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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제 Oct 18. 2024

첫 만남은 너무 어려워

제1장, 두 번째

를 아는 주변 사람들은 절대 당일 약속을 잡지 않는다.


늦더라도 일주일 먼저 약속을 잡으려고 한다.


내가 엄청난 집순이에, 술은 즐기지도 않고, 정해진 일정 이외에는 변수를 좋아하지 않으니까.




-집순이를 밖으로 꺼내야겠어!




오빠의 말에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 들었다. 묘하고 이상하고 웃겼다.


안산에 온 지 몇 년째가 됐지만, 오이도를 가본 적 없다는 게


오빠한테도 이상하고 웃기지 않았을까?


그렇게 이름도, 목소리도, 전화번호도 모르는 우리는 만나기로 했다.




나는 오이도를 갈 생각으로 버스 시간표를 확인했다.


저녁의 바닷가가 추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겉옷을 단단히 챙겨 입고 집을 나왔지만


오빠는 차를 운전해서 나를 데리러 집 근처로 와줬다. 지금까지도 그렇게 수고롭다.


그게 늘 고맙다.













8년 가까이 사회생활 한 나보다도 한 살 더 많지만,


대학도 졸업하고 군대까지 다녀온 오빠가 차를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다.




차를 바꾸고 싶어 했고, 지금도 여전히 바꾸고 싶어 하는 오빠를 늘 말린다.


그날 나를 데리러 와준 오빠의 회색 아반떼만큼 멋진 차는 본 적이 없었다.




조수석 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앉았다.


차에서는 긴장한 탓에 어색한 대화만 주고받았다.


왼쪽을 잘 쳐다보지도 못했다. 그냥 눈에 띄었던 건 하얗고 예쁜 손. 긴 속눈썹 정도?




오빠는 같이 갈 카페도 찾아와 주었다. 바닷가 쪽으로 통창이 있는 2층짜리 카페였다.


벌써 너무 많은 걸 받은 기분이 들었다.


조금은 고집을 피워서 내가 커피를 샀다.


애매한 저녁시간 때에 만나서 밥은 먹지 않을지도 몰랐다.


그날이 아니어도 좋았다. 밥은 오빠가 사주세요! 하며 선수 치듯 커피를 샀다.













마주 보며 앉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너무너무 떨렸다.


너무 떨어서 바보 같을까 봐 걱정했다.


이제 진짜 제대로 소개팅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오빠가 식당이 아닌 카페를 찾아와 줘서 다행이었다.


식당이었다면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눈으로 들어가는지 몰랐을지도 몰라.




나는 머리를 질끈 묶고, 트레이닝 바지에, 운동화 차림이었다.


대화를 하면서도 내 옷차림과 머리를 생각하니


조금이라도 꾸몄어야 하나, 하는 후회도 들었다.




그래, 이건 소개팅보다는 편한 자리라고 생각하자.


이런 모습까지도 괜찮게 봐준다면 두 번째도, 세 번째도 있을 거야.




이렇게 마음먹고 나니까 한결 더 편하게 대화할 수 있었다.















내가 백화점 일을 오래 했었고, 그 탓에 지역을 많이 옮겨 다녔었다는 이야기.


일-집-일-집, 반복되는 생활을 하느라 집 주변 외에는 안산을 잘 모른다는 이야기.


영화를 보고 어플을 하게 됐다는 이야기까지.




날 어떻게 생각할까 걱정은 하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봐주길 바랐다.




오빠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다.


안산에 오래 살았고, 부모님과 형님까지 함께 사는 네 식구.


고양이를 좋아하고, 술도 즐겨하는 편이고, 취미는 게임, 운동도 한다는 오빠.


오빠의 생활 패턴 자체가 재택근무-헬스장-게임이다 보니 여자를 만날만한 곳도 없었고


어플, 오픈채팅 등 활동을 하면서 만나봐도 별로였다는 이야기를 해줬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오빠를 찬찬히 살폈다.




눈매는 조금 날카로운 인상이었고, 새까만 머리카락이 하얀 피부를 더 돋보이게 해 줬다.


잘생기기만 하거나, 키만 크거나, 운동만 하는 남자들이 많을 텐데,


다 갖춘 남자를 만날 줄이야.


이런 사람이 내 프로필 하나 보고 나를 만나러 운전해서 이런 곳을 데려와 주다니!







기분 좋게 웃고 떠들면서 서로를 알아갔다.


해가 다 져서 많이 어두워졌다는 걸 뒤늦게 눈치챘다.


저녁을 먹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아쉽긴 해도 다음을 약속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이게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봐 먼저 선뜻 운을 떼지 못한 채로 카페를 나왔다.




집으로 가는 차에서는 아까 나눈 대화의 끝맺음을 하며 마무리되는 분위기였다.




다음을 기약하는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고민했다.


오빠가 먼저 얘기하지 않으면 차에서 내리기 전에 먼저 말을 할까?


그것도 아니면, 어플 채팅으로 연락을 남길까?


어떻게 하는 게 더 나을까 고민하는 동안 벌써 우리는 시청 쪽에 가까워져 갔다.


우리 집에서 오이도가 그렇게 멀지 않았나?


아쉬움을 뒤로한 채 집에 돌아가서 연락하리라 마음먹었다.




오늘 너무 고마웠고 재밌었어, 조심해서 들어가! 라는 말을 하면서 조수석 문을 열었다.


그때, 오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휴대폰 번호 알려줄래?




오빠가 내민 휴대전화를 잡으면서 손이 조금 떨렸다.


나는 오빠의 번호를 받고 오빠는 내 번호를 받았다.




오빠는 나를 뭐라고 저장했을까? 나는 '박경민 오빠'라고 저장하고 나서 생각해 봤다.


이름을 성까지 붙여 부르는 호칭을 썩 친근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다음에 만나고 나면 '경민 오빠'라고 바꿔야지. 조금 더 친해져야지. 마음먹었다.




집에 돌아와서 오빠한테 먼저 카톡을 보냈다.


오빠랑 더 이상 소개팅 어플로 대화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이 생각이 들자마자 소개팅 어플에서 망설임 없이 탈퇴를 했다.




주말에 보자는 약속을 잡았다. 주말이 더디게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동안 오빠를 놓쳤던 모든 여자들에게 고마운 마음으로 잠에 들었다.














그날, 오이도의 어느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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