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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탓인가(1)

불씨

by 이립

친구 중에 '박수 소리도 양 손바닥이 만나야 난다'는 말을 자주 하는 친구가 있다. 스스로가 어릴 적부터 환경 탓, 남 탓, 운 탓만 하는 사람들을 싫어했기 때문에 그 친구의 그 말을 참 좋아했다. 그렇기에 일이 잘못되거나 결과가 의도치 않으면 원인을 나에게서 먼저 찾는 게 맞다고 믿고 살아가고 있었다.


입사를 하고 4주 차가 되는 날 무언가 불안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이 계속되면서 가 이전 담당자이었다면 이때는 무엇을 해야 됐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공용 폴더를 여기저기 헤짚어 보면서 이전 담당자가 만들어 놓은 25년 연간 일정 캘린더 파일을 발견했다. 이 캘린더 파일 기준으로는 지금 생산직군 시험 준비를 위한 신청자들을 접수받고 그들의 선택과목이 무엇인 지 취합하는 게 필요했다.


큰일이다 싶었다. 많은 회사원들이 공감하겠지만 경력직의 비애 중 하나는 어떤 일이 잘 못 되었을 때, 본인의 역할을 잘 수행했는 가 여부를 넘어서 결과만으로 평가받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인수인계도 없고 그 일의 사이클도 모르고 관련 팀 동료들도 모르지만, 내가 그 전임자가 작년에 하던 일들 중에

빵구가 하나라도 나면 책임을 지는 게 경력직이다.


부랴부랴 팀장님에게 말씀을 드렸다. 혹시, 지금쯤이면 공지사항을 올려서 승진시험에 대한 내용을 올려야 하는 게 아니냐라고 말씀을 드렸다. 그때 우리 팀장님이 나를 보며 말씀을 하셨다. '아, 맞다.'


나는 당황했다. 어느 폴더에 무슨 내용이 들어있는지도 모르는데, 전임자한테 인수인계받은 것도 없는데, 아직 제반사항도 모르는데 '아, 맞다.'라니. '내가 말을 하지 않았다면 승급 시험은 게시도 안 할 생각이었나?'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다시 생각이 들었다. 직책자는 눈 코 틀새 없이 바쁠 수밖에 없다. 환경이란 건 100% 완성된 상황은 없다. 축구에서 스트라이커에게 골을 넣을 수 있는 패스가 완벽한 조건에서 올 수 없듯이, 인수인계는 없었지만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도 써서 내가 팀장님을 모시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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