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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경논총 Jun 03. 2024

[오아시스] 공감이 필요해

흔적

사회가 많이 병들어 간다는 것을 느낍니다. 남성과 여성, 진보와 보수, 영남과 호남, 2030과 586세대로 나뉘어 서로를 힐난하는 사회의 모습은 우리가 피로감을 느끼게 만들기 충분합니다. 물론, 어느 사회에서나 서로 나뉘어 물고 뜯는 모습은 볼 수 있지만 유독 피로감이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 나에게만 해당하는 일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요즈음입니다. 


2024년 5월, 저에게 큰 이슈 중 하나는 훈련소에서 사망한 두 명의 훈련병 이야기였습니다. 아마도, 3년 전 제가 겪었을 수도 있는 일이었기에 더욱 이들에게 공감이 되는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만이 겪었을 일이 아닌, 대부분의 남자가 겪었을 일이기에 더욱 많은 공감을 얻게 되는 일이라 생각하게 됩니다. 정말 아쉬움이 많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이 일이 가볍게 다가오는 사안이고, 크지 않은 일인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사실, 오아시스 글을 쓸 때 최대한 사회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사회적인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은, 누군가에게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는 글을 쓰게 되는 것은 이러한 일들이 멈추었으면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흔히 우리의 인생을 항해에 비유하곤 합니다. 누구나 인생이란 항해에는 높은 파도가 닥쳐오기 마련입니다. 군 복무를 경험한 많은 사람들에게, 군 생활 기간은 높은 파도 중 하나로 다가오곤 합니다. 저 역시 군 복무 기간은 높은 파도와, 험한 바다와 같은 기간이었습니다. 난생처음 가족들의 품을 벗어나서, 낯선 사람들과 매 순간을 함께 하는 시간은 꽤나 어려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각자 다른 위치에서, 다른 경험을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보내고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 수십 수백명이 모인 곳은 복잡하고 어수선하기 마련입니다. 이런 시간을 경험하는 것은 아직 철이 들지 않은 20대 초중반에게는 어렵기만 합니다. 각자의 항해를 하고 있는 와중에, 우리는 서로에게 높은 파도가 되기도, 희망을 볼 수 있게 하는 등대의 불빛이 되기도 했습니다. 아마 저 역시도 누군가에게는 높은 파도가, 누군가에게는 등대의 불빛이었겠죠. 때로는 높은 파도가 된다고 할지라도, 매 순간 누군가가 나에게 높은 파도인 것만은 아닙니다. 나를 항상 괴롭히던 사람이 어느 순간 나를 위로하는 바다새가 되기도 하니까요. 이것은 아마도 같은 상황 속에서 같은 경험을 공유했기 때문에 서로에게 공감을 전해주기에 그럴 것입니다. 그래서 공감의 중요성은 너무나도 큽니다. 


이번 12사단 신병교육대에서 벌어진 사고는 이러한 공감의 결여에서 시작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신교대에 입소한지 갓 일주일이 지난 20대 초반의 젊은 남자들에게 낯설기만 한 공간과 환경은 두렵게 다가왔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잠이 오지 않는 밤, 옆에 있는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을 것이고, 이것이 그렇게 큰 잘못이냐는 생각이 추측과 함께 동시에 들게 됩니다. 아마 중대장, 소대장, 분대장의 입장에서는 잘못이 맞다고 느껴졌을지 모릅니다. 이들이 떠들고 이야기를 나눈 것은 분명 다른 훈련병들에게 방해가 되는 행동이었을 것이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완전군장을 한 상태로 연병장을 1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뛰게 하는 것은 분명 가혹한 처분입니다. 만약 지휘관이, 분대장이 이들의 입장을 조금이라도 공감해 주었다면 그렇게 엄격하고 가혹한 것을 지시할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한 가지 의문이 들곤 합니다. 과연 본인은 완전군장 상태로,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그 시간에 연병장을 돌아보긴 하였을지요. 본인이 경험해 보았다면, 본인이 내린 그 지시가 얼마나 가혹한 지시인지 알고 있었음에도 훈련병들에 대한 공감을 전혀 하지 못한 것입니다. 본인이 경험해 보지 못했다면, 본인이 내린 지시의 강도도 모른 채 그저 화풀이로 지시를 내린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저는 완전군장으로 연병장을 뛰게 시키는 것을 군 생활을 하는 시간 내내, 그리고 타인들의 군 생활을 들었을 때, 단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소위 말하는 80년대 군대에서도 훈련병에게는 내리지 않았을 것 같은 일입니다. 본인이 얼마나 완전군장의 무게를 감당해 보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제 경험에서 비추어 보면 그닥 많은 경험을 해보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결국 경험의 결여는 공감의 결여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공감의 결여는 결국 문제로 다가오기 마련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경험을 해 보아야 하고, 이를 통하여 공감의 여유를 가질 수 있어야 하겠죠. 모든 경험을 할 수는 없겠지만요. 


사실 우리 사회 전반적으로도 공감이 아주 부족해 보입니다. 이번 일이 생긴 후에 인터넷 기사를 읽으며 많은 댓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서로서로 욕하며, 혐오가 가득한 말들을 배설하는 모습은 우리 사회에 공감이 얼마나 부족한지 느껴지게 했습니다. 한 젊은 청년의 안타까운 사고를 보며, 그를 애도하는 것이 아닌 조롱하고, 반대편을 깔아뭉개는 듯한 표현들이 난무하는 모습을 보니 정말 안타까운 마음이 커져만 갔습니다. 아마도, 이런 세태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 것 같지만 그래도 작은 소망을 가지게 됩니다. 서로에게 공감을 더 해주었으면 한다는 것이요. 정말 이상적인 말로 들리겠지만 말이에요. 


아직 다 피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한 12사단 훈련병에게 애도를 표하며 글을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못다 핀 꽃을 그곳에서는 활짝 피울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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