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상경논총 Feb 08. 2024

[오아시스] 눈

0 °C

오늘 밤엔 눈이 내려


봄에 태어나서 그런지 난 알록달록한 거리를

가려버리는 눈은 영 별로였어

흰 눈을 보면서부터

녹아갈 때쯤 질척해지는 회색 흔적을 상상하며 탐탁지 않아 했지만

겨울에 태어나서인지 넌 항상 무채색 차림을 하고도

온통 희게 만들어 버리는 눈을 그리도 좋아했네


눈만 오면 안 봐도 다 보였는데


네가 얼마나 오래 뛰어왔는지

우산은 어느 쪽으로 기울여 쓰고 왔는지

가방을 어느 쪽으로 메고 왔는지

발은 얼만 한지

걸음걸이는 어떤지

어깨 위와 발자국

흔적만 보면 너의 습관이 한가득이었으니까


버스 창문에 주먹으로 아기 발자국을 찍고 내려

눈을 뭉치며 옆을 보면

넌 무슨 동물을 좋아하는지 다 보였는데


지난 흔적 다 덮어버리고

우리 흔적만 남아있던

그날들을 나도 기억해


나도 이제 눈 오는 날을 좋아해

그리고

오늘 밤을 좋아해

이전 25화 [오아시스] 뭉크 안아주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