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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노이 민언냐 Mar 29. 2022

쓰레기 무법 도시, 하노이

페트병 캐슬의 예민한 그녀           일러스트 BY 하노이민언냐

“우리 가족이 미각이 되게 예민해. 그래서 물을 ‘라 비 La Vie’ 꺼 아니면 아예 안 먹어.”
-페트병 캐슬의 그녀-


×는 하노이에서 사귄 첫 한국인이었다. 하루는 그녀의 집에서 티타임에 초대를 받았다. 하지만 차를 마실 여유가 도무지 생기지 않았다. 그녀의 집은 흡사 플라스틱 페트병 공장 같았다. 여기저기 온 집에 가득 굴러다니는 ‘라비’의 페트병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엌은 뜯지 않은 생수 박스가 싱크대 높이 이상으로 쌓여 있었다. 이날 본 진격의 페트병들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날 페트병들이 습격하고 난동을 피우는 악몽을 꿀까 두렵기까지 했다. 이건 집이 아니다. '페트병 캐슬'이다.

베트남은 재활용과 분리수거에 대한 인식과 사회적 시스템이 미흡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음식물이든 종류에 상관없이 모두 같은 봉지에 싸서 버린다. 그래서 골목마다 정체불명의 악취를 뽐내는 봉지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베트남에서는 오토바이만큼 많은 게 쓰레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베트남에 와서 가장 처음 느낀 허전함은 가족, xx 치킨 그리고 분리수거였다. 매주 수요일 4시부터 일주일간 쌓아놓은 각종 재활용 쓰레기들을 안고 달리던 나, 이제는 먼 옛날같이 느껴질 정도다. 하노이에서 우리 집만 해도 매일 같이 쏟아지는 쓰레기가 만만치가 않다. 그래서 문득 궁금해졌다. 이 많은 쓰레기는 매일 어디로 향하는 걸까.

그 진상은 심장 쫄깃한 야 산책이 취미가 되던 어느 날, 드디어 밝혀졌다. 해가 떨어진 깜깜한 밤 9시 되면 레지던스 후문이 열린다. 거대한 철문으로 보이는 건 리어카다. 쓰레기를 한가득 아니 넘치게 싣고 비틀대던 리어카는 후문과 가까운 공터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평소 이 공터 앞에는 리어카들이 한 둘 서 있기도 했다. 하지만 큰 철 울타리와 문으로 닫혀 있었기에 정확히 어떤 장소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쓰레기가 그저 방치되어 있다고만 여겼다. 하지만 9시가 되자 '끼익' 하는 큰 소리와 함께 철문이 열렸다. 그리고 쓰레기를 한가득 물고 있는 리어카들 주위로 인부들이 삼삼오오 서기 시작했다. 문이 열리는 틈으로 재빠르게 내부를 탐색하려 고개를 돌려 봤다. 그리고 펼쳐진 믿지 못할 광경!


철로 된 울타리 뒤로 펼치진 것은 바로 거대한 쓰레기 사막이었다.


이토록 조용한 주택가에 난데없는 대형 쓰레기 장이 코 앞에 똿! 눈앞에 거대 쓰레기 사막이 있다고는 꿈에도 몰랐다. 그리고  여태껏 보지 못한 대형 트럭이 출동했다. 요란한 멜로디와 주황색의 후미등을 켠 트럭은 신속하게 후진하기 시작했다. 그렇다. 초록의 얼굴을 한 초대형 트럭은 바로 쓰레기 차였다. 어째서 쓰레기 차는 대부분 초록인 걸까. 환경에 악행을 저지르는 쓰레기를 실은 차가 자연친화적인 색을 띠고 있다니, 왠지 위화감이 느껴졌다. 듣도 보도 못한 쓰레기장에 이어 갑분 등장한 쓰레기 차는 커다란 뒷문을 열고는 꾸역꾸역 쓰레기들을 삼키기 시작했다. 무자비한 쓰레기 포식자였다. 그렇게 눈 깜짝할 사이에 모든 쓰레기를 싣고 어디론가 떠나버렸다.


사실 베트남굉장히 아름다운 나라다. 자원도 많고 청정지역도 많다. 산, 우림, 강, 바다는 물론 동굴부터 사막까지 대부분의 자연은 모조리 모아놓은 스페셜 패키지다. 하지만 겨울 내내 살인적인 공기 오염도를 자랑하는 하노이는 예외다. 하노이의 겨울 하늘은 그야말로 안개가 자욱해 앞이 보이지 않는 사우나와도 같다. 자전거에서 오토바이가 인기를 끌며 공기가 눈에 띄게 탁해졌지만 쓰레기 또한 공기 오염에 큰 영향을 끼쳤다. 하노이에 와서 놀란 것은 곳곳에서 시커먼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른다는 것이다. 이는 매우 자주 그리고 큰 불씨를 타고 올라 처음에는 시커먼 연기에 화재라도 난 게 아닌지 놀라기도 했다. 그래서 리셉션으로 전화를 걸어 물어보니, 호탕한 웃음과 함께 의외의 답이 들려왔다.


"Hahaha, no worries, Min. They are just burning garbage."


"하하하, 걱정 마, 민. 그냥 쓰레기 태우는 거야."


뭐라? 도시 한복판에서 쓰레기 소각이라니... 그것도 분명 '저스트'라고 했다. 대체 어떤 곳에서 '그냥' 쓰레기를 태우는 게 가능하다는 것일까. 리셉션의 대답에 더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우리는 잦은 쓰레기 태우기에 연기는 물론 타는 냄새로 고통받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도 '저스트' 흔한 하노이의 풍경일 뿐이다. 물론 정부의 제재는 전혀 없고 말이다.

대단한 환경운동가는 아니지만 조금이나마 환경에 대한 미안함을 덜기 위해서 장바구니를 늘 지닌다. 그리고 1.5 리터는 물론 작은 페트병의 생수조차 구입하지 않는다. 플라스틱 빨대 또한 아이들이 아기일 때도 거의 쓰지 않았다. 물론 개똥 같은 신념이지만 이것만은 지키고자 노력한 지 벌써 10년이다.


최근 레지던스 조식을 기존 뷔페에서 테이크 아웃으로 제공하길 반복하고 있다. 급증한 코로나 확진자를 염두에 둔 정부의 특단의 조치다. 어떤 이들은 테이크 아웃이 편하다며 오히려 반기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테이크 아웃에 반대한다. 테이크 아웃은 일회용 용기를 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플라스틱 용기와 함께 음식을 받노라면 강물에 시커먼 독극물을 흘려보내는 것 마냥 죄책감이 가슴을 짓눌렀다. 나 하나 편히 먹자고 플라스틱으로 자연을 죽인다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았다. 마치 가슴 한구석에 돌을 매단 듯 무거워졌다.

​하여 부득이한 경우를 빼고 늘 텀블러와 가방, 빈 도시락통을 들고 가서 조식을 받기로 했다. 작은 도시락을 내밀자, 직원들은 처음에는 당황하더니 이제는 익숙한 듯 알아서 척척 음식을 담아준다. 왜 이리도 유난을 떠냐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이 편이 수고스럽더라도 마음은 가벼우니 말이다.

하노이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목격한 페트병 캐슬은 여전히 충격으로 남아 있다. 그걸 본 순간 맥이 풀림과 동시에 분노의 허리케인이 머리를 강타한 것도 사실이다. 물론 진정으로 미각이 초특급 예민할 수도 있고 남모를 피치 못한 사연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부분의 국가들은 분리수거를 하지 않나. 그 어떤 신념이나 사명감만큼 한 번은 생각해 봐야 할 부분이다.

더욱이 우리 가족은 베트남에 몇 년을 머물다 가는 손님이자 나그네다. 좋은 건 못 남길 망정 해는 끼치지 말고 떠났으면 하는 마음이다. 학교 화장실에서 보던 문구가 떠오른다. ‘아름다운 이는 머물다가 간 자리도 아름답습니다.’


나도 아름답게 머물다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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