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동네 사랑방

그들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by Go on

출근하여 청소를 싹 하고 자리에 앉은 주연.

누가 문을 빼꼼 열고 쳐다보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사장님은 안 계신가요?"

"네 아직 출근 전이신데, 금방 오실 거예요.

전 새로 온 실장인데, 어떤 일로 오셨나요?"


할머니의 손에는 검은 봉지가 있었고,

보물단지처럼 봉지를 껴안은 채 앉으셨다.


"뭐... 일이 있어야 오나. 그냥 오는 거지."


주연은 머쓱해져서 어색하게 웃었다.

"차 한 잔 드릴까요?"

"응. 난 커피 먹는데, 사장님은 알아요. 내가 어떤 커피 좋아하는지."


자신이 자주 들르는 손님이라는 거,

대표가 커피 종류를 알 정도로 VIP라는 걸

말하고 싶은 것 같았다.

그냥 어떤 커피를 달라면 될 것을, 말을 참 어렵게도 했다.


"믹스나 아메리카노 어떤 거로 드릴까요?"

"난 까만 거 좋아하는데."

"카누 아메리카노로 드릴까요?"

"그냥 아무 거나 줘요."


커피를 타서 드리니, 까만 봉지에 있는 귤을 꺼내며

주연에게 한 개 먹으라고 했다.

대표가 면접 때 강조했던,

'아무 일이 없어도 오는 손님들'이

이런 손님들을 말하는 듯했다.

커피를 마시던 손님은

갑자기 10여 년 전, 무병장수하다 돌아가신 시어머니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자기는 참 고생 많이 한 사람이라는 말을 한 순간

수다 마라톤의 스타트 총성이 울렸다.


3시간 동안 시댁 욕을 하는 할머니.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10년이 넘었는데도 가슴에 한이 맺힌다면서

울다가 웃다가를 반복하며 장장 3시간의 넋두리를 쏟아냈다.

주연은 귀에 피가 날 거 같았다.

눈을 마주치지 않으면, 듣고 있냐고 재차 묻기도 했다.

중간에 다른 손님이 오갔지만,

그 할머니는 전혀 개의치 않았고,

본인의 얘기를 들어줄 사람을 찾은 그날을 놓치지 않을 기세로 폭주했다.


처음 본 사람에게 어떻게 이리 시댁 욕을 할 수가 있을까.

욕을 하다가 지치면 당 떨어진다며

귤을 꺼내서 먹으며 쉬다가, 또 시작하곤 했다.


그때 울린 주연의 문자, 대표였다.

'별일 없지?'

주연은 얼른 '70대 할머니인데 누구인지 말도 안 하고 계속 시댁 욕 하고 있어요.

대표님이 잘 아시는 분이라는데, 가질 않아요.'

'ㅋㅋ 그분 한 번 시작하면 끝도 없을 텐데.

난 2시에 들어갈게.'

대표라도 와서 구해줘야 하는데, 피하고 있었다.


손님의 종류는 다양했다.

퀴즈를 너무 좋아해서

부동산을 들어오자마자 스무고개를 시작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제목은 '내가 누구게?'였다.

본인이 몇 동 몇 호의 주인이라고 얘기하면 될 것을,

새로 온 실장이 알아낼 때까지

창 밖을 바라보며 물어댔다.

그 사람이 누군지 주연이 어찌 알 수가 있을까.


"아 처음 오셨구나. 난 저번에 사장님이랑 점심도 같이 먹었었는데..."

뭐, 어쩌라는 말인가.


어떤 손님은 그냥 쳐다만 보거나,

무슨 일로 오셨냐고 해도 아무 말 없이 자신의 커피를 타서 마셨다.

주연은 그런 사람들한테까지 능글능글하게 비위를 맞출 수 있는

노련한 사람은 아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얼굴을 빨리 익혀라."

라고 대표가 말했었다.

노인들은, 본인들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에

쉽게 마음 상해한다고 했다.

그런데 왜 다들 그렇게 비슷하게 생긴 걸까.

숫자도 잘 못 외우고, 사람 얼굴도 잘 기억 못 하는

안면인식장애까지 있는 주연으로서는

업무 외에도 해야 할 일이 생겼다.


나중에야 안 사실.

그럴 때는 친한 부동산에게 서로 전화를 부탁한다는 것이다.

“아. 오셨어요? 네, 지금 나갈게요.”

이런 방법으로 서로 구해주고 있었다.

대충 이런 식으로 하면

웬만한 사람들은 수다를 떨다가도 사무실에서 나갔다.

남편, 시댁, 딸, 아들, 친구 욕을 하다가도,

손님 약속에 사무실을 잠가야 한다는데 어찌하겠는가.


그리고 며칠이 흘렀다.

주연이 출근하자마자, 매우 지쳐 보이는 할머니가 힘겹게 부동산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녀의 옆에는 여행용 캐리어가방이 있었다.


본인 몸 하나 가누기 힘들 정도로 마른 할머니는

겨우 말을 꺼냈다.

“내가 집을 알아봐야 하는데, 힘이 들어서 잠깐 쉬어야겠네."


자신의 캐리어는 부동산 한편에 두고, 의자 3개가 이어져있는 자리에 몸을 뉘었다.

주연은 그 할머니를 처음 봤기 때문에,

혹시 대표를 잘 아는 사이냐고 물어봤다.

대표랑 잘 아는 사이인데

주연이 몰라보면 또 뭐라 할 듯싶어서 물어본 질문이었다.

어떤 집을 원하느냐 했더니,

"오늘 당장 들어갈" 원룸 같은 곳이라고 했다.


보증금과 월세 예산을 물어보니

할머니는 일단 자기는 쉬어야겠다며 자리에 누워버렸고 이내 코를 골며 자기 시작했다.


너무나 어이없는 상황에

주연은 할 말을 잃었지만,

어쨌든 할머니가 일어나면 집을 보러 갈 거라는 생각에 아무 말하지 않았다.


부동산을 울려대는 할머니의 코골이가 더더욱 커질 때쯤,

대표가 들어왔다.

"어맛, 깜짝이야. 누구야?"

대표도 모르는 할머니였다.

상황을 설명하니, 대표가 짧은 한숨을 쉬었다.

"이건 영업방해다. 어휴..."


남의 사무실에서 대자로 누워 자는, 지나가는 할머니라니.

꿀잠을 자고 있던 할머니가 본인의 전화벨 소리에 깼다.

"어. 왜"

"어머니. 어디예요?"

"몰라. 확 죽어버릴 거야."


할머니는, 아들 가족과 살던 중 큰 다툼이 있었고

홧김에 짐을 싸서 방을 구할 마음에 부동산으로 나왔던 것이었다.

아들은, 제발 들어와서 말하자며 잘못했다고 했다.


할머니는 손으로 머리를 쓸어 올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휴... 잠이 쏟아져서 혼났네. 어젯밤에 한숨도 못 잤네."

종이컵을 뽑아 물 두 컵을 벌컥벌컥 마시더니,

"아들이 빨리 오라네. 나 여기 주민이야. 또 올게요."

하고 나갔다.


"늙어서 집이 있어야 해. 혼자 살 집." 대표가 말했다.

"자식들이랑 살다가 저렇게 마음 상해서 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다 사정이 있겠지만, 참 저런 거 보면 씁쓸해."

"그런데 저렇게 하면 자기 얼굴에 침 뱉기일 텐데, 전 이해가 안 가네요."

대표는 여유롭게 웃으며 말했다.

"남한테 창피한 것보다 이것저것 생각할 여유도 없이 힘든 거야. 나이 들어 집도 있고, 돈도 있어야 한다는 걸

부동산 하면서 절절이 느낀다니까."


남의 얘기와 사정을 들어주는 일까지 잘해야 했다.

이 부동산은 집을 구하는 사람뿐 아니라, 마음 둘 곳 없는 이들의 사랑방이었다.

이곳의 문은 늘 열려 있었다.

상상 너머의 사람들이 매일같이 찾아들었다.



이미지 제작 : Chat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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