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첫 번째
퇴근하고 집 가서 재밌는 걸 보고 싶은데,
볼만한 게 뭐 있나 하며 찾아보다가 눈에 들어온 영화 하나. <연애 빠진 로맨스>!
씻고, 옷을 갈아입고 앉은 소파. 넷플릭스를 연결해서 볼 준비를 끝냈다.
두 주연 배우의 연기가 정말 현실적이라 몰입하기 좋았다.
소개팅 어플이라···.
사실 나는 소개팅 자체에도 회의적인 사람이라 살면서 소개를 받아본 적도 없는데.
'자만추'를 고집했던 건 아니었지만 돌아보니 그랬다.
그렇게 살다 보니 2년 반쯤 되었구나
나는 벌써 스물일곱 살이구나
문득, 못 할게 뭐 있담! 하는 생각에 어차피 흐르는 시간이니 의미 있게 보내고 싶었다.
겁은 조금 났다. 물론 영화 속 손석구 같은 남자를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전혀 없었다.
어플이 정말 많았다. 어플마다 추구하는 방향성이 조금씩 다르구나.
내세울 게 그다지 없고, 얼굴이 예쁜 편이라도 특출나진 않고, 나이도 엄청 어리지 않으니까.
걱정이 많아졌다. 말로 형용하기 힘든, 연애 이력서를 쓰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제대로 소개팅을 한다는 생각보다는 가까운 친구를 먼저 만들자고 마음먹게 됐다.
<새로운 동네 친구 만들기>
내가 안산에 온 지 3년이 넘어가고 있는 시점에서
내가 주기적으로 만나던 '친한' 사람은 동갑내기 여자친구 한 명이었다.
그마저도 그 친구가 연애를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많이 뜸해졌기 때문에
근무지를 벗어나면 형식적인 연락만 주고받는 직장 동료들뿐,
이렇다 할 친한 사람이 없는 내 눈에 띄는 광고 문구였다.
어플에서 내 닉네임은 모모! 복숭아를 일본어로 모모라고 한다. 나는 복숭아를 좋아한다.
프로필을 신중히 채워 나갔다. 퇴근하고, 영화를 하나 보고,
프로필을 채우다 보니 새벽이 됐다. 완성된 내 프로필은 조촐했다.
예쁘게 나온 사진 서너 장을 고르는 게 가장 어려웠다.
어느새 잠들었던 나는, 눈이 떠지자마자 휴대전화 알림을 확인했다.
우와···. 괜찮은 여자가 많이 없나? 싶을 정도로 친구 요청이나 관심 표현이 와있었다.
친구 요청을 수락하고 나서야 대화가 시작되는 구조였는데, 실시간으로도 쌓이는 요청에
덜컥 겁부터 먹었던 것 같다.
요청을 보낸 사람들을 쭉 둘러봤다.
대충대충 가벼운 마음으로 쓴 듯한 사람은 거절했다.
문득, 그런 내 모습이 모순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볍게 친구로 만나는 목적의 어플에서 너무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면서 재고 있는 건 아닐까?
청소기를 돌리면서, 이부자리와 함께 생각도 조금씩 정리를 해 봤다.
난 연애를 하고 싶은 사람인가?
영화를 보고 느낀 감정에 휩쓸려서 어플을 깔았나?
대화를 시작한다고 해도, 만날 용기가 있나?
여러 가지 질문을 던져보면서 대답을 찾다 보니 나름의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시작은 가볍게, 부담 없이 동네 친구를 만들어 보고 싶다.
동네 친구에서 좋은 관계로 발전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
거절하고 넘기길 반복하다 보니 두세 명쯤 남았다고 기억한다.
그중에 오빠가 있었다. 키도 크고, 잘생긴 것 같은데 왜 이런 어플을 할까?
닉네임은 유월엔! 6월을 좋아하나? 생일이 6월일까?
이런저런 궁금한 것들이 생겨서 친구 요청을 수락하고 인사를 건넸다.
그게 나의 첫 대화였다.
유쾌한 사람이었다.
대화가 원활하게 오고 갈수록 의문은 더욱 깊어졌다.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오빠가 프로필에 올린 사진들을 봐도,
정직한 증명사진, 마스크 쓴 셀카, 뒷모습이 전부여서
흔히 말하는 셀카 사기꾼도 아닌 것 같고.
도대체 왜 이런 어플에서 여자를 찾는지 이유가 정말 궁금해서 더 만나보고 싶었다.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건 큰 의미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오빠와의 대화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연애 빠진 로맨스>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해 준 고마운 영화.
*규범 표기는 '애플' 또는 '앱' (application)입니다.
자연스러운 가독상 표기로 비표준 외래어 표기인 '어플'을 채택, 사용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