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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경논총 Feb 08. 2024

[오아시스] 그리운 흔적

아무개

나는 오래된 것들을 좋아한다. 낡은 철물점, 오래된 건물, 빛 바랜 간판 같은 것들을 보면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 때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주위 풍경들이 하나둘씩 바뀌어가기 시작할 때 씁쓸함을 느낀다. 어렸을 때 매주 DVD를 빌려 가족들과 영화를 볼 수 있었던 동네 비디오 대여점도 문을 닫고 컴퓨터를 고치러 자주 들렸던 전자 상가도 재개발에 들어가는 것을 보며 어린 시절의 흔적들이 사라져가는 것에 아쉬움을 느낀다. 이건 흔적이 본질적으로 가진 딜레마에서 비롯되는 감정인 듯하다.


우리는 흔적에서 과거를 떠올린다. 때로는 과거의 흔적으로부터 옛 추억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를 느끼기도 하고 과거의 상처에 여전히 아픔을 느끼고 행복했던 순간들을 그리워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실재하는 흔적은 대부분 사라진다. 그것이 좋은 기억을 남겼든 잊고 싶은 상처를 남겼든 간에 대부분의 물리적 흔적들은 세월의 흐름 속에서 사라져간다. 따라서 흔적에 대한 그리움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것들 대한 그리움이라는 딜레마로 이어진다.


이 딜레마는 기억 속 흔적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의 문제로 연결된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것들도 결국 우리의 기억 속에는 남아있기 때문이다. 딜레마와 마주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이 기억들을 가지고 뒤를 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앞을 바라보는 게 아닐까 싶다. 어쩌면 그 동안 과거의 흔적을 놓지 않으려 했던 것도 그 때의 사소한 기억들이 주는 따뜻함을 놓고 싶지 않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 따뜻함을 계속 느끼고 싶어서 기억을 만들어준 껍데기에 집착했던 것이다.


새로운 삶의 단계로 발을 디딜 때마다 우리는 흔적을 남기게 된다. 중요한 건 과거의 흔적에 계속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그로부터 앞으로 나아가는 원동력을 얻는 것이다. 돌아올 수 없는 것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면 그 기억을 만들어준 또는 기억이 남기고간 존재의 소중함을 알고, 아픔을 준 상처가 있다면 상처를 마주하고 받아들이며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다.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한 평론가가 쓴 감상글의 마지막 대목에 이런 구절이 있다.


아무리 마음이 아파도 뒤돌아보지 마세요.

정말로 뒤돌아보고 싶다면 터널을 완전히 벗어난 뒤에야 돌아서서 보세요.


지금까지도 수많은 터널들을 지나왔고 앞으로도 수도 없이 많은 터널을 지날 것이다. 삶의 한 대목의 마지막 터널을 통과해 뒤를 돌아봤을 때 그 삶의 발자취들이 만들어 온 흔적을 돌아보며 웃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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