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회의 내용으로 나는 생산직 승급 시험을 위해 필요한 준비가 무엇인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물어가며 찾아가며 자료들이 어느 정도 수합 되었을 때, 그런 고민이 들었다. '전년도 했던 방식 그대로 할까 아니면 내 의견을 첨가해서 개선안으로 말씀드릴까?'
긴 고민의 끝에 이제 막 입사 1개월 차에 들어가는 내 상황을 고려했을 때 이전 연도에는 무엇인 문제였고 올해는 어떻게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이 되었다. 따라서, 이전 연도 시행 안의 틀과 구성을 차용하여 올해 변화된 숫자를 채워 놓았다.
다만, 특이사항으로 여겨질 만한 내용들에 대해서는 주석을 달거나 틀을 유지하는 형태에서 내용을 추가하였다.
팀장님께 보고를 드렸다. 팀장님께서는 별 다른 피드백이 없으셨고 쭉 보시더니 본부장님께 보고를 드리자고 하셨다. 그렇게 본부장님께 보고 드리게 되었는데 본부장님께서는 승급 시험을 보게 되는 생산직의 직급 구조 현황이 어떻게 되는 지를 알고 싶어 하셨다. 그렇게 부문별 생산직군들의 직급 구조 현황을 보고서로 만들어서 팀장님께 먼저 보고를 드렸고 팀장님께서는 다시 바로 본부장님께 보고를 드리자고 하셨다.
본부장님께서 갑자기 불같이 화를 내셨다. 분석된 방법과 내용에 대한 질타였다. 나는 이해했다. 직장 생활하면서 누구나 겪는 일이고 결과에 책임을 지는 임원이라면 당연히 질책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지금의 상황을 다시 반복하지 않는 것이었고 그렇기 위해서는 본부장님께서 하신 메시지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해서 제대로 된 보고를 해야 하는 게 필요했다.
팀장님께서는 이렇게 저렇게 한번 해보자 하셨고 그 말씀에 따라 자료를 만들어 보았다. 이번에도 팀장님께 보고 드렸을 때 별다른 피드백은 없었고 바로 본부장님 보고를 들어가게 되었다. 이번에도 큰 질책을 받았고 나는 삼진 아웃을 당한 타자가 되어 퇴장하게 되었다.
의사결정을 받아야 할 생산직 승급 시험은 최초 제안대로 진행하라는 결정을 받았고 직급 구조 현황은 다시 재보고를 할꺼면 하고 말꺼면 다음에 다시 하는 뜨뜨 미지근한 분위기로 마무리 됐었다. 그래도 계속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는 자의적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 생각했기에 나는 팀장님께 한번 어떠한 점이 모자라고 보완이 필요한 지 여쭤봤다. 팀장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다. '그걸 지금 나한테 물어보는 거야?'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똑같은 워딩이라도 듣는 사람의 해석은 다양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의사결정자와 오랜 기간을 함께한 자의 팁이나 조언은 중요하고 귀하다. 내가 이전에 아무리 역량이 뛰어났던 경력사원이었더라도 새로운 곳에서의 스타일에 맞추지 못해서 '예전 회사에서는 안 그랬는데'라는 멘트가 단골로 나오는 것도 그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는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했었다. 그리고 기존의 사람들과 경험들을 존중해주는 내 태도는 융화적인 측면에서도 좋은 효과를 보아왔었다. 어쨌든 회사란 함께 일할 수 밖에 없는 사회체이기에 유아독존의 태도로는 한계를 맞이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팀장님의 코칭이 절실했다. 나보다 더 많은 지식과 깊은 경험을 가지고 계시고 같이 성과를 만들어야 하는 조직의 장이시기 때문에. 하지만, 팀장님은 정색과 함께 그걸 왜 나에게 묻냐라는 답변을 주셨고 그 자리에서 나는 얼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