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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노이 민언냐 Jan 26. 2022

그 길에서 만난 더 나은 세상 ft. 베트남 비영리단체

뜨끈한 관심, 야무진 소비             일러스트BY하노이민언냐

 ‘Money Donated To HANOI PET ADOPTION’ (‘하노이 반려동물 입양’에 기부됩니다.)


산책길, 내 발길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 이들이 있었다. 무질서하게 쌓인 책더미들 그리고 그 뒤에 반듯하게 쓰인 글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사실 프랑스어와 영어 원서에 가장 먼저 눈길이 갔다. 하지만 내 마음을 잡고 놓아주지 않은 건 책이 아니라 꾹꾹 눌러쓴 손글씨였다. 이런 글씨에 마음이 약해지는 편이다. 백 마디의 말보다 더 무거운 진심이 담겨있는 느낌이랄까. ‘Money Donated To HANOI PET ADOPTION’이라.. 역시 그냥 지나칠 수 없다. 하노이 특히 호떠이에는 애완견들이 넘친다. 걸음마다 소똥만 한 개똥을 피하느라 발끝을 들고 걷게 될 정도다. 하지만 그만큼 버려지는 개들도 많다는 게 현실이다. 특히 코비드로 많은 가정이 계획보다 빨리 귀국하거나 이사를 하게 되어 함께 키우던 반려견을 방치한 채 간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코비드보다 더 저주스러운 인간의 밑 낯이다. 먼지 쌓인 책들을 곰곰이 보다 보니 흥미로운 책들을 찾았다. 가격도 착한 4만 동(2천 원), 이 가격 실화입니꺄. 그동안의 망설임은 뒤로 하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사실 가게로 들어가기 망설인 이유는 따로 있다. 간판에는 ‘Better World’라고 쓰여 있다. 거기에 더해진 그림은 더 수상했다. 땅 속 깊은 곳에서 절규하듯 뻗어 나온 검은손, 그 위로 듬성듬성 난 파란 잎사귀들… 자정이 되면 수상한 집회가 있을 것만 같은 묘한 뉘앙스를 풍기는 곳이었다. 남극에서도 비키니를 사고야 마는 쇼핑 만랩인 내가 문고리를 잡는 것조차 주저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렇게 대면대면 스쳐 지나가길 한 달, 드디어 용기를 내어 들어가 보았다.

슬슬 본격적인 가게 탐방을 시작해볼까. 몽골, 라오스, 터키 등의 수공 특산품부터 각종 주얼리, 의류까지 다양한 아이템이 가득했다. '토탈 패숀'을 표방하는 느낌이었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강렬한 색감과 도발적인 디자인에 발걸음이 멈췄다. 해외에 있다는 체감을 다른 곳이 아닌 가게에서 외국임을 실감하는 건 어딘가 이상한가. 하지만 오늘의 목표는 책이다. 현란한 아이템들을 뒤로하고 책장을 향해 냅다 달렸다.


일반 도서는 4만 동에서 6만 동으로(한화로 2천 원에서 3천 원선) 사진집은 20만 동에서 30만 동(한화 만 원에서 만 오천 원)이었다. 그리고 나는 8 권을 사버렸다. 특히 화장실만 찍어놓은 인테리어 책을 20만 동, 한화로 만 원에 사고 가슴까지 설레었다. 그때 옆에 있는 전신 거울을 보고야 말았다. 그리고 흠칫 놀랐다. 보물을 발견한 듯 책을 품에 꼭 안고 선 내가 보였다. 심지어 제목은 화장실들, ‘BATHROOMS’다. 환희를 주체하지 못한 채 코를 벌름대며 입꼬리가 한 껏 올라간 모습, 내 안의 변태가 출몰했다.  

가게를 둘러보다 보니 ‘블루 드래건’이라는 이름의 봉제인형을 발견했다. 어딘지 낯설지 않다. 작년 여름 프렌치 친구 B와 함께 방문했던 곳이었다. 정식 명칭은 Blue Dragon Love organization으로 롱비엔에 위치하고 있다. 이 단체를 알게 된 것은 내가 국제 요가 자격증을 딴 Zenith Yoga원의 W 때문이었다. 당시 베트남의 중부지역은 쏟아진 폭우로 집이 떠내려가고 마을이 매몰되는 참사를 겪었다. 그리고 W는 폭우 피해지역을 후원하기 위해 옷을 수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집으로 양손 한가득 옷을 들고 갔고 그녀를 통해 블루 드래건을 알게 되었다.

생애 첫 기부는 16년 전 세이브 더 칠드런을 통해서였다. 처음으로 월급다운 월급을 벌게 되면서 정기적인 기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쭌이와 쩡이가 태어나면서 후원 아동도 늘어났다. 지금까지 몽당연필, 기아대책, 굿네이버스 그리고 사랑의 달팽이 등의 단체를 통해 조금씩 기부를 해오고 있다. 하지만 냉장고에 붙어있는 아이들의 사진을 보며 가슴 한편에 떠오르는 한마디.

 

"이게 최선입니까?"


양심의 문을 똑똑 두드리는 질문이다. 매달 소정의 금액만 인출될 뿐 전혀 자랑할 만한 게 아니다. 이마저도 뒤늦게 카톡이나 메일로 알게 되고 말이다.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기부 조금 하는 것으로 진정한 나눔을 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하노이에서 '블루 드래건'에 대해 들었을 때, 이번에야 말로 직접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Are they your daughters?"


프렌치 친구 B와 지금은 파리의 대학생이 된 큰 딸 R 이렇게 셋이 함께 방문했다. 20분쯤 차를 타고 골목을 돌며 도착한 건물의 입구에는 젊은 여자 선생님이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그녀는 나를 보고 B의 딸이라고 착각을 했다. 그 소리를 듣자 B와 나는 어리둥절해했고 R은 한바탕 크게 웃었다. 고작 5살 차이에 모녀 사이라는 것도 기가 막힌데, 백인에 금발인 그녀와 흑발의 검은 눈동자인 내가 어디를 봐서 닮았다는 걸까. B와 나는 이내 서로 닮긴 했다며 농담을 하기 시작했다. 유창한 영어를 하는 그녀는 잠시 멋쩍은 미소를 뗬지만 다소 긴장감이 돌던 우리는 그녀의 착각 덕에 웃을 수 있었다. 우리는 가까스로 웃음을 참으며 건물로 들어갔다. 1층 계단 뒤로 맛있는 음식 냄새가 났다. 아이들의 식사는 물론 요리사를 꿈꾸는 청소년들이 직업 훈련도 함께 하는 주방이 있었다. 새하얀 앞치마를 쓴 10대 아이들은 우리를 보자 멈칫하는 듯 보였지만 이내 각자 맡은 일에 집중했다. 선생님은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며 내부를 안내했다. 계단은 한 사람이 지나가면 꽉 찰 정도로 좁았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아이들은 우리가 지나갈 수 있도록 길을 내어 주었다. 각 층마다 공부를 할 수 있는 교실도 있었는데, 문을 열자 쩡이와 쭌이만 한 아이들은 물론 10대 아이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다. 동그란 테이블 주위를 둘러싸고 삼삼오오 모여 앉은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중 가장 흥미로운 곳은 음악실이었다. 여섯 명 정도면 꽉 차는 좁은 공간이었지만 기타, 드럼, 건반을 치는 10대에서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4명의 청년들이 연주를 하고 있었다. 우리가 들어서자 들어와 앉으라며 의자를 꺼내 놓기 시작했다. 머뭇대며 문 앞에 서있던 우리들은 하나 둘 들어가 앉고 15분 남짓의 즉흥 콘서트열렸다. 서로의 눈빛을 맞추며 합주를 하던 그들은 더없이 행복한 얼굴로 음악을 즐기고 있었다. 브루노 마스를 시작으로 한 밴드는 곧 클라이맥스인 마지막 곡을 남겨 놓고 있었다. 영광의 라스트 송은 바로 만국 공통, 불후의 명곡인 생일 축하 노래였다.


"HAPPY BIRTHDAY TO YOU."


이게 이렇게 신나는 노래였던가. 브루노 마스의 신곡은 누구보다 먼저 다운로드하는 1인이지만, 그날만큼은 ‘생일 축하’ 곡의 완승이었다. 두리뭉실한 허밍 없이 완창 하기에 이보다 완벽한 곡은 없으니 말이다.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노래를 부르고 박수도 치며 무거울 것만 같던 건물의 분위기를 환하게 밝혀주었다. 단체의 도움을 받는 아이들은 어두울 것이라는 편견을 바사삭 깨 주었다. 멋진 연주에 감사하며 방을 나설 때쯤, 가벼운 마음으로 나설 수 있어 그들에게 감사한 마음까지 느꼈다. 드디어 맨 꼭대기 층에 이르렀다. 사무실 문을 열자 찌는 더위에 압도당했다. 그녀는 서둘러 에어컨을 틀기 시작했다. 우리가 테이블에 앉자 지도와 책자를 들고 와 펼쳤다. 그리고 놀라운 이야기들을 해주었다. 베트남 내의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아이들, 가난으로 교육을 받지 못하는 거리의 아이들은 어느 정도 예상을 한 바였다. 하지만 인신매매가 더욱 심각했다. 베트남과 중국이 인접한 북부 국경 지대에는 어린아이들의 납치로 몸살을 앓고 있다. 단체는 베트남의 경찰보다 먼저 나서 직접 인신매매로 부터 구출을 했다. 경찰을 대동하기도 하지만 한두 명일뿐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지는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구출되어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은 여전히 극소수에 불과하다며 안타까워했다. 경찰을 총동원해도 아슬아슬하고 위험한 상황이었다. 첩보 영화를 방불케 하는 이 이야기가 실화라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도 몰랐다. 5살의 여자아이는 물론 남자아이들까지 한번 납치되면 행방을 알 수 없다. 마당에서 잠시 놀고 있던 아이들이 연기처럼 사라지는 것이다. 어린 자녀를 둔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무게의 비극이었다. 모든 이야기를 듣는 내내 나는 손을 꽉 지고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결국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B 역시 입술을 깨무는 게 보였다. 소정의 금액을 넣은 봉투 그리고 학용품을 전달하고 인사를 나누며 헤어졌다. 마주하기에는 너무 무거운 진실, 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현실에 그날 밤,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고 말이다.

아이들의 학교는 이 블루 드래건을 위해 치약과 칫솔, 타월 등의 세면도구와 함께 모금을 매년 실시하고 있다. 올해는 국립 소아암 병원 기부 공지가 떴고 말이다. 당시에도 코비드로 많은 시련을 겪고 있던 블루 드래건이었다. 그 뒤로는 학교 모금과 비정기적으로 기부를 했지만 이렇게 호떠이의 가게에서 다시 마주하니, 죄책감이 들었다. 코비드에 불평하며 자기 에고에만 빠져 그들을 잊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부끄럼이 밀려왔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봉제 인형을 집어 들었다. 옆에 있던 블루 드래건 동화책도 함께 말이다. 쩡이와 쭌이는 인형과 동화책을 좋아하기에 너무 커버렸지만, 아무렴 어떤가.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다면 상관없다. 가게에는 베트남의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과 여성을 지원하는 ‘Humanitarian Children of Vietnam’(HSCV)의 제품들도 있었다. 아이들의 삐뚤삐뚤한 그림을 모티브로 한 노트, 카드, 다이어리 등은 디자인을 묻고 따질 것 없이 의무감으로 사게 된다. 이날도 역시 노트와 뗏에 쓸 수 있는 봉투를 한 세트 사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책들은 과연 어디서 생긴 건지 궁금했다. 가게의 사장님은 국제 학교나 단체로부터 기부를 받았다고 했다. 살펴보니 한국어 책도 눈에 띄었다. 집에 있는 한국 동화책과 다 읽은 영어 책을 떠올리며 기부 여부를  묻자 흔쾌히 YES라고 답했다. 그래, 오늘은 당장 책장부터 정리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P.S. 하노이의 사회단체는 더 많지만 가장 잘 알려진 곳으로 소개한다.

1. Humanitarian Children of Vietnam’(HSCV)의 상징인 아이의 손바닥이 그러진 상품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아이들은 물론 베트남 사회에서 소외된 여성들을 위해서도 노력 중이다. 노란 손을 본다면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착한 소비로 기부를 고민해보자.

2. Blue Dragon Love organization은 하노이에서 가장 잘 알려진 단체로 활발한 활동을 하는 단체 중 하나이다. 사회단체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본 이름이다. 기부나 도움을 주고 싶다면 홈페이지는 물론 페이스 북으로도 문의할 수 있다. 당시 옷은 창고에 가득 있다며 학용품을 기부받기를 희망했으니 직접 연락을 하여 필요한 물품을 미리 알아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3. World Wide Fund For Nature (WWF) Vietnam은 하노이에 위치한 동물 단체다. 베트남은 동굴, 강, 우림, 바다, 사막 등 자연이 보여줄 수 있는 모두 것을 가진 나라다. 그만큼 희귀한 멸종 위기의 동물도 많다. 봉사활동을 모집하는 것은 물론 다양한 활동 소식을 홈페이지에 매달 업데이트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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