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손님에게 내 모습이 보였다

다시 마주친 나의 지난날

by Go on

주연의 부동산에 월세 조건이 좋은 물건이 나왔다.

집 상태는 기본에 가까웠으나 (여기서 '기본'이라 함은, 분양상태 그대로의 집을 말한다), 깨끗하게 관리가 된 집이었다. 무엇보다도 보증금과 월세가 좋은 조건이라서, 물건이 나오자마자 문의전화가 왔다.


이런 경우는 먼저 보는 사람이 임자였다.

광고를 올리자마자 퇴근길에 본다는 손님이 연락을 해왔고, 바로 예약을 잡았다.


약속한 손님이 들어왔는데, 부부였다.

예상대로 집을 보자마자 계약을 원한다고 했고,

대표는 임대인에게 계약 의사를 전하기 전, 몇 가지 사항을 물어봤다.


"몇 분이 거주하실 건가요?"


주인이 궁금해야 할 사항을 부동산이 미리 물어보는 건 필수였다.

몇 사람이 거주할 건지. 나이대는 어떻게 되는지.

'반려동물 절대 금지', '신혼만 원함'은 흔한 경우고,

놀랍게도 '노인 불가'도 있었다.


손님은, "저, 아내, 아이 2명, 장모님 이렇게 다섯 명입니다."


남편 옆에 있는 부인의 표정은 매우 침울했다.

구축아파트 27평, 방 세 개에 급하게 월세로 들어오려는 사정이 있는 듯했다.

주연의 머릿속에 문득 남동생의 사기사건으로 급하게 집을 구했을 때가 떠올랐다.

지금 저 부인의 표정이 그때 자신의 모습과 너무 닮아 있었다.

하루 종일 한 끼도 먹지 못한 듯 바싹 마른 입술.

어디를 향하는지 모르는 흐릿한 눈동자.

그 옆에서 남편이 조용히 아내의 손을 잡고 있었다.


임대인은 계약을 하겠다고 했고, 바로 부동산으로 오겠다고 했다.
기다리는 동안 주연은 계약서 작성 준비를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주민등록증을 복사하고, 등기사항증명서, 건축물대장 등 필요한 서류를 챙겼다.
손님은 주민등록증을 맡겨두고 잠시 다녀오겠다며 나갔다.


잠시 뒤, 임대인인 할머니가 아들과 함께 들어왔고,

뭔가 할 말이 있던 할머니를 대신해

아들이 어이없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머니 집을 너무 싸게 내놨잖아요.

어머니가 비싸게 내놓고 싶다고 했는데 부동산에서 싸게 내놓으라고 했다면서요?"


대표가 황당해하며 대답했다.

"어머니께 현 시세 다 알려드렸고요. 그래도 어머니가 빨리 빼야 하니까 싸게 내놓으라고 하셨어요."

할머니는 입을 꾹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표가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었던 이유는 통화 내용이 모두 녹음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이건 너무 싸니까, 월세를 10만 원 더 올려야겠어요."

아들은 무시하고 얘기했다.

대표가 어이없다는 듯 대답했다.

"아까 계약한다고 전화드렸을 때 말씀하시지, 계약하시는 분이 여태 기다렸는데 좀 당황스럽네요."

보증금과 월세가 싸게 나온 건 맞지만,

그 집은 수리가 안된 상태였기 때문에, 특별히 싸게 나온 것도 아니었다.


그때, 손님이 들어왔고

대표는 죄송스럽다며 임대인의 뜻을 전했다.

손님은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

"10만 원은 좀 힘들 것 같고... 혹시 5만 원만 올리시면 안 될까요?"

할머니는 여전히 말이 없었고, 아들이 단호하게 답했다.
"안 됩니다."

그러더니 시작한 무례함.

"다섯 명 들어오신다면서요. 바글바글 할 텐데. 그것도 봐드리는 거거든요. 한 달에 10만 원 올려야 시세에 맞죠."

일단, 10만 원을 더 올리면 그 단지에서는 최고가였다.
특올수리된 집들의 시세였다.


주연은 마음이 너무 무거웠다.

이미 그 부부의 일이 주연에게는 남 일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주연은 기억 속에 잊으려 했던 사건이 떠올랐다.

공인중개사 시험을 준비하며 살았던 그 전셋집.

미분양이었던 아파트는 1년 후 완판이 되었고,

매매 바람이 불었던 지라

집주인은 매매로 자신의 집을 내놨다.

"집 좀 잘 보여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주인은 공손하게 부탁했고, 주연은 그 요청에 따라 최선을 다했다.

부동산이 손님과 올 때마다
집 안 곳곳에 빼곡하게 붙여놓은 포스트잇들을

뗐다가 다시 붙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드디어 매매계약이 성사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부동산은 전세금의 10프로인 계약금을 다음 날 받으러 오라고 했다.

현금이라 직접 오라는 말과 함께.

다음 날 저녁 7시, 주연은 부동산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집주인 부부, 매수자 부부, 양쪽 부동산의 대표들이 앉아 있었다.
그런데 집주인은 약속된 금액에서 천만 원을 덜 주겠다고 말했다.

주연은 당황했다.
전날 부동산 대표에게 들었던 이야기와는 다르다고 주연이 말하니,

집주인은 주연을 쳐다보며 말했다.

"아주머니, 거 돈 천만 원이 없어요?"

주연은 홀로 그곳에 서 있었다.

모두가 자신을 바라보는 그 정적 속에서,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잠시 머뭇거렸지만, 주연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는 사장님은 돈 천만 원이 없으세요?"

부동산 대표는 당황한 듯 침묵했고, 정적이 흘렀다.
잠시 후, 대표가 중재에 나섰다.
"아, 제가 어제 다 받으실 수 있다고 했거든요. 사장님, 웬만하면 그냥 다 드리세요.

집 보여주시느라 힘드셨을 텐데..."

그렇게 주연은 천만 원까지 모두 받고 나왔다.

부동산 문을 나서자마자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을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는 남편이 보이자,
주연의 눈에서 눈물이 터져 나왔다.

"왜? 무슨 일 있어?"
남편의 물음에 주연은 그간의 일을 털어놨고, 당장 들어가서 따지겠다는 남편을 말렸다.
주연은 아직도 그때의 그 거리, 그 공기를 기억했다.


예전의 주연이 그랬듯,

이 손님이 홀로 민망한 순간을 겪지 않았으면 했다.

결국 계약은 틀어졌고,

주민증을 다시 받아 든 손님은 별 말없이 나갔다.

그 손님을 쫓아간 주연은

"정말 죄송합니다. 부동산에 오셔서 금액을 올릴 거라 생각 못했습니다.

저희가 더 좋은 조건이 나오는 대로 꼭 제일 먼저 연락드릴게요."


손님은,

"그래주시면 너무 감사하죠. 근데 어이가 없긴 없네요." 하며 살짝 웃었다.


그다음 날부터 주연은

월세 만기가 다가오는 집의 주인들, 임차인들에게 미친 듯이 전화를 돌렸다.

혹시 물건을 내놓을 건지, 임차인들에게는 나갈 계획이 있는지 다시 묻고 확인했다.

그렇게 두려워하던 20통의 전화숙제를 이번엔 스스로 해내고 있었다.


문제의 주인인 할머니에게 계속 전화를 해 설득했다.

이러다 공실 될 수도 있다고, 지금 올수리 된 월세 물건 많은데 가격경쟁력마저 없으면 안 된다고 했다.


며칠 후, 월세를 10만 원이나 올려서 맞추라던 할머니와 아들은

늘어나는 저렴한 월세 물건들 때문에
공실의 공포에 시달렸는지 다시 연락이 왔고,

결국 그 손님과 5만 원을 올리는 조건으로 계약을 하게 되었다.


계약서를 마무리하고 손님이 떠난 후, 뭔지 모를 뿌듯함이 생겼다.

과거 홀로 서서 천만 원을 얘기했던 차가운 부동산.

그 서러웠던 감정이 너무도 생생했다.

이제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는 위치에 와 있었다.

처음으로, 중개사가 되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이미지 제작 : Chat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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