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셔 고양이
루이스 캐럴(Lewis Carroll)의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를 아시나요? 흰토끼를 따라 굴 속으로 들어간 소녀 앨리스가 이상한 나라에 떨어져 겪는 이야기 맞습니다. 소설의 이상한 나라는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규칙, 질서, 언어, 정체성을 뒤집고 비틀어 버립니다. 앨리스는 몸이 커지거나 작아지는 마법을 경험하고, 시간에게 말을 걸자 시간이 삐지고 시간이 멈추며 다과회(tea party)가 영원히 지속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애초에 동물들이 자연스럽게 말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독자 누구나 이상하고 말이 안 되는 세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41.4 42.0 42.6 43.1 43.7 44.3 44.9 45.5 46.1 46.7
자, 이번에는 수수께끼입니다. 위의 숫자 10개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정답은 2016년부터 2025년까지의 우리나라 중위연령입니다. 지난 10년 동안 매년 0.5 ~ 0.6세씩 늘어나고 있습니다. 필자가 태어난 해의 중위연령이 32.9세인데 23년 만에 13.8세가 늘었습니다. 필자는 언제쯤 중위연령에 도달할 수 있을까요? 중위연령이 매년 0.6세씩 계속 늘어난다고 가정하면 한 해가 지날 때마다 중위연령에 0.4세씩 가까워지게 됩니다. 계산기를 두드려보면 중위연령을 따라잡는 데 거의 60년이 걸린다는 결과가 나옵니다. 80세가 되어도 사회 구성원의 과반수보다 젊다니, 그 옛날에 진시황이 알아내지 못한 불로장생의 비결을 찾아낸 것 같습니다.
사실 60년이라는 계산 결과는 문제가 있습니다. 중위연령이 앞으로도 일정하게 늘 것이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인류의 수명이 계속해서 증가하거나 노화라는 질병을 완전히 퇴치하지 않는 한, 중위연령이 증가하는 속도는 사망자의 증가와 함께 둔화할 것입니다. 실제로 통계청의 예측치를 살펴보면 중위연령의 증가 속도는 2040년대에 0.3 ~ 0.4세 정도로 둔화하고 2070년 정도에는 거의 증가하지 않습니다. 통계청의 예측이 맞다면, 필자는 2065년 전후로 중위연령을 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40년이라는 새로운 계산 결과도 충격적인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2025년인 현재 법적으로 만 65세를 넘긴 사람이 노인입니다. 그런데 2065년에는 60세를 넘긴 사람이 여전히 젊은 축에 속한다니… 우리가 앨리스가 떨어진 이상한 나라를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만큼, 소설 속의 앨리스도 우리가 살아가는 나라를 이상하게 느낄지도 모르겠습니다.
참 여러 가지 이유로 지금 청년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오랜 기간 청년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게 될 것 같습니다. 사실 한 사람이 어떤 시기를 살고 있느냐를 정의하는 것은 상대적인 개념입니다. 예전에 중위연령이 20대였던 시절에는 청년이라고 하면 거의 20대를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20대에서 30대로 의미가 확장되었고, 미래에는 40대도 청년으로 여겨질지도 모릅니다. 마찬가지로 노인을 정의하는 나이인 65세도 상향 여부에 관한 사회적 논의가 있어 왔습니다.
정치인들은 선거철만 되면 과 잠바를 입은 대학생들을 화동(花童)처럼 데리고 다니고 청년을 겨냥한 공약을 발표합니다. 어떻게 보면 젊은 유권자라는 이유로 다른 세대보다 많은 주목을 받는 셈입니다. 그런데 과연 “청년”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특별히 취급받는 것이 좋기만 한 것일까요? 소수에 대한 다수의 지배를 용인하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청년 세대는 본질적으로 소수자입니다. 이 사실은 현재의 청년이 더는 청년이 아니게 되고 미래 세대가 청년이 되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치인들과 언론의 주목을 받아도 본질적이고 중요한 정치적 의제에서 소외된다면 무슨 소용일까요? 최근에 있었던 국민연금 모수 개혁이 좋은 예시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수결의 규칙대로면 청년은 불리한 선택을 강요받습니다. 그러면 청년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앨리스: "여기서는 어떤 길로 가야하는지 알려주겠니?"
체셔 고양이: "그건 네가 어디로 가고 싶은가에 따라 크게 다르지."
앨리스: "어디인지는 별로 상관없어—"
체셔 고양이: "그렇다면 어느 길로 가는지도 상관없네."
앨리스: “—어딘가에 닿기만 한다면 말이야.”
체셔 고양이: “오, 그야 분명 그렇게 될 거야. 충분히 오래 걸어가기만 하면.”
그 질문에 대한 필자 나름의 답변은 청년 스스로에게 달렸다는 것입니다. 청년은 소수자이지만 그 사회에서 가장 활기차고 왕성한 사람들입니다. 청년이 해야 할 일은 기성세대에게 어떤 길로 가야 하는지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어느 길로 가는지도 확신하지 못하지만 걸어가기 시작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청년의 걸음이 사회에 퍼져나가는 물결이 되어 큰 울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청년의 길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