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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경논총 Feb 08. 2024

[오아시스] 뭉크 안아주기

르누아르

얼마 전 수능을 앞두고, 수개월 동안 과외를 진행한 학생과 마지막 수업을 마쳤습니다. 과외를 끝마치며 정말 수고했다고, 충분히 실력을 쌓았으니 긴장하지 말고 편하게 실력 발휘를 하라는 나름의 진심이지만 조금은 뻔한 마지막 말들을 전해주었습니다. 4년 전 11월, 저 역시도 수능을 앞두고 가슴 졸이던 한 명의 고등학생이었습니다. 숱한 자기 의심과 불안, 그리고 억지스러운 긍정을 품은 채로 수험장에 들어가던 모습이 마치 어제의 일이 었던 것처럼 생생합니다. 지금이야 그때의 그 마음이 우습고 시시하게 느껴지지만, 지금의 몸과 마음을 가지고 과거의 그때로 돌아간다면 과연 담담할 수 있을까요. 아무래도 그러지 못할 것만 같습니다. 시간이 지나 그 흔적을 뒤돌아보면, 제가 낸 발자국이 흐릿해져 별것 없어 보입니다. 그렇지만 막상 그 발자국 위에 서 있으라면 답답함과 두려움이 엄습하고 말 것입니다. 비록 수많은 사람들이 19살의 나이에 만들어 냈던 흔적이고 그들 모두가 그 흔적 위에서는 두려웠겠지만, 이 사실이 큰 힘이 되지는 못하겠지요.

수능을 앞둔 아이를 보며 과거의 제 모습에 대한 반추 넘어 지금의 제 모습이 비로소 3인칭의 시점에서 보입니다. 애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어른이라 할 수도 없는 저의 모습 말입니다. 저의 학년은 어느덧 대학생이라는 신분이 안도감과 소속감을 주는 시기를 지나 사회에 내던져질 것을 두려워하며 진짜 어른들의 세계로 쫓기듯 나아갈 준비를 시작하는 숫자가 되었습니다. 물론이게도, 너무나 불안합니다. 그러던 저에게 수능을 앞둔 그 아이의 모습을 통해 비로소 제 지난 흔적을 돌아볼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 발자국 위에서 제가 얼마나 두려웠는지 느낍니다. 그리고 발을 떼서 몸을 조금씩 움직이자 그 발자국 역시 나의 지난 발자국들 중 하나이고, 언젠가는 아련함을 주는 시점이 온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발자국을 내는 그 당시는 어떤 조언과 위로도, 또 다수의 사람들이 지금 이 위치에서 나와 같은 감정을 느꼈다는 사실도 잘 와닿지 않았습니다. 다만 내딛을 수밖에 없을 뿐이죠. 그러나 그 흔적들은 시간이 지나고 약간의 침식작용을 거치면, 어느덧 물끄러미 이들을 새워

보며 그때를 아련히 되돌아볼 수 있는 상태가 된다는 사실을 그 아이를 바라보며 뒤늦게 깨닫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아마 평생동안 마주치게 될 고민들과 번뇌들의 모습들을 흐릿하게나마 마주하며 저는 과거의 제 흔적들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취업을 해도, 결혼을 해도, 노인이 되어도, 나를 따라다닐 각 순간의 고민과 번뇌들도 결국 생의 마지막이 되어서야 아련한 흔적들로 온전히 느껴지겠죠. 이 사실을 안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앞으로 마주할 순간들의 고통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흐뭇한 미소를 지어봐야겠습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알싸한 그 감정을 느끼려면 발자국 위에서는 고민 좀 해야되니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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