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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제 Oct 25. 2024

고백

제1장, 세 번째

말이 오기까지 잡다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주말에 어디로 갈지, 술은 얼마나 마실 줄 아는지,


만나서 딱 술만 마시기에는 아쉬운 시간이 많으니 술집에 가기 전에 뭔가 해볼까?




술집을 찾고, 데이트 때 할법한 것들을 찾아보면서 다시 한번 느꼈다.


나 정말 집 밖을 안 돌아다녔구나. 


집 근처 식당이나 편의시설을 제외하면 다 낯설기만 했다.


전부 처음 보는 곳들 투성이라서 고르는 게 쉽지 않았다.




그래. 차라리 아예 처음 가보는 곳들을 가자, 하고 마음먹었다.


데이트라고 생각하니 어찌나 긴장이 되던지.











술을 못 하는 내가 긴장을 풀기 위해서 고른 건 바로 사격장.


중앙동 특유의 혈기 넘치는 어린 성인들의 과시용 펀치 기계, 


시끄러운 음악이 나오는 게임방 앞 길목.




항상 고개를 푹 숙이고 인상을 쓰며 귀를 막고 지나쳐 다녔던 곳이지만


그들처럼 나도 그날만큼은, 내 사격 솜씨를 과시해 보겠다고 다짐한다. 멋지게 이겨 보여야지.


먹은 마음이 무색하게 졌다. 영점이 안 맞는다며 다른 곳도 가봤지만 또 졌다.


사격에서 져본 적 없는 나는 꽤나 속상했다.




아탈란테와 황금사과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리스 로마 신화 속, 황금사과에 시선을 빼앗겨 달리기 시합에 진 여걸 이야기.




오빠는 황금사과 같은 수는 쓰지 않았다.


그래서 더 멋있어 보였다. 사격 점수 경품은 몬스터 볼 키링으로 골랐다.


포켓몬 트레이너처럼 몬스터 볼을 던져서 외치고 싶었다. 넌 내 거야!











두 사격장을 지나 도착한 곳은 중앙동의 한 이자카야.


술을 잘 못하는 나를 위해 하이볼 파는 곳으로 찾아봐 준 오빠. 




지금도 우리의 술 데이트는 하이볼을 파는 가게를 찾는 게 우선이 됐다. 


번거로울 만도 할 텐데 오빠는 기꺼이 수고스럽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그래주어서 늘 애정을 느낀다.




룸 형식의 이자카야가 처음이었는데, 방해받지 않고 오롯한 둘만의 시간 같아서 더 좋았다.


친절한 직원분이 사시미와 소주, 하이볼 등을 세팅해 주셨다.




우리의 첫 술자리.


나는 오빠에게 걱정스럽게 얘기했다.


술을 못 하는 이유 중 하나가 홍당무 같은 얼굴색이라 창피하다고.


빨개진 얼굴도 예쁘니까 걱정하지 말라며 안심시켜 주는 오빠를 만났으니 


나는 얼마나 행운인 거야?











첫 만남보다는 사뭇 진지한 대화가 오고 갔다.


연애와 결혼에 대한 서로의 관념, 추구하는 방향성이 어떻게 다르고 비슷한지 얘기를 나눴다.




"선남선녀네, 두 사람 그림체가 비슷하다."


나는 어느 한쪽이 아깝지 않은, 두 사람 모두가 예쁘고 멋진 커플이라고 인정받고 싶었어!




그러잖아도 크고 예쁜 눈을 더 크게 뜨면서 오빠가 놀란 모습으로 말했다.




-맞아, 그거야! 선남선녀! 나도 정말 오래전부터 그 말을 생각해 왔어···.




여러 차례 곱씹으면서 골똘히 생각하는 오빠를 말없이 웃으면서 쳐다봤다.


선남선녀라는 단어가 오빠한테 인상 깊었던 걸까? 


단어 하나에 저렇게 놀라는 모습이 귀여워 보였다.











한참이나 생각에 잠겨있던 오빠는


별안간 휙 하고 고개를 들더니 입을 열었다.




-우리 사귀는 거 어때?




오빠가 뒤에 덧붙인 말이 있었다. 


가볍게 생각하고 꺼낸 말이 아니라는 내용으로 기억하지만, 문장은 선명하지 않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하지만 언젠간 듣고 싶었던 그 말이 오빠 입에서 나왔으니까.


두 번째 만남에서 듣게 될 거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정말···.











나에게 내민 손을 잡고 끄덕이면서 좋아, 그러자, 응! 하고 웃었다.


처음 잡은 오빠의 손은 따뜻했다. 


소중한 오빠의 마음이 입에서 손으로, 손에서 마음으로 전해졌다.


내가 그날 오빠에게 받은 건 고백뿐만이 아니었다. 




진심을 꼭꼭 눌러 담은 오빠의 고백에 벅찬 감정을 숨기기 어려웠다.


오빠의 마음처럼 나의 벅참도 손끝으로 잘 전달되었길 바랄 뿐이었다.




2023년 10월 16일, 오빠의 고백으로 우리는 연인이 됐다.


두 번째 고백은 내가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연인이 된 우리의 첫 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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