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용준 Aug 02. 2023

괌 1

봉선화

같은 회사에 다녔던 아내는 비행기 타고 외국 여행을 좋아했다. 나는 항공사에 다니면서 부끄럽지만 고소공포증이 심해서 비행기 타는 것을 무서워했다. 회사 사람들 대부분 장거리 지역으로 신혼여행을 가는데 우리 부부는 제주도로 갔다. 긴 시간 비행을 질색하는 신랑을 신부가 배려해 준 것이었다. 결혼 5년 차에 부산 발 괌 직항 노선이 신규 취항했는데 그동안 남편 눈치만 살피는 아내에게 미안해서 괌 해외여행을 제안했다. 딸아이는 두 살 배기라 본가에 부탁드리고 둘만 떠났다. 모처럼 해외여행을 간다는 생각에 아내는 행복해 보였다.


부산 김해공항 국제선 터미널에 도착했다. 나는 그 당시 국내선에서 근무하고 있어서 국제선은 처음 와봤다. 심플한 국내선보다 면세점과 CIQ(세관, 출입국, 검역)가 있는 국제선이 좀 더 공항다운 분위기였다. 아내는 면세점을 둘러보고 국제선 터미널에만 있는 이것저것을 구경했다. 하지만 나는 형편이 달랐다. 고소공포증이 없는 사람들은 절대 이해 못 한다. 비행기를 탄 후 공포에 질려 절규하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드디어 비행기에 오를 시간이 왔다. 아내는 내 안색을 살폈다. 애써 태연한 척했다. 아내가 좋아하는 해외여행을 내 고소공포증 따위로 망가뜨릴 수는 없었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분들은 이해하시겠지만 비행기에 탄 이후 내릴 때까지 혼자 마음속으로 사투를 벌여야 한다. 주기장에서 활주로로 이동한 비행기는 땅에서 낼 수 있는 최대 속력으로 냅다 달리다가 곧 머리를 쳐들고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나의 양손은 앞 좌석 시트를 너무 꽉 잡고 있어서 팔에 경련이 올 지경이었다. 이젠 내리고 싶어도 달리 방법이 없다.


다행히 이륙할 때 굉음을 내며 기체가 조금 흔들렸다가 이내 잠잠해졌다. 아내를 위한 선행에 하늘도 좀 봐주시는 듯했다. 가는 도중에 두세 번 정도 흔들릴 때마다 정신이 혼미했지만 각오했던 것보단 훨씬 견딜만했다. 사실 내가 원래부터 고소공포증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군 복무시절 높은 곳에서 아래로 뛰어내리는 막타워 훈련을 받은 이후로 생겼다. 대한민국 청년들 전부 다 가는 군대인데 나만 이렇다는 것이 핑계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나는 그랬다.


야간 비행 편이라 괌에 도착하자 새벽이었다.

입국장으로 가는 길에 한국으로 되돌아가는 회사 선배 부부를 만났다. 내일부터 태풍이 온다는데 알고 왔냐고 물었다.


'아뿔싸!'


들뜬 마음에 현지 날씨 체크도 안 한 것이었다. 괌 공항을 빠져나와 호텔 숙소에 도착했다. 잠시 눈을 붙인 거 같은데 곧 아침이 밝았다. 호텔 조식 뷔페 음식을 보자 여행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혼여행을 외국으로 못 가서 늘 미안한 마음이었는데 조금 만회하는 느낌이었다. 모닝커피를 마시고 아내와 함께 수영장으로 갔다. 파스텔 톤의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며 살랑이는 물살에 몸을 맡기자 행복한 기분이 스며들었다. 오전 내내 물가를 떠나지 않고 신혼처럼 즐겼다.


오후 한 시 즈음되었을까. 호텔 안내 방송이 급박하게 반복해서 나왔다. 태풍이 온단다. 안내 방송에 따라 관광객들은 전부 호텔 건물 안으로 대피했다. 아내와 함께 숙소로 올라왔다. 짐을 챙기는데 바람이 불어서 창문이 심하게 흔들리고 출입문에서부터 안쪽으로 빗물이 점점 차올랐다. 욕조 수건을 둘둘 말아 막았는데 금세 물이 넘쳐흘렀다. 공포 영화 그 자체였다. 침착하게 가방을 싸는 아내에게 애걸복걸했다. 가방 놔두고 어서 여길 피하자고. 아내는 끝까지 가방을 다 쌌다. 의연한 사람이다.


가방을 들고 복도로 나오자 무릎까지 물이 차올라 있었다. 우리 등 뒤에 한국말로 소리치는 여자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빠, 우리 죽는 거야?”


너무 무서웠다. 사람들이 달려가는 곳으로 실성한 사람처럼 아래로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도달한 곳은 지하창고였는데 다들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 커다란 철제문을 호텔 측 건장한 사람들이 몸으로 막고 서 있었다. 폭우와 태풍이 기괴한 소리를 내며 철제문을 강타할 때마다 여기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여승무원은 호텔 방에서 태풍으로 유리창이 깨지고 날아온 파편에 얼굴을 심하게 다쳤다. 동료들과 함께 지하로 피신 왔는데 울고불고 난리였다. 관광객들도 합세하여 죽을힘으로 철제문을 막아섰지만 태풍과 폭우의 기세는 꺾일 줄을 몰랐다.


.

작가의 이전글 이스탄불 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