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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경논총 Feb 08. 2024

[오아시스] 어떤 것이든 괜찮아, 남기기만 한다면

처사

“네 인생 목표는 뭐니?”

누군가 묻는다면 무어라 답할까. 나는 망설임 없이 “무언가 흔적을 남기고 가고 싶어.” 라고 답할 거다. 그 흔적이 누군가에게 폐를 끼치는 것만 아니라면 나는 정말 내가 살 마지막 날까지 꿋꿋이 내 흔적을 남기고 싶다. 작문, 작곡, 음악 연주와 녹음 모두 흔적을 남기는 행동이다. 스포츠에서도 기록형 경기는 내 최고의 기록을 남기는 것, 동작형 경기는 가장 아름답고 어려운 동작을 남기는 것, 그리고 투기형 경기는 내 앞의 상대방을 이겼다는 흔적을 남기는 일이다.

우리가 살아가며 하는 모든 행동은 결국 흔적이다. 그것이 어떤 양태이든 가능하다. 유명한 작가는 문학을 남기고, 영화 감독은 연출한 영화를, 운동선수는 기록과 경기영상을 남긴다. 하지만 가령 아침에 혼자 집 주변을 조깅했다고 해도 러닝앱을 켜고 내가 뛴 코스를 기록했다면, 혹은 그날 밤 어딘가에 내가 뛴 루트, 시간 그리고 감상을 글로 남겼다면 그것도 마찬가지로 흔적을 남긴 것이다. 그날 아침이 유독 추워 한두 달 지나 1년 후 그리고 몇 년 후에도 ‘그 날 아침은 너무 추워 이마가 시려 머리가 지끈 아플 정도였다’며 자기 머릿속에서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다면 설령 실체적인 형태의 기록이 없다고 해도 내 삶의 한 부분에 흔적을 남겼다고 할 수 있다.

종종 느껴지는 가벼운 우울감은 흔적을 남기고 싶은 욕구가 잠시간 사라졌음을 뜻하는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매사 그 상태를 경계하고 싶다. 과거에는 몸을 최소한으로 움직이는 것이 지상 목표인 사람마냥 생활했다. 하지만 오래지 않은 때부터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나는 거의 매일 흔적을 남기고 싶은 욕구로 가득 차 있다.

신기하다. 호르몬이 어떻게 작용하고, 인간은 몇 만 년 전부터 사냥을 위해 움직이기에 최적화된 몸이고, 그런 자잘한 정보들을 떠나 내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고 있다고 느낀다. 한층 쾌활해졌다는 소리도 주변으로부터 듣는다. 주 3일 혹은 4일 운동 후에 쉬는 날이면 반나절만 휴식을 하고서도 다음 운동할 날이 기다려진다.

머슬메모리는 운동을 다시 하면 몸이 마지막으로 운동했던 골격근량만큼 금방 회복되는 이론이라고 한다. 머슬메모리가 생기기 위해서는 보통 수 개월 정도의 운동으로 어느정도의 근육이 형성되어 있는 것이 전제라고 들었다. 바로 수 개월 간 지속적으로 하는 운동이 우리 몸 속에 새기는 또 하나의 흔적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운동을 조금 쉬다가 돌아오더라도 내가 익힌 기술, 보법, 호흡법 그리고 근육이 성장했던 기억은 내 몸 안에 온전히 남아있다.

운동을 해서 건강하고 탄탄한 몸을 만드는 것도 멋진 동기 중 하나다. 하지만 꼭 남에게 보여주지 않는다 해도 내 몸 그리고 머릿속에 땀흘려 운동한 날들의 흔적이 남아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만한 결과 아닐까. 그 흔적과 기억이 다시 나만의 건강한 자존감이 되는 선순환의 시작일 것이다.

이번 학기 긴 글을 적으며 나도 무언가 흔적을 남겼다. 평소 일상과 견주어보면 상당히 큰 흔적을 남긴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꼭 흔적을 남기는 건강하고 쾌활한 날들을 보낸다면, 그래서 내 글이 그 사람에게 긴 흔적으로 남게 된다면 기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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