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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노이 민언냐 Apr 26. 2022

스탠드 위드 우크라이나

체코 공화국 대사관의 우크라이나 후원 바자회   일러스트 by하노이민언냐


갈색의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리고 레게 파마를  앳땐 얼굴의 그녀! 어깨에 메고 있던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는다. 먼발치에서 합창단과 함께 우크라이나 애국가를 함께 부르더니 끝내 울음을 터뜨린다. 주위 사람들과 포옹을 했고 끝내 완창 하지 못했다.



지난 토요일, 모처럼 생긴 커피 한 잔의 여유. 하노이의 많은 남편들은 코로나가 주춤해지면서 다시 바빠졌다. 일본인 친구 ㅁ의 남편도 우리 남편도 장기 출장을 시연 중이시니 말이다. 그래, 진정한 일상의 복귀란 독박 육아 아니겠습니꺄? 하지만 이번 주 토요일은 아이들도 오전 수업이 있어 친구도 나도 잠시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금쪽같은 자유시간을 조금 더 의미 있는 시간을 영위하기로 했다.

때마침 ㅁ은 페이스 북에서 접한 우크라이나 후원 바자회 소식을 공유해주었다. 읽고 바로 이거라는 느낌이 왔다. 아이들이 수업을 시작하자마자 부랴부랴 가방을 싸서 출발했다. 바딘에 있는 체코 대사관으로 말이다. 알고 보니 체코 대사관은 우크라이나 대사관과 매우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지금 우크라이나 대사관은 건물 벽면 전체가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베트남어와 노란 표어로 가득하다. 만일 바딘 광장 방향으로 간다면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이번 우크라이나 후원 바자회는 체코 대사관에서 진행되었지만 다른 단체도 함께 참여했다. 베트남 유러피안 유니언과 폴란드 대사관, 슬로바키아 대사관, 베트남 내의 타이완 커뮤니티 등이 그러하다. 사실 이번 행사는 개인적으로 조금 더 다르게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얼마 전, 한국 정부가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원격회의에서 보인 무관심한 태도와는 180도 달랐다. 온 세계가 규탄하는 지금, 텅텅 빈 국회를 보여주어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일본은 물론 다른 외신들은 모두 이를 보도하며 우려를 표했고, 한국인으로 수치스러움을 느꼈다. 전 세계에 현존하는 유일한 분단국가로 꼽히며 전쟁 발발 가능성을 안고 있는 나라가 바로 코리아다. 하지만 이렇다 할 의견을 내고 있지 않고 뒷짐만 지고 있다. 한국의 이런 양가적인 모습에 젤렌스키 대통령도 힘주어 말했다. 전쟁을 겪은 지 얼마 되지 않은 한국은 일본과의 문제에만 뜨겁게 반응하는 모습을 보여 기이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특히 대통령의 연설 중 핸드폰을 만지거나 무관심한 태도로 박수조차 없었던 모습은 얼굴이 다 화끈거릴 정도다. 정치나 외교에 문외한인 나이지만 저변에 깔린 눈치 보기식 태도가 여실히 드러난 순간이었다. 실제로 유럽 각국은 전쟁의 여파로 생필품을 품귀현상은 물론 물가가 치솟는 경험을 하고 있다. 프랑스는 가톨릭 문화이기에 부활절 휴가가 막 끝이 난 시점이다. 휴가 동안 몇몇 프랑스인 친구들은 자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은 이제 아이의 구두 한 켤레를 사는 데도 온 거리를 다 휘젓고 다녀야 했다고 한다. 실생활에 직격탄을 맞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유럽은 티브이를 틀 때마다 전쟁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국은 지리적으로 거리가 있기 때문일까. 모든 면에서 그 여파에서 조금 비켜나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대사관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을 때는 그저 작은 후원의 기분이었다. 하지만 행사가 시작되고 한편에 걸린 러시아 군인들의 만행을 알리는 기사들을 직접 눈으로 보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날 참여한 밴드와 베트남 합창단은 우크라이나의 애국가를 불렀다. 기대 이상의 하모니와 목소리에 가슴이 먹먹해졌고 말이다. 반대편에서 우크라이나 애국가가 나오자, 함께 부르며 한 손을 가슴에 올린 젊은 여성이 있었다. 그녀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무거운 표정으로 노래를 부르더니 끝내 주위 사람들과 뜨거운 눈물의 포옹을 했다. 전쟁을 겪는 고국을 향한 마음은 어떨까. 전쟁을 통감하고 도움을 호소하는 연설문도 읽혔다. 이는 베트남어와 영어로 번갈아 진행되었으며 묵념도 함께 했다. 가만히 있어도 이마에 땀이 흐르는 더위였지만 그 누구 하나 자리를 뜨는 이가 없었다. 하나같이 고개를 숙이고 기도하는 모습에 가슴이 뭉클했다. 같은 아시아인 대만 또한 전쟁을 반대하고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입장을 표명했다. 한국은 뭐 하고 있나 싶은 생각이 들어 고개를 세차게 좌우로 흔들었다.


쨍한 블루와 따뜻한 옐로는 우크라이나의  국기다. 많은 상품들이 두 가지 색상으로 구성되어 판매되고 있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사진은 물론 우크라이나 관련 서적이나 그림들이 흥미롭다. 멀게만 느껴졌던 세상이 한 층 더 가까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행사에서 판매된 대부분의 아이템은 핸드메이드로 한 땀 한 땀 누군가의 피, 땀, 눈물이 강한 염원을 담고 태어난 것들 이리라. 가판대를 서성이다 결국 꽃무늬 와펜을 2개 손에 쥐고 왔다. 고작 5만 동이지만 도움이 되었길 빌며 말이다. (한화로 2천5백 원) 작은 규모의 바자 행사였지만 그 뜻은 깊고 크다. 코로나의 긴장감이 풀리고 이런 행사가 가능해진 것이다. 곳곳에서 커피와 소시지 그리고 우크라이나 디저트가 판매되고 있었다. 우크라이나 현지의 레시피로 만들어진 케이크 한 조각과 견과류가 든 초콜릿 케이크를 테이크 아웃했고 말이다. 같이 갔던 ㅁ도 전통 케이크 두 조각을 샀다.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한창 찍어대도 되는지, 이렇게 관광객처럼 행동해도 될지 잠시 헷갈리기도 했다. 하지만 선글라스에 색색깔의 치마로 한껏 드레스 업 한 베트남 어머님들이 보이자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여섯 명의 마담들 엇비스듬하게 일렬횡대로 줄을 선 채 사진 찍는 모습에 양심이 조금 구원받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뒷마당을 지나 코너를 돌아 나올 때쯤, 티셔츠들이 눈에 띄었다. 가족 단톡방에 사진을 올리니, 남편은 네이비로 부탁한다는 답을 해온다.  ‘Stand with Ukraine’이라는 메시지가 담긴 녀석이군요. 그래 35만 동이 뭐 그리 아깝겠나?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다면 이쯤은 기꺼이 낼 수 있다. 쩡이의 사이즈를 사기에는 너무 컸다. 결국 쩡이의 몫은 화이트, 옐로 그리고 블루로 이뤄진 비즈 목걸이 두 개로 대신했다. 3장의 티셔츠를 사고 자리를 빠져나왔다. 꾀나 많은 이들이 티셔츠에 관심을 보이고 사고 있었다. 당장 그 자리에서 티셔츠를 바꿔 입고 내가 산 와펜을 꽂은 이들도 있었다. 이런 가슴 뜨거운 사람들을 보았나.

사실 우크라이나가 어떤 나라인지 모른다. 가보지도 단 한 번도 직접 사람들을 만나본 적도 없었다. 이번 기회를 통해 국기와 지리적 위치 등을 조금 검색해 본 게 다인 셈이다. 행사를 통해 아주 조금 더 가깝게 느껴졌던 건 사실이다. 이날은 많은 베트남 사람들이 보였고 생각보다 페스티벌을 즐기는 그들의 모습이 한결 마음을 가볍게 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들떠있던 나도 떠날 때는 마음에 백 톤의 돌덩이를 달고 나가는 듯 무거워졌다.



전쟁에 대한 헤드라인만 읽어도 살상의 현장이 참담해 눈앞이 아득해질 정도다. 많은 이들은 가슴이 아파, 애써 관련 뉴스를 피하기도 한다. 진실을 마주하는 데만 해도 용기가 필요한 법이다. 잠시나마 바자회에 참여하고 온 마음을 다해 전쟁에 반대하는 묵념을 하는 것 외에는 달리 한 일이 없다. 작지만 후원금을 보태는 것으로 마음의 짐을 덜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는 여기, 전쟁을 반대한다. 그리고  우크라이나를 위해 기도하는 것 이외에는 달리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해도, 기도하고 또 기도한다. 그렇게라도 해야 한다.


생애 최초로 발걸음을 한 체코 대사관 종전을 축하하며 모일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p.s. 조금이라도 보템이 되고자 여러 아이템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친구와 나는 전쟁을 대하는 각 나라의 분위기, 정부의 태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도 생각이 많아지긴 마찬가지였나 보다. 기나긴 한국 여행을 뒤로하고 막 하노이로 돌아와 기분에 울적해졌던 1인이다. 스스로에게 매몰되어 끝없이 가라앉고 허우적대던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게다가 요즘 새벽마다 계속되는 파티 소리에 이웃들을 만날 때마다 불평을 늘어놓고 있었다. 잠을 설치는 작은 불편함에도 벌벌 떨며 목숨이 걸린 문제처럼 분노했던 게 부끄럽다. 누군가에게는 생사를 오가는 전쟁 지옥이 누군가에게는 두 눈 질끈 감고 외면할 수 있는 구겨진 사진 몇 장일 수도 있다는 것, 비현적인 현실이다.


페이스북을 통해 여러 가지 소식과 후원행사 등을 확인할 수 있으니, 지금 당장 검색하고 함께 움직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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