선생님은 진심이었다. 구색을 맞추기 위한 수업이 아니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다섯 손가락을 이렇게 부자연스럽게 구부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어정쩡하게 활을 쥔 손가락은 3분도 안되어 힘이 풀리기 시작했다. 특히 구부려야 할 엄지와 새끼손가락에 힘이 들어가 자꾸만 펴게 되었다. 그렇게 활과 바이올린을 잡고 턱에 괴는 연습만 하며 첫 수업이 끝났다.


그리고 2주 차, 아이들이 수업을 받는 동안 서둘러 저녁 준비를 했다. 수업이 마치고 나오면 바로 먹을 수 있도록 식탁을 차렸다. 드디어 내 차례가 오자 얼른 앞치마를 벗고 손을 씻고 방으로 들어갔다. 2주 차에는 개방현을 키는 연습을 하기로 되어 있었기에 더 설레었다. 여전히 활을 쥐는 손은 부자연스럽기만 했다. 다행히 바이올린은 자리를 찾아가는 듯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대망의 개방 현인 A(라), E(미) 현 두 줄을 켜기 시작했다. 앗, 소리가 났다. 의외로 깔끔한 소리, 제법 그럴싸했다. 바이올린에서 울리는 소리와 진동이 고스란히 몸에 전해졌다. 국자만 쥐던 내가 활로 소리를 내고 있자니 황홀했다. 고작 개방현 두줄이었지만 말이다. 혼자 소리에 취해 있을 무렵, "Elbow."하고 선생님이 팔꿈치의 각도를 바로 잡아 주었다. 다시 팔에 온통 힘이 잔뜩 들어가기 시작했다. 순간 거울 속의 내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흡사 관절마다 줄이 연결된 마리오네트 인형이었다. 선생님은 그런 내가 안쓰러웠는지 "Relax."라는 말을 반복했지만, 내 몸은 이미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선생님은 '작은 별'의 악보를 보여주며, 우리의 목표는 이곡이라고 그때까지 도와주겠다고 했다. 하노이에 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순간 들었다.


그리고 요즘 쩡이와 쭌이는 나의 바이올린 선생님이 되어 저녁마다 연습을 도와준다. 아이들은 초보인 엄마를 가르치는 걸 즐거워한다. 나 또한 활을 잘 쥐는 아이들을 진심으로 부러워하고 칭찬을 하니, 많이 신나 한다. 결국에는 쭌이와 쩡이가 서로 자기 말이 맞다며 싸우다가 마무리되지만 말이다.


과연 곡다운 곡을 연주할 수 있는 날이 올지 아직은 확신이 가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한 건 쩡이와 쭌이에게 바이올린이 얼마나 힘든지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내게는 아니 우리에게는 큰 수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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