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규제 시대, 한국 고탄소 산업의 전략과 정책 금융

의 역할 (cbam을 중심으로)_수습부원 김명주

by 상경논총

들어가며


세계 공급망의 지도가 다시 그려지고 있다. 과거 세계 경제는 자유주의적 무역 체제를 기반으로 ‘저비용, 고효율’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분업이 이루어졌으나, 최근에는 팬데믹과 미·중 무역 갈등, 지정학적 긴장 등으로 인해 그 균열이 더욱 깊어져 보호주의적 무역 체제에 들어서고 있다. 공급망 블록화, 환경 규제, 기술 안보 등 여러 요인이 겹쳐 이제는 가격 경쟁력만으로는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 결국 얼마나 빠르게 세계적 규범과 정책 흐름에 부응하고, 이에 맞춰 산업 구조 및 공급망을 전환해 나갈 수 있느냐가 경쟁력의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그중 우리나라가 주목해야 할 핵심 사안 중 하나는 환경 규제 중 탄소 규제이며, 그 대표적인 사례가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이다. 이는 EU에서 발생하는 탄소누출을 해결하고자 도입한 제도로, 본래 유럽 기업에만 적용되던 탄소세를 역외 모든 국가에 부과하게 함으로써 탄소 무역 규제의 가장 선도적이고 구체적인 사례로 자리잡고 있다. 현재는 철강, 알루미늄과 같은 탄소 집약적 물품만 적용 대상이지만 그 범위가 석유화학 등으로 점진적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그림1].png [그림1] EU에서 발생한 탄소누출


그렇다면 우리가 이러한 탄소 규제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은 제조업 비중이 높아 경제가 제조업에 크게 의존하고 그 규모가 GDP의 26.5%를 차지한다. 참고로 주요국의 제조업 부가가치 비중(2024년 기준)은 독일 17.8%, 미국 10.2%, 영국 10.3% 수준이다. 이와 같은 산업 구조는 저탄소 전환의 부담과 한계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CBAM과 같은 탄소 규제는 해당 산업의 대전환을 요구하는 장치로 작동하게 된다. 물론 본 규제는 현재 철강과 같은 일부 품목에만 제한두고 있지만 향후 확대 가능성과 탄소 중립이라는 세계적 흐름을 감안할 때에 미래 국제 무역에서 ‘저탄소 역량’이 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부상할 것임을 유추할 수 있다. 따라서 CBAM은 단순한 ‘환경 규제’가 아니라, 한국 고탄소 산업이 직면한 산업 전환의 ‘출발점’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에 착안하여 본 글은 시작점인 CBAM에 집중하여 한국의 고탄소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탈탄소화 시대에 산업 전환을 지원할 수 있는 정책금융의 전략적 역할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1) CBAM

CBAM이 왜 탄소 전환의 출발점인가?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CBAM의 구조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CBAM은 앞서 언급했듯이 EU가 수입하는 탄소 집약 품목에 대해 직접적으로 비용을 부과하는 제도다. 이에 따라 역외 국가의 기업들은 수출하기 전 ‘CBAM 인증서’를 구매해야 하며, 제품 생산 과정에서 발생한 탄소 배출량에 비례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결국 탄소가 사실상 새로운 형태의 관세로 작용하게 되는 셈인데, 이는 특히 두 가지 경우의 기업에 더 큰 부담이 된다. 하나는 당연하게도 본질적으로 탄소 집약적인 공정을 가진 기업, 또 다른 하나는 탄소 배출량을 측정할 기술이나 역량 자체가 부족한 기업이다.


후자의 경우가 더 주목되는 이유는, CBAM이 요구하는 MRV 체계와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MRV(Measurement, Reporting, Verification)는 각 기업 또는 설비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정량적으로 측정(Monitoring)하고, 이를 일정 주기로 보고(Reporting)하며, 제3자에 의해 검증(Verification)받는 과정을 말하는데, 이 체계는 제도 전반의 투명성을 담보하는 핵심 요소로 작용하지만 그만큼 까다롭다. 본국에서 가지고 있는 탄소 가격 책정 메커니즘이 있다고 할지라도 MRV는 다른 결이기에, 해당 측정 인프라나 전문성 없이 접근하기는 어려운 구조다. 이렇게 배출량 데이터를 제출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EU가 정한 기본값(default value)이나 최대값이 비용으로 적용되어 더 높은 비용 부담이 발생하게 된다.


결국 CBAM은 단순한 배출권 거래제도와는 결을 달리한다. 각국의 환경 규제 수준이 상이한 현실에서, EU는 MRV 기반의 정교한 구조를 통해 탄소 체계의 선도 모델로 자리 잡고 있으며, 실제로 다수의 국가는 이를 벤치마킹하거나 제도 연동을 모색하고 있다.


더불어 CBAM은 ESG 공시 의무화 등과 함께 작동하며 최종적으로 정보 공개 → 탄소 비용 부과로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 속에서 기능한다. 쉽게 말하면 탄소 정보 공개와 저탄소 생산 역량은 무역의 새로운 표준이 되는 것이다. 유럽에 제품을 수출하거나 유럽 기업에 원자재와 부품을 납품하고 싶다면 이 흐름에 대응해야 하고, 다른 국가들 또한 현재 이러한 표준을 뒤따르고 있다. 따라서 CBAM은 국제적으로 산업 전반의 저탄소 전환을 구조적으로 유도하는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EU의 정책 파급력과 세계의 환경 규제 흐름


무엇보다 탄소 비용, 탄소 관세 문제는 유럽연합은 그 시작에 불과하다. 교역 규모만 놓고 보면 중국이나 미국이 한국에 더 중요한 무역 상대이기에 왜 EU의 CBAM에 주목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 수 있다. 그에 대한 구체적 답변은 CBAM이 촉발한 흐름은 이미 전 세계 주요국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고, 이러한 탄소 규제 흐름의 시작이 EU이기 때문이다. 영국은 2027년부터 유럽연합과 유사한 탄소국경세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공식화했으며, 미국 의회에서도 ‘청정경쟁법안(CCA)’과 ‘해외오염관세법’ 등 탄소 배출에 따른 가격 반영을 골자로 한 입법 논의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비록 각국의 제도 설계 방식에는 차이가 있지만, ‘탄소를 비용으로 전가하고, 무역 체계 안에 반영하겠다’는 방향성만큼은 분명하게 수렴되고 있다. 말하자면, 탄소가 실질적인 무역 장벽으로 작동하는 시대가 이미 시작된 셈이다.


한편, 이러한 규제 흐름에 대한 대응은 국가별로 상이하다. 한국처럼 정책 정비와 산업 지원을 병행하려는 국가도 있는 반면, 인도와 같은 신흥국이나 개발도상국 일부는 CBAM의 형평성과 국제 규범 위반 소지를 문제 삼아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준비 중이다. 즉 이 규제에 대해 모두 다른 양상으로 대처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심각성을 모두 인지하고 있다.


한국 탄소 집약 산업의 구조적 위기


이제 우리는 CBAM이 단순한 환경 규제가 아닌 실제로 국제 무역의 규칙을 바꾸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보통 환경 규제는 ‘시행될 수도 있다’라는 위협 단계에 머무르는 반면, 이는 이미 실행 준비가 됨은 물론이고 국제 흐름이 달라지고 있다. 더불어 기존의 TBT(무역기술장벽) 같은 환경 규제들이 제품의 기술 기준이나 환경 표준 준수를 요구하는 수준에 머물렀다면, CBAM은 ‘탄소 배출’이라는 환경 요소를 무역의 관세, 가격 체계 안으로 직접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즉 환경 정책이 무역 규범의 단순한 변수 중 하나가 아니라 중요 요소 중 하나로 편입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에서 제대로 시행되었을 때에 한국이 입을 실질적 피해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CBAM이 한국 철강업 전반에 매우 큰 부담을 초래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통계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우리나라의 EU 전체 수출액 681억 달러 중 CBAM 적용 품목은 51억 달러로 약 7.5%를 차지한다. 문제는 이 51억 달러 중 89.3%에 해당하는 45억 달러가 철강이라는 점이며, 알루미늄도 10.6%인 5.4억 달러로 뒤를 잇는다. 즉, 한국의 EU 수출 구조는 CBAM의 직접 타격을 받는 철강, 알루미늄 비중이 매우 높다. 그 결과, EU로 수출하려면 생산 과정에서 발생한 탄소만큼 CBAM 인증서를 구매해야 하므로, 수출 규모가 클수록 부담해야 하는 탄소 비용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구조에 놓이게 되었다. 한국 철강과 알루미늄 산업이 수출 비중이 높다는 특징이 오히려 CBAM 시행 이후에는 비용 폭탄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그림2].png [그림2] “CBAM 시행 시 EU도 타격···배출권거래제 개선보다 R&D 재원 확보가 우선”


구체적인 피해 예상액은 CBAM이 본격 시행되는 2026년 약 851억 원에서 출발해, EU의 탄소가격 상승과 무상할당 축소, 배출량 산정 강화 등이 누적되면서 2034년에는 5,500억 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향후 CBAM 적용 품목이 확대되면 알루미늄 등 타 산업이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인증서 비용, 그리고 철강·알루미늄을 중간재로 사용하는 자동차·조선·기계 등 연관 산업 전체의 원가 상승까지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파급효과를 모두 포함하면 CBAM 도입이 국내 산업계에 초래할 재무적 부담은 단순 인증서 비용을 크게 초과해 수천억~수조 원대 규모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피해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CBAM의 시작과 함께 입을 수 있는 또 하나의 피해는 ‘관리 역량 부족’으로 인한 중소기업의 공급망 이탈 위험이다. 이 제도는 MRV를 하지 않으면 손해를 입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국내 다수의 중소기업이 해당 시스템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제도 시행을 맞이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응 전략이 사실상 부재한 셈인데, 이로 인해 대기업들이 규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MRV 역량이 떨어지는 협력사를 점차 배제하고, 데이터 관리가 상대적으로 용이한 일부 기업 중심으로 공급망을 재편하려는 움직임을 보일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이는 결국, 중소기업들이 자연스럽게 수출 생태계에서 밀려나는 ‘녹색 블록화(Green Blockade)’ 현상을 초래할 수 있으며, 피해가 현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키우고 있다.


탄소 집약 산업의 상징, 철강 산업의 지속 가능성은 어디로 향하는가


CBAM이 한국 산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논할 때, 그 중심에 철강 산업을 놓지 않을 수 없다. 물론 CBAM의 직접적 타격을 가장 크게 받는 업종이 철강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본 글이 철강 산업에 주목하는 이유는 단지 그에만 있지 않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CBAM은 유럽연합의 독자적 조치로 끝나지 않고 미국, 영국 등 주요국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향후 다양한 형태의 환경 규제가 글로벌 무역의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흐름 속에서 철강 산업은 한국 산업 구조 내에서도 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철강은 우리 경제의 중간재 생산을 담당하는 핵심 산업으로, 자동차, 조선, 기계, 건설, 가전 등 전방위 제조업에 필수 소재를 제공한다. 산업연관 분석에 따르면, 철강 산업의 전방 산업 파급 효과 계수는 1.6으로 석유화학 다음으로 높고, 생산 유발 효과는 1.9, 고용 유발 계수는 3.7에 이르러 다른 장치 산업 대비 상대적으로 높은 파급력을 보인다. 실제로 2019년 기준 약 5,400개 철강 관련 사업장에서 10만 명 이상이 종사하고 있으며, 2021년에는 세계 6위의 조강 생산 능력과 함께 약 364억 달러에 달하는 철강 수출을 기록했다. 이는 철강 산업이 단순한 에너지 집약 산업을 넘어, 산업 성장과 수출, 고용 전반에 걸쳐 전략적 기반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철강 산업은 기본적으로 탄소를 많이 배출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생산하느냐에 따라 배출량이 크게 달라진다. 전통적인 고로 방식은 철광석을 코크스(석탄)으로 녹여 쇳물을 만드는 과정에서 대규모 탄소가 직접 배출되기 때문에 가장 탄소집약적이다. 반면 전기로 방식은 주로 고철을 전기로 녹여 생산하기 때문에 공정 자체는 훨씬 적은 탄소를 배출하며, 일반적으로 고로의 1/4~1/10 수준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전기로가 무조건 친환경적인 것은 아니다. 전기로는 열원을 전기에서 얻기 때문에, 그 전기를 어떤 방식으로 생산했는지가 핵심이다. 석탄이나 가스 기반 전력으로 전기를 공급받으면 배출량이 다시 높아질 수 있고, 태양광, 풍력, 수력 등 재생에너지 전력을 사용할 경우에만 진정한 저탄소 철강이 가능해진다. 즉, 철강은 탄소집약적인 산업이지만 생산 방식에 따라, 그리고 특히 전기로의 경우 전력의 탄소발자국에 따라 실제 배출량이 크게 달라진다는 점이 핵심이다.


[그림3].png [그림3] 고로와 전기로의 탄소배출량 비교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한국은 고로 기반 일관 제철 공정의 비중이 여전히 높은 구조다. 이러한 석탄 기반 고로 방식 의존은 중국 등 주요 생산국과 유사한 수준이다. 반면, 글로벌 철강 기업들은 전기로 방식 전환을 넘어 근본적인 탈탄소화를 이룰 수 있는 수소 환원 제철 등 저탄소 기술 투자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한국 철강 산업의 전환 속도가 지체된다면 EU뿐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도 경쟁력 악화는 불가피할 수 있다.


철강이 아닌 다른 산업은?


동시에 철강 산업만이 이러한 구조적 전환의 압력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 철강과 함께 한국의 탄소 집약적 산업을 대표하는 석유화학, 시멘트 산업 역시 CBAM과 유사한 글로벌 환경 규제의 확대 속에서 근본적인 변화 요구에 직면해 있다. 이들 산업은 모두 탄소 집약적 공정을 기반으로 성장해 왔으며, 한국 제조업의 수출, 고용, 전후방 연관 효과 측면에서 핵심적 위치를 차지한다는 점에서 철강 산업과 구조적으로 유사하다. 특히 석유화학은 국내 제조업 CO₂ 배출의 2위권을 차지하는 산업이고, 시멘트는 공정 배출 비중이 매우 높아 탈탄소 기술 전환의 난도가 가장 큰 산업 중 하나로 꼽힌다.


결국 CBAM은 특정 업종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산업 구조가 전통적으로 의존해 온 ‘고탄소 생산 체제’ 전반에 대한 근본적 재편을 요구하는 신호탄이라고 볼 수 있다.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로 대표되는 고탄소 3대 산업의 전환 속도가 늦어질수록 한국 제조업 전체의 수출 경쟁력과 산업 기반이 약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산업 전환의 과제는 개별 기업이나 업종을 넘어 국가 산업 전략의 핵심 의제이다.


(2) 고탄소 산업의 전략과 정책 금융의 역할론


탄소 규제가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고 그 규범이 CBAM을 통해 구체화되고 있는 지금, 한국 기업들이 취해야 하는 전략은 명확하다. 첫째, 기존의 고탄소 생산구조를 대전환해야 한다. 예를 들어 철강은 전기로 확대와 신재생에너지 확보,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수소 환원 제철 준비가 필요하며, 석유화학은 리사이클 원료 기반으로의 전환을 통해 탈탄소가 가능하다. 시멘트 산업은 공정 배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CCUS 적용과 대체 결합재 개발이 필요하다. 이는 근본적으로 CBAM 뿐만 아니라 전방위적 탄소세에 대응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둘째, 전 공정의 배출량을 정량적이고 검증 가능하게 관리하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둘째 전략이 필요한 이유는 CBAM이 제품 생산 전 과정의 탄소배출을 정량적으로 측정하고, 이를 보고하고 검증하는 MRV 체계를 요구하며 이러한 탄소 발자국을 명확히 측정하는 방향이 국제적 표준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도표1].png [도표1] 포스코 고로에서 전기로 대체율에 따른 투자비


그러나 이와 같은 산업들의 탄소 배출 저감을 위해서는 혁신적인 기술이 필요하며, 이는 기업 혼자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막대한 비용을 요구한다. 즉, 민간의 자율적 대응만으로는 추진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실제로 주요국은 탄소중립을 국가 전략으로 채택하고 무역, 산업 정책과 연계해 자국 기업의 경쟁력을 보호하는 동시에 새로운 시장 규범의 설정자로 나서고 있다. 예를 들어 철강업계를 보면, CBAM으로 인해 탈탄소는 철강 산업에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지만 최근 업황 악화로 투자 여력이 줄어들면서 업계는 정부의 지원 없이는 전환이 어렵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따라서 한국은 단기적 피해를 최소화하고 장기적으로 산업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탄소 규제를 ‘비용’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투자’로 인식하는 대전환이 필요하며, 다방면의 지원이 필요하지만 국가 정책 금융의 전략적 역할에 집중하여 구체적 대안을 살펴볼 것이다.


현재 한국의 기후 위기 대응 정도


한국 정부는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해 정책금융을 적극적으로 동원하고 있다. 2024년 3월 기후금융 확대방안을 통해 2030년까지 총 420조 원의 정책자금을 공급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고, 2024년 10월 말 기준 약 54조 원을 이미 투입하며 첫해 목표도 초과 달성했다.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기업은행 등 주요 정책금융기관의 녹색전환 지원 규모 역시 확대되고 있어, 전반적인 기후·녹색 대응 자체는 양호하게 진행되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다만 우리가 주목하는 고탄소 산업, 특히 철강의 경우 현재의 수천억 원대 지원만으로는 구조적 전환을 뒷받침하기엔 여전히 부족하다. 이러한 지원은 주로 단기 유동성 보강이나 일부 저탄소 설비 투자를 촉진하는 데 머물고 있어, 수소환원제철과 같은 근본적 혁신 기술까지 연결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실제 산업은행 산하 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철강업계가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투자 규모는 최대 40조 원으로, 전기로 증설과 수소환원제철 개발 등 단계별 전환에는 장기 자금이 필수적이다.


선진국 모델 분석: 대규모 국가 전략 프로그램


이 지점에서 선진국의 사례는 중요한 비교 기준을 제공한다. 독일의 KfW는 에너지 전환과 산업 구조 변화 과정에서 장기, 저리의 대규모 융자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민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초기 위험을 국가가 부담해 왔다. 일본정책투자은행(DBJ) 또한 ESG 투자와 기술 전환에 출자와 저리 대출을 활용해 산업 전반의 탈탄소 전환을 지원하고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도 자금을 제공해 기업의 경쟁력을 유지시키고 있다. 이들 사례는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정책금융이 단순한 지원이 아니라 ‘대규모, 장기, 전환 중심’의 전략적 역할을 수행해야 함을 보여준다.


이에 비해 한국의 정책금융 지원은 독일과 일본에 비해 규모, 기간, 정책 연계성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라고 판단된다. 수소환원제철이나 공정 전기화 등 고탄소 산업의 핵심 전환 과제는 장기, 저리의 대규모 패키지 자금이 필요한데, 국내에서는 이러한 전환 전용 금융 체계가 아직 충분히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기업들이 대규모 초기 투자비와 기술 불확실성을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부담이 커지고, 이는 산업 전환의 속도를 늦추는 핵심 제약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래서 정책 금융의 방향은?


가장 먼저 이상적으로는 산업의 저탄소 전환을 이루려면 장기, 저리의 금융지원과 위험자본 공급이 필수적이다. 고탄소 산업의 설비전환 프로젝트는 투자 회수가 수십 년에 걸쳐 이루어지기 때문에 만기 10~20년 이상의 장기자금이 요구된다. 따라서 정책금융은 단기 수익성에 얽매이지 않고 저금리의 장기 대출을 제공함으로써 기업들이 안심하고 감축설비에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정책금융만으로 이러한 전환을 단독 수행하기는 어렵고, 결국 혼합금융이 필수적이다. 혼합금융은 정책금융이 일부 위험을 분담함으로써 민간 자본을 끌어들이는 구조를 의미하며, 독일과 일본 역시 산업전환 과정에서 이 방식을 기반으로 자금을 조달해 왔다.


그렇다면 우리나라가 아직 독일, 일본처럼 이가 작동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 국가도 정책금융만으로 산업전환의 모든 초기 위험을 전면 흡수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부와 정책금융기관이 후순위 출자나 신용보강을 제공하여 민간 금융이 상대적으로 안전한 조건에서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체계가 잘 정착돼 있다. 반면 한국은 재정여력의 구조적 제약, 정책금융기관 자체의 자본 여력 부족, 그리고 고탄소 산업의 전환 비용이 경제 규모 대비 과도하게 크다는 점에서 이러한 혼합금융 구조를 안정적으로 구현하는 데 현실적 제약이 존재한다. 실제로 한국은 급격한 고령화와 사회보험 성숙으로 복지지출이 빠르게 확대될 것으로 전망되며, 경기 회복 지연으로 세입 여건도 악화되고 있어 재정수입 조달이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조적 제약은 지금까지 정책금융의 대규모, 장기, 고위험 투자를 뒷받침할 여력을 제한했지만, 그럼에도 이미 산업전환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혼합금융은 현재 한국이 선택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현실적 해법에 가깝다. 따라서 혼합금융을 어떻게 설계하고 어떤 방식으로 민간 자본을 유도할 것인지에 대한 보다 섬세하고 정교한 전략 마련이 필수적이다.


탈탄소 전환을 위한 대규모 펀드


따라서 전환 프로젝트만을 대상으로 하는 전용 펀드 조성이 필요하다. 정책금융기관이 먼저 출자하고 이후 민간 자본을 매칭하는 구조로 설계하면 기술 실증 단계부터 상업 규모 확장 단계까지 이어지는 중장기 자본 공급 경로를 안정적으로 마련할 수 있다. 특히 철강, 석유화학과 같은 탄소집약 산업은 설비 규모가 매우 크기 때문에 단일 금융기관만으로 자금 조달이 어려워, 이러한 펀드형 구조의 도입 효과가 더욱 크다. 수소환원제철, CCUS, 친환경 소재 등 혁신적 감축기술은 성공 여부가 불확실해 민간 자본이 선뜻 투자하기 어려우며, 그렇다고 국가 자본만으로 감당하기에도 현실적 한계가 존재한다. 이때 정책금융이 자본성 자금으로 선순위 손실을 흡수하거나 후순위 출자를 제공하면, 민간 투자자의 위험을 완화해 후속 투자를 유도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민간 자본을 유인하는가가 더 중요한 문제로 볼 수 있는데,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초기 자금을 대고 민간은행, 연기금이 후속으로 참여하는 방식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정책금융의 출자는 손실흡수 및 신용보강 역할을 하여 민간 투자자의 부담과 심리적 장벽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추가적으로 프로젝트의 탄소감축 효과를 기준으로 한 차등금리 구조를 도입하여 감축량이 크고 실증 가능성이 높은 설비일수록 더 낮은 금리를 적용하는 방식도 고려해볼 수 있는데, 이러한 접근은 민간의 초기 투자비용 부담을 한층 더 낮춰 전환 속도를 높이는 데 기여가 가능하다.


부가적으로 정책금융기관 자체의 역량 강화도 필수적이다. 기후금융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대출심사 과정에서 감축성과를 평가하는 능력이 요구되는데, 이는 전통적인 신용평가와는 다른 전문성이다. 이에 녹색금융 전문인력 양성, 외부 기술 전문가와의 협업, 환경성과 평가체계 구축 등이 필요하다.


아울러 중소기업 지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중소기업은 한국 산업 구조에서 공급망의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어, 이들의 대응 능력은 곧 전체 산업 경쟁력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이 탄소중립 전환 과정에서 이탈하거나 생산성이 급격히 저하될 경우, 국가 경제 전반에 연쇄적 부담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소기업 지원은 더욱 중요한 과제라 할 수 있다. 반면 대기업은 상대적으로 자본력과 기술 역량이 축적되어 있어 자체적인 감축 투자나 전환 전략 수립이 가능하지만, 중소기업은 이러한 여력이 부족해 동일한 규제 환경에서도 훨씬 취약하다. 즉, 탄소 규제의 부담은 형식상 동일하게 부과되더라도 실제 충격은 중소기업에 더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차별화된 지원정책이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중소기업에 경우, EU CBAM과 글로벌 공급망 요구에서 핵심이 되는 MRV 체계의 경우 중소기업이 독자적으로 구축하기 어려워 MRV 인프라 구축 비용을 포함한 금융 패키지를 제공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예를 들어 기업은행이나 신용보증기금이 탄소저감 설비대출에 MRV 구축비를 결합해 지원한다면, 중소기업의 배출 데이터 투명성이 높아지고 향후 녹색대출, 정책자금 접근성도 개선될 수 있다.


또한 전환 과정에서 대기업에게 뿐만 아니라 중소기업이 보유한 저탄소 기술, 기후기술의 상용화를 적극 지원해야 한다. 중소기업은 초기 자본과 시장 검증 비용 부담이 커 성장 초기 단계에서 자금 공백이 발생하기 쉬운 만큼, 산업은행 등이 기후기술 벤처펀드를 통해 유망 스타트업에 대한 지분투자를 확대하고, 시중은행에서도 이러한 기조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자본성 자금 공급은 기술 리스크가 높은 중소기업의 사업화 장벽을 낮추고, 공급망 전반에서 중소기업의 탈락을 방지하는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결론


우리는 지금, 환경 규제라는 이름 아래 형성된 새로운 형태의 보호무역 흐름 속에 놓여 있으며, 이러한 움직임은 EU를 넘어 점차 다른 국가들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따라서 산업 경쟁력을 지키기 위해서는 정책 변화에 대한 신속하고 정교한 대응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돌이켜보면, 한국은 과거 환경 규제의 강화 흐름을 산업 고도화의 계기로 전환해낸 경험이 있다. 2000년대 후반부터 IMO를 중심으로 선박 온실가스 및 대기오염물질 규제가 점차 강화되자 국내 조선업계는 LNG 연료 기반의 친환경 선박 기술을 적극적으로 개발해 왔고, 이러한 선제적 대응은 현재 그리고 이후 본격화될 친환경 선박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기반이 되었다. 정책적 방향성과 전략적 투자, 산업계의 기술적 축적이 맞물릴 때 규제는 오히려 산업 전환의 촉진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사례다. 지금, 탄소중립이라는 더욱 거대한 전환의 흐름 앞에서 정책금융은 다시 한 번 산업의 방향을 잡아주는 출발점에 서 있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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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및 도표

[그림 1] EU에서 발생한 탄소누출

출처: 포스코그룹 뉴스룸

[그림2] “CBAM 시행 시 EU도 타격···배출권거래제 개선보다 R&D 재원 확보가 우선”

출처: 시사저널e

[그림3] 고로와 전기로의 탄소배출량 비교

출처: 금융소비자뉴스

[도표1] 포스코 고로에서 전기로 대체율에 따른 투자비

출처: 머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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